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교사의 장애학생 성폭행 의혹에 대한 파문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16일 오후 피해학생의 부모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8.7.16 연합뉴스
강원지방경찰청은 강원도 태백의 한 특수학교에서 장애 여학생 3명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특수교사 박 아무개(44) 씨에 대해 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 2014년부터 최근까지 4년여간 교내 체육관과 교실 등지에서 지적 장애가 있는 학생 2명을 성폭행