세금을 걷는 국세청과 관세청 등 세무당국은 나라 곳간 지킴이다. 세원 마련은 국정운영의 핵심 동력이다. 기업들에게 세무당국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 때로는 실적 압박에 과잉 징수를 했다는 비난을 받을 만큼 세무당국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세원확보에 나선다. 그런데 관세청에서 이미 거둔 세금을 환급해줄 수 없다는 직원에 대해 귀양성 인사조치를 해 잡음이 일고 있다. 관세청은 왜 이미 거둔 세금을 돌려주기 위해 애를 썼을까.
김영문 관세청장이 2018년 7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견 반도체부품 생산업체 A 사는 8%의 관세율을 적용받아 수입하던 물품에 대해 품목분류를 바꾸는 ‘품목분류 사전심사’를 신청했다. 품목분류를 담당하는 관세평가분류원은 A 사의 제품에 대해 8%에서 관세율 0%를 적용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관세율 변동에 따라 10억 원 이상 환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환급 실무를 담당하던 서울세관 소속 박 과장은 이 같은 세율 조정과정이 부적절하며 환급을 거부했다. A 사가 제출한 자료가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과장은 관세품목분류원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관세품목분류원은 수출입 물품을 품목별로 분류하고 이에 따라 적용할 세율을 결정하는 곳이다. 세율 조정은 세금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절차와 과정이 복잡하다. 하지만 박 과장은 관세품목분류원에서 A 사의 세율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회의 등의 절차를 어기고 실무자끼리 결재를 마친 것을 파악했다.
관세품목분류원의 세율 조정 과정의 부적절성에 대해 박 과장은 서울세관과 관세청에 보고를 올렸다. 자칫하면 불필요한 세금 환급으로 국고가 손실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관세청은 세율변동 과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대신 절차상 이미 이뤄졌어야 할 품목분류위원회를 사후에 연 뒤 도리어 박 과장에 대한 감찰을 벌였다. 관세청은 절차를 어기고 실무자끼리 결재를 마친 품목분류위원회 실무자들을 뒤늦게 감찰, 근무태만의 경징계를 내렸다. 박 과장은 칭찬을 받기는커녕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통상 세금은 개별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돼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관세청은 이례적으로 A 사가 세금을 환급받은 전자부품에 대한 관세율 변화를 공개했다. 덕분에 같은 전자부품을 수입하는 업체 B 사 역시 환급을 받았다. 관세청은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특별히 세율조정을 공개한 까닭에 대해 설명했다. 경찰은 관세청이 A 사에 부적절한 환급을 해주고 이를 정당화하려고 같은 부품을 수입하는 업체들에게 다 환급을 해줬다고 보고 내사를 시작했다.
박 과장은 “그간 품목분류 조정으로 환급된 세금이 1000억 원이 넘는데 이렇게 절차와 과정을 어기며 세금을 환급해 주며 나라 곳간이 새고 있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지난 5월 속초세관 고성비즈니스센터로 인사 조치 후 현재 ‘명령불복종’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A 사에 환급해주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이다. 고성비즈니스센터는 직원들이 기피하는 부서다. 박 과장과 함께 근무하던 계장도 징계를 받고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박 과장이 민원을 제기해 감사원, 검찰, 경찰 등이 이 사건을 들여다 봤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관세청의 반응이 부적절해 더 큰 잡음이 나왔다. 국민신문고에 제기된 민원을 바탕으로 대전둔산경찰서는 내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관세청이 특정 전자부품을 만드는 A 사에 대해 세율을 조정해 관세를 환급해주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국고손실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사건을 들여다본 것.
경찰은 관세청이 상당히 비협조적인 데 대해 들끓고 있다. 관세청 내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경찰 내부망에 올라오며 일선 수사관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내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세청은 경찰이 요구하는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중요한 내용을 지워서 제출하는 등의 태도를 취했던 것이 화근이 됐다. 담당 수사관은 관세청이 비협조적으로 관련 문서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도리어 수사 적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악의적 루머를 퍼뜨렸다고 보고 있다.
결정적으로 지난 8월 관세청장이 경찰청장 앞으로 ‘협조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내며 사달이 났다. 관세청이 내사를 벌이는 대전둔산경찰서의 상급기관인 경찰청에다 바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협조요청’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이 공문에서 관세청은 “청와대, 대검찰청, 감사원 등에 민원이 제기됐지만 관련 부분이 모두 소명돼 종결된 사안에 대해 민원인의 일방적 주장을 근거로 중앙행정기관을 수사하는 것이 공정하고 적법한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관세청 안팎에서는 민원인과 내사 담당 경찰관이 아는 사이라며 내사 돌입 배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목소리도 대거 나왔다.
담당 경찰관은 내사 돌입 과정에 대해 소명했고, 경찰은 내사 착수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경찰의 판단 하에 착수하는 내사에 중앙행정기관이 이의를 제기하고, 심지어 상급기관에 공문을 보내는 것은 외압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경찰청은 “내사와 관련해 해명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없다. 상당히 이례적인 처사”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검찰 출신인 관세청장이 경찰을 우습게 보고 이런 처신을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관세청은 경찰의 내사 과정에 충분히 협조했으나 정식수사가 아닌데 경찰이 요구하는 모든 자료를 넘기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또 경찰청에 공문을 보낸 것은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니라 관세청의 어려운 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였다는 입장이다.
한 정부관계자는 “중앙부처의 판단인 행정처분은 법원의 1심 판결 정도로 간주돼 존중하게 되는데 이를 경찰이 들여다보는 터라 관세청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다”며 “다만 실제로 환급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관세청의 태도는 더 심각한 화를 자초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이미 절차에 따라 결정된 사안인데 한 명이 이를 인정 못한다고 환급을 안해주면 행정이 마비된다”며 “마치 관세청이 적폐인 것처럼 비쳐 안타깝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