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은 인화학교 폐쇄결정 7년을 즈음해 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한 김용목 목사를 다시 찾았다. 인터뷰는 인화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재활 사업장인 ‘까페 홀더’에서 진행됐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인화학교 폐쇄가 결정된 지 7년째다. ‘일요신문’과도 7년 만이다.
“얼마 전, 기자의 연락을 받고 ‘일요신문’과의 7년 전 인터뷰를 다시 봤다. 그 때 입었던 여름옷을 올 여름도 입고 있더라. 벌써 세월이 그리 됐나 싶다.”
―소설과 영화가 화제를 모았던 2011년 이후에야 재조사가 실시되고 일부 주범자는 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은 패소했다고 들었다.
“2012년에 시작했고, 지난 2015년 5월 최종 패소했다. 우리 입장에서 ‘도가니 사건’은 개인적 범행만으로 볼 수 없다. 그저 교사와 사회복지사, 행정실 직원의 개인적 일탈로 외면할 수는 없지 않나. 경찰 재조사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30명, 가해자는 13명이지만 대책위가 확인한 것은 이보다 훨씬 많다. 남자 교사들의 30~40%가 가해자, 당시 재학생의 30% 이상이 피해자라고 보면 된다. 이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었다. 교육청에선 학교를 관리감독 못했다. 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을 관리·감독해야 할 구청 및 시청도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패소 이유가 뭔가.
“결국 (관할 기관이) 직접적인 감독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돈만 주고, 운영에 대한 모든 책임은 학교법인과 사회복지법이 진다는 것이다. 그 학교 안에서 어린 학생들이 피해를 받았는데 국가 책임이 아니다? 솔직히 이긴다는 확신도 서지 않았지만, 향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시 국가책임을 더 강력하게 묻자는 차원에서 소를 제기한 것도 있었다. 다만 아무 것도 인정이 안 되어서 아쉽긴 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패소 이후 소송비용 청구와 관련해서도 아쉬움을 털어놨다.
“나중에 패소해서 소송비용이 피해자 7명에게 부과됐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대책위 차원에서 광주시에 면제를 요구했다. 소송은 공익적 목적이었다. 심지어 내가 나서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해서 내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도 했다. 다행히 광주시에서 취지를 이해하고, 시 역시 도덕적인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기에 면제해 줬다.”
대책위의 이 같은 법정 투쟁은 비록 패소했지만, 다른 측면에서 법 개정의 자양분을 마련하기도 했다. 도가니 사건 이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에 따라 공공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외부 추천 이사 두 명 배정이 의무화됐으며, 13세 미만 혹은 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 한해서는 가해자의 공소시효를 없애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도록 개정됐다.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원회가 28일 오전 광주 고등법원 앞에서 인화학교 전 행정실장 김모(63)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려 한다며 재판부를 규탄하며 삭발하고 있다. 2012.11.28 연합뉴스
“문제의 A 교사는 처음에 범행을 시인하다가 후에 진술을 번복한 경우였다. (법 개정 이전이라) 공소시효도 지났기에 사법적 처벌 근거도 없었다. 그 교사는 공립학교에 채용됐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대책위는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의 진술이 있기에 그 교사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고 퇴직도 요구했다. 그 교사는 퇴직을 요구한 사람들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다행히 개연성이 있기에 피소고인들은 처벌을 피했고, 그 교사는 압박 끝에 조기 명예퇴직으로 학교를 떠났다. 파악을 해봐야겠지만, 현재까지 가해교사들 중 여전히 교편을 잡는 사례는 없다.”
―반대로 사건을 외부에 알렸던 내부고발 교사들도 있었다. 그 분들은 어떻게 됐나.
“사건 이후 대책위의 요구로 공립학교인 선우학교가 세워졌다. 그 학교가 세워지면서 대책위와 함께하며 내부고발에 나섰던 교사 세 분이 특채로 채용됐다. 나머지 분들 중에서는 다른 사립학교나 임용을 통해 공립학교로 간 분들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다.”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들었다.
“가깝게 지냈던 학부모가 있었다. 피해자들의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본인의 딸도 피해자로 드러났다. 이 얘기를 하니, 그 학부모는 정작 본인의 딸과 관련해 한 번만 더 얘기를 하면 연을 끊어버리겠다고 하더라. 그리곤 일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런가 하면, 광주터미널에서 농성을 이어갈 때, 어르신 한 분이 ‘부끄러워 못 살겠다’고 면박을 주더라. 그런 일 정말 많았다.”
