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는 2016년 에너지 밀도가 ‘400와트아워퍼리터(Wh/L) 이상’이던 전지(충전지) 인증 규제 대상을 ‘400Wh/L 이하’로 변경, 지난해 1월 1일부터 소용량 배터리 제품도 시험인증 기관에서 인증을 받게 했다. 이전까진 에너지 밀도가 400Wh/L 이하인 배터리는 국제표준인증 외 별도 인증을 받지 않았다. 검지 손톱보다 작은 소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는 폭발 등 사고 위험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산자부는 ‘소용량 배터리 내 보호회로 미비’를 들어 2016년 4월 인증 규제를 고시했다. “과열을 차단하는 보호회로가 없는 배터리를 걸러내기 위한 조처”라는 게 산자부 설명이었다.
문제는 인증 비용이다. 400Wh/L 이하 소용량 배터리 시험인증을 한 번 받는 데 소요 비용은 364만 원이다. 소용량 배터리를 활용한 웨어러블 기기를 생산하는 업체는 대부분 중소업체다. 이들은 이전에는 쓰지 않아도 됐던 비용을 새로이 규제가 시행되면서 쓰게 됐다.
더욱이 국제전자기기 상호 인증제도(IECEE)에서 이미 인증한 소용량 배터리에 대해서도 국내 시험인증 기관에서 또 인증받으라는 것이어서 ‘이중규제’라는 비난도 사고 있다. 다만 IECEE 인증서가 있으면 국내 시험인증 비용을 152만 원으로 줄여준다. 하지만 IECEE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보호회로가 필수다. IECEE 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보호회로를 갖췄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산자부는 ‘보호회로 미비’를 이유로 또 다시 국내서 인증받으라는 아이러니한 규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산자부가 이 같은 규제를 하는 데는 국내 시험인증 기관에 산자부 출신 고위 공직자가 원장직을 비롯해 요직에 앉아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즉 산자부가 불필요한 규제를 활용, 산자부 출신 퇴직자들에게 일감을 주고 있다는 것.
산업통상자원부(왼쪽)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 CI. 일요신문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소용량 배터리 인증 규정 개정 전문위원회 명단에 따르면 규제 제정 전문위원 11명 중 5명이 규제 도입 이후 시험인증을 주관한 기관 소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산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은 시험인증 주관기관으로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에이치시티(HCT) 등 5곳을 지정했다. 이들 기관 소속 직원과 연구원은 모두 2016년 규제 제정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백만 원의 인증 비용을 받는 시험인증 기관 5곳이 규제를 셀프 제정한 것이다. 반면 규제 시행 탓에 부담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중소업체 입장은 빠졌다.
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원장은 모두 산자부 고위 공직자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정동희 원장은 산자부에서 기술표준원 적합성정책국장과 원전산업정책관을 지냈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변종립 원장은 산자부 지역경제국장으로 퇴임한 인사다. 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송유종 원장은 산자부 에너지자원정책관과 감사관을 지냈으며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윤갑석 원장은 산자부 무역정책관과 정책기획관 출신이다. 특히 정동희 원장은 시험인증 기관으로 옮기기 전인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1년간 규제 제정을 직접 추진한 산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으로 재직 후 퇴임했다.
소용량 배터리 인증 규제 관련 전문위원회 명단 중 일부. 일요신문
셀프 지정 규제로 시험인증 기관들은 실제로 큰 수익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산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작성한 ‘리튬이차전지 안전확인시험 관련 현황’에 따르면 소용량 배터리 고시 개정이 이뤄진 2016년부터 배터리 시험인증 건수와 수수료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자부 고위 공직자 출신이 원장에 앉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등 4곳의 시험인증 건수는 2015년 1407건에서 2016년과 2017년 각각 2077건, 1951건으로 증가했다. 2015년과 비교해 47.6%, 38.7% 늘어난 셈이다. 한국시험인증협회가 밝힌 연평균 시험인증 시장 성장률이 7%인 것과 비교하면 규제 시행 후 시험인증 건수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기간 이들 4곳 기관의 수수료 수익은 2016년과 2017년 각각 66.3%, 51.9% 늘었다. 이에 대해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시험인증 건수와 수수료 이익이 늘어난 것은 맞지만, 리튬이차전지 인증 필요 대두에 따른 현상이지 소용량 배터리 규제에 따른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규제 탓에 중소업체들은 신제품 출시를 망설이거나 아예 사업을 접기도 한다. 중소업체가 직접 배터리 인증 시험을 위해 소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 30~40개와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험인증 대행 비용까지 지는 것이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카메라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조길우 대표(가명·50)는 “지난해 액션캠 생산으로 사업을 확대하려다 소용량 배터리 인증 규제가 부담돼 사업을 접었다”고 토로했다. 조 대표는 “인원과 자본이 늘 문제인 중소업체에 인증은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인증 대행사를 통해도 직원 한 명은 지속적으로 인증에 대응해야 하고, 시험인증 기관이 갖는 돈이 152만 원이라 해도 인증을 받아야 하는 업체가 들여야 할 비용은 800만 원 상당”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소용량 배터리 인증 규제 제정에 참여한 전문위원 중에는 시험인증 기관 소속 인사 외에도 모두 이익집단 이해관계인이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전체 11명 중 시험인증 기관 소속 5명을 제외한 전문위원 6명이 각각 인증대행사, 국내 배터리 생산 대기업 출신 인사 등으로 꾸려졌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은 “인증 규제 대상 논의 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에 적시된 전문위원회 구성 요건을 따랐을 뿐”이라며 “시험인증 기관 소속 연구원의 전문위원회 참여 등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