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은, 이학주, 하재훈은 각각 고등학교 졸업 후 시카고 컵스와 계약하면서 미국에 진출했다. 신일고 출신인 이대은은 2007년에, 충암고 출신 이학주와 마산 용마고 출신인 하재훈은 2008년에 컵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대은은 컵스 계약 당시 입단 소감으로 ‘3년 안에 빅리그에 올라가겠다’라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대은은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만 해도 미국 야구를 전혀 모른 터라 입단식에 참석했던 컵스 구단 관계자들은 속으로 비웃었을지도 모른다”면서 “미국에 가보니 3년 안에 빅리그에 데뷔한다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재훈도 비슷한 얘기를 전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미국에 갔었다. KBO리그처럼 미국 야구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만 나뉘는 줄 알았다. 루키부터 싱글A, 하이 싱글A, 더블A, 트리플A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걸 전혀 몰랐다. 1년에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미국 야구를 접한 뒤 앞으로 내가 갈 길이 험난하겠다는 생각으로 절망한 적도 있었다.”
‘2019 KBO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에 지명된 이학주와 kt에 지명된 이대은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충암고 3학년이었던 2008년 시카고 컵스와 115만 달러에 계약을 맺은 이학주도 추신수처럼 어느 정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디면 빅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을 거란 꿈이 있었다. 2012년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유망주 랭킹 전체 44위에 선정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지만 2013년 4월, 무릎 십자인대 파열이란 부상을 당한 후 이전 기량을 되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카고 컵스를 거쳐 탬파베이 레이스의 촉망받는 마이너리그 유격수로 이름을 알리다 샌프란시스코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스프링캠프를 통해 메이저리그 입성을 노렸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시카고 컵스를 ‘친정팀’으로 둔 3명의 선수들은 이후 각자의 상황에 따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은은 2014년까지 컵스에서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마치고 2015년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로 이적했다. 2016시즌이 끝난 뒤 지바롯데에서 퇴단한 이대은은 군 문제 해결을 위해 그해 12월 경찰야구단에 입대했다.
이학주는 2016년 샌프란시스코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옵트아웃(잔여계약을 포기하고 FA 신분 취득)을 행사하고 팀을 나오면서 졸지에 소속팀이 없는 상황에 처했다. 공교롭게도 이학주가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한 뒤 샌프란시스코 내야수들이 연쇄 부상을 당했다. 만약 이학주가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팀에 남아 있었다면 그토록 소원했던 빅리그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당시 이학주한테 일본 프로팀에서 영입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군 계약이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학주의 설명이다. 그는 한동안 미국에 머물며 다른 팀을 알아봤지만 소득 없이 시간만 보내야 했다. 이학주는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심경을 털어놓았다.
“마이너리그에서만 8년을 보낸 터라 희망만 있다면 10년도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느 팀에서도 내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희망 없이 마이너리그 생활을 지속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아쉬운 건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그동안 미국에 오신다고 할 때마다 내가 완강히 만류했다. 나중에 빅리그로 올라가면 오시라면서 말이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게 가장 괴로웠다. 단 한 번이라도 부모님께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이뤄지지 못했다.”
‘2019 KBO 2차 신인 드래프트’에 참석해 2라운드 6순위로 SK에 지명된 하재훈. 연합뉴스
지난 8월 20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는 2019 KBO 해외파 트라이아웃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10개 구단 스카우트는 물론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까지 자리를 찾았다. 가장 관심을 많이 모은 이들은 이대은, 이학주, 하재훈, 일명 ‘빅3’였다. 경찰청 소속 선수로 활약 중인 이대은은 다음 날 선발 등판을 앞둔 상태라 전력투구하지 않았지만 이미 KT의 지명이 예상된 상태라 뜨거운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학주, 하재훈이 스카우트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학주는 3루와 유격수 위치에서 펑고를 받으며 빼어난 수비 실력을 자랑했고 타격에서도 급이 다르다는 평가를 얻어냈다. 하재훈은 타격과 송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19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이대은은 예상대로 전체 1순위로 KT에 지명됐다. 해외 복귀파 선수가 전체 1위로 지명된 건 남태혁(KT·2016년) 이후 두 번째다. 이학주는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가진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하재훈은 2라운드에 SK 유니폼을 입게 됐는데 SK는 하재훈을 야수가 아닌 투수로 지명해 눈길을 끌었다. 하재훈은 시카고 컵스 입단할 때는 포수로, 마이너리그에서는 외야수로, 일본 독립리그와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는 투수와 야수로, 그리고 SK 와이번스에서는 투수로 지명 받는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됐다. ‘빅3’ 중 유일한 기혼자로 아들이 있다.
