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미국공사관에 갇힌 유진 초이와 고애신
‘미스터 션샤인’은 20세기 초에 활동한 우리나라 의병의 이야기를 다룬 tvN 주말드라마입니다. 지난 7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오는 30일 24회의 대서사를 마칩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탄탄한 스토리와 감성을 파고드는 대사,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낸 영상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창작된 이야기’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그 시절 저런 물건이 존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미스터 션샤인’에 자주 등장하는 ‘의식주’가 과연 20세기 초에 존재했는지 ‘진지하게’ 알아봤습니다.
글로리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는 김희성과 이를 바라보는 쿠도 히나
#‘글로리 호텔’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20세기 이전, 이미 한반도엔 커피가 전해졌습니다. 조선의 커피에 대해 기록한 최초의 문헌은 ‘조선: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The Land of the Morning Calm)’입니다. 한국에 사진술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조선을 방문한 뒤 1886년 이 책을 썼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로웰은 1884년 1월 추운 어느 날 조선 고위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 변 별장에서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습니다. 강찬호 서정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기록이 남아 있는 1884년 이전부터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방문했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으로 견학을 하러 갔기 때문에 커피는 그 이전부터 유입이 됐다고 추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인이 쓴 기록에서도 커피의 흔적은 발견됩니다. 조선인 최초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유길준은 1895년 국정개혁안인 ‘서유견문’을 썼습니다. 유길준은 이 책에서 커피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됐다고 설명합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가 청일전쟁 전까지만 해도 청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었는데, 당시 청나라는 이미 서구문화에 상당히 노출돼 있었다”면서 “청나라로부터 커피가 최초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습니다.
글로리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는 고종 황제
호텔에서 커피를 팔았다는 것 역시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은 인천에 있었던 대불(大佛)호텔입니다.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인천항 개항 이후 몰려드는 외국인을 맞이하기 위해 1888년 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강 교수는 “호텔 이용객 대부분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커피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배재학당을 세운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의 비망록 ‘한국에서 우리의 사명(Our Mission in Korea)’에서도 조선의 호텔이 언급됩니다. 로웰은 이 책에서 1885년 4월 5일 인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당시를 회상하며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운영하는 호텔은 없지만, 일본인이 운영하는 호텔이 있다고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방이 편안할 정도로 넓었다. 테이블에 앉자 잘 요리되어 먹기 좋은 서양 음식이 나왔다”고 이 호텔을 묘사했습니다. 학계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대불호텔의 설립 일자가 1885년 이전이고, 호텔이 서양 음식을 제공한 것을 미루어 커피도 제공했으리라고 추정합니다.
이에 강 교수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당시 호텔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설정은 납득할 만하다”고 진단했습니다.
‘불란서 제빵소’에서 빵을 먹는 쿠도 히나와 고애신
#그날, 그때, 그 장소, ‘불란서 제빵소‘에서 빵을 사 먹는다?
‘불란서 제빵소’와 같은 빵집에서 빵을 사 먹는 설정도 납득할 만합니다. 조선의 빵을 최초로 언급한 문헌은 ’하멜표류기‘입니다. 헨드릭 하멜은 1653년 태풍을 만나 표류한 뒤 제주도에서 14년간 머물렀습니다. 이후 본국인 네덜란드에 돌아가 1668년 그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썼습니다. 그는 1654년 제주도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때를 회상하며 “이런 경우를 위해 꼬아 놓은 새끼줄과 1 인당 두 덩이씩의 빵을 가져오게 했다”고 책에 적었습니다. 하멜이 표류한 시점을 미루어 당시 제주도에서 빵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반도에 빵이 본격적으로 전파된 시기는 1800년대로 보입니다. ’대한국사(大韓國史)‘에 따르면 1895년 5월 14일 창덕궁 비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가든파티가 열렸습니다. 국내외 요인과 그들의 부인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이 파티에는 과자와 빵이 제공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명호 신한대 식품조리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 빵의 도입 시기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다”면서 “1800년대 선교사에 의해 처음 전해져 1900년대까지 전파됐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빵을 최초로 판매한 곳은 독일 여성 손탁이 1902년 건립한 손탁호텔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교수는 “고종의 총애를 받은 손탁이 세운 호텔에서 양과자와 사탕 등을 제조, 판매했다는 기록이 있다. 손탁호텔이 우리나라 최초의 제과점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는 “1900년대 초 제빵소에서 빵을 판매했다는 설정은 크게 무리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조정에 모인 고종 황제와 대신들
#조정 대신들이 한복 대신 양복을 입는다?
’조선왕조실록‘과 ’고종시대사‘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양복을 처음 입은 사람은 1881년 조사시찰단원입니다. 당시 조선은 세계의 흐름과 문명을 시찰하기 위해 일본에 수신사와 조사시찰단을 보냈습니다. 조사시찰단 중 일부가 앞서 서구화 과정을 겪은 일본에 다녀오면서 양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록상 당시 대신들은 양복을 입게 돼 있습니다. 양복이 관복으로서 정해진 때는 1896년입니다. 고종 황제는 1895년 단발령을 시행한 데 이어 이듬해 관복의 양복화를 진행했습니다. 1896년 무관들의 복장이 양복으로 정해졌고, 1900년에는 문관의 옷이 양복으로 정해졌습니다. 고종 황제는 문관의 양복보다 앞서 군대를 통수하는 대원수로서의 서양식 군복을 착용했습니다. 따라서 1900년대 초 대신들이 양복을 입는 모습도 납득할 만합니다.
지수현 원광디지털대 한국복식과학학과 교수는 “당시 법령상 대신들이 양복을 입게 돼 있었지만, 구한말부터 양복에 대한 지식인의 인식은 호의적이지 않았고 당시 양복 가격도 굉장히 비쌌다”면서 “극적인 연출을 고려했을 때 친일 인사들이 양장을 한 모습은 드라마와 어울린다”고 했습니다.
유진 초이와 고애신이 서로의 입을 가리며 지난밤에 본 저격수를 떠올리고 있다.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여자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이 본 신문은 당시를 ’낭만의 시대‘라고 표현했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은 탄탄한 스토리 만큼이나 ’낭만적인 문화‘를 잘 고증한 것 같습니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디테일‘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앞서 커피에 대해 의견을 준 강찬호 서정대 교수는 “’미스터 션샤인‘은 역사적 고증이 잘 됐다”고 했습니다. 비록 ’창작된 이야기‘ 이지만 역사적 사실이 촘촘하게 녹아든 ’미스터 선샤인‘과 함께 남은 ’낭만의 시대‘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차형조 인턴기자 cha691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