영화 ‘도가니’의 포스터.
“아니다. 정기적으론 모이진 않지만 공식적으로 종료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아직 피해자들 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치료와 그에 따른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 둘째로 백서 출판까지 가야한다는 점 때문이다. 도가니 대책위 활동은 지역 운동의 소중한 경험이고, 전국적인 의미가 있는 활동이다. 정리가 필요하다.”
―피해자들의 후유증이 심각할 텐데.
“대책위 초기 활동 중 가장 안타까운 일이 가해자-피해자 분리가 안 됐다는 점이다. 2005년 6월 대책위에서 처음 상담을 했고, 2006년 11월이 되어서야 분리가 됐는데 거의 14~15개월 동안 함께 한 것이다. 이후 간헐적으로 피해자들의 심리치료와 관련 프로그램을 연결했고, 2011년 말에서야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에 한해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했다. 이후엔 광주로 전문의가 오고, 약 4~5년 정도 이어졌다.”
―여전히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분들도 있나.
“정기 치료는 종료됐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분이 세 분 정도가 있다. 그들 중에는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자가 있다. 그 분은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는데 최근 악화되면서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이 카페(인화학교 졸업생들이 일하는 카페 홀더)에서 일한 분이었다. 얼마 전 다시 일하고 싶다고 연락 왔지만, 전문의가 아직 안된다고 하더라.”
―공교롭게도 사건이 벌어진 곳이 ‘인권도시’ 광주다.
“이 사건이 제대로 해결해야 인권도시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부끄러움을 씻는 것이다. 그래도 외부인들은 말한다. 광주였기에 문제 해결이 가능했다고. 그 평가가 맞다고 본다.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소설과 영화 등 외부 요인은 하늘이 도운 거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대책위를 비롯해 모두가 오랫동안 견고하게 지역에서 활동을 해왔기에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이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김용목 목사는 훗날 피해자와 대책위에 금전적 후원을 해주기도 한 소설 ‘도가니’의 공지영 작가와 도서출판 창비, 영화 ‘도가니’의 제작자 엄용훈 삼거리픽쳐스 대표, 피해자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해준 가수 박강수 씨, 법적 지원을 함께해 준 이명숙 변호사와 지역 민변 소속 변호사들, 그리고 사건 재조사의 기반을 마련해준 이금형 전 광주경찰청장 등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광주=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인화학교 졸업생들의 자립터전 ‘카페 홀더’
카페 홀더는 인화학교 졸업생들의 자립을 위한 사업 공간이다. 가운데 청각장애인을 위한 나무 주문판이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장소는 사회적협동조합 ‘카페 홀더’ 1호점이었다. ‘홀더’는 홀로 삶을 세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한다. 카페 홀더는 현재 광주 마륵동 광주도시철도공사에 위치한 1호점과 인화학교의 관할기관이자 대책위가 천막농성을 벌였던 광산구청에서 2호점이 운영 중이다. 2011년 12월 문을 연 카페 홀더는 인화학교 출신 졸업생들의 자립을 위해 운영 중이며, 현재도 6명의 졸업생들이 바리스타와 점원으로 근무 중이다. 김용목 목사는 이와 관련해 “규모는 작지만 우리에겐 소중한 공간”이라며 ”도가니 사건이 그저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 우리 지역의 공동체 속에서 피해자들이, 그리고 학교 졸업생들과 농아인들이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곳 설립을 위해 모두 두 번의 후원 음악회가 열렸으며, 2호점은 공지영 작가와 창비의 지원으로 문을 열게 됐다. ‘카페 홀더’엔 특이한 게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들이 주문을 받을 수 있도록 메뉴는 ‘나무그림판’으로 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따금씩 이곳에선 지역인사들이 직접 일일점장으로 나서 사회공헌활동을 꾀하기도 한다. ‘카페 홀더’는 도가니 사건에서 비롯된 하나의 희망적 산물이며, 남은 자들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한] |
인화학교 폐쇄결정 7년(2)-‘르포’ 폐쇄된 구 인화학교, 7년 만에 다시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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