해외 복귀파 3인방은 모두 같은 에이전트사 소속 선수들이다. 오승환, 임창용, 최형우가 속해 있는 스포츠인텔리전스그룹(대표 김동욱)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송승준·채태인 10년간 맹활약’ 해외 복귀파 KBO리그 성적표 그동안 KBO리그 해외 복귀파 선수들의 활약은 어떠했을까. 은퇴한 선수들을 제외하고 현재 선수로 뛰고 있는 선수들 중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2007년 해외파 특별지명으로 국내에 복귀한 송승준(38), 채태인(36·이상 롯데)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너리그 출신의 송승준은 롯데, 채태인은 삼성에 입단, 10여 년간 꾸준히 활약했다. 채태인은 2001년 두산 베어스의 2차 10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와 80만 달러에 계약,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어깨 부상과 수술로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채 돌아와야만 했다. 채태인이 보스턴에 입단했을 당시 친구 추신수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했다. 둘 다 투수로 각기 다른 유니폼을 입었다가 야수로 전향한 케이스. 채태인. 사진 출처=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해외파 출신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팀은 SK다. SK는 2009년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던 김동엽(28)을 2016년 신인 2차 9라운드(전체 86순위)로 지명, 외야수와 지명타자로 활용 중이다. 김동엽은 2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2007년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LA 에인절스와 계약했던 정영일(30)은 2014년 2차 5라운드에 SK 지명을 받고 상무에 입단하면서 군 복무를 먼저 해결했다. 2016년 1군에 진입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21경기에서 24⅔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4.74를 기록했던 것. 올 시즌 정영일은 트레이 힐만 감독 밑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불펜 투수로 자리를 잡은 그는 시즌 40경기에서 2승 11홀드 평균자책점 4.21로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 특히 후반기에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SK에는 파란만장한 스토리의 주인공인 해외 복귀파 선수가 또 있다. 개명 전 남윤희, 개명 후 남윤성으로 불리는 그는 2006년 두산 1차 지명을 거절하고 미국행을 택했다.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었지만 어깨 부상으로 2012년 마이너리그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남윤성은 일본까지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치렀지만 불러주는 팀이 없자 당시 독립리그인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다. 고양 원더스에선 2년 유예 조항에 묶여 정식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다. 2013년 공익근무로 군 문제를 해결한 다음 201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6라운드에서 SK 유니폼을 입었지만 주로 2군에서 뛰고 있다. KT 남태혁은 2016 KBO리그 신인 2차 지명자회의에서 1순위로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KBO리그를 거치지 않고 해외로 진출한 선수가 신인 2차 지명에서 가장 먼저 호명된 것은 남태혁이 처음이었다. 더욱이 KT는 투수를 포기하고 1라운드에 남태혁을 지명했다. 그만큼 남태혁에 대한 KT의 기대가 컸다. 제물포고등학교 4번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남태혁은 고교 졸업 후 2009년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마이너리그 데뷔 개막전에서 홈런포를 터트리며 파워를 자랑하기도 했지만 4년 동안 루키리그에서만 머물다 부상으로 상위 리그에 올라가지 못하고 팀을 나왔다. 현재 남태혁은 KT 1군보다는 2군에서 생활한다. 통산 1군 출전이 54경기에 불과하고 올 시즌 타율은 2할에도 못 미친다. 포지션이 1루수지만 수비에 허점을 보이면서 대타로 활용되고 있는데 한정된 기회 속에서 실력을 보여주고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구단에선 남태혁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남태혁은 KT에 입단한 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야구를 시작하고 가장 잘한 일로 인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어머니한테 집을 장만해 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마이너리그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 선수는 문찬종(휴스턴 애스트로스), 권광민(시카고 컵스), 박효준(뉴욕 양키스), 배지환(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정도다. 고교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마다하고 곧장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선수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 ‘눈물 젖은 햄버거’를 먹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부풀리기에 현실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다. 미국 야구의 수준과 두터운 선수층은 한국 선수들의 도전이 무모한 도전으로 끝날 수 있다는 걸 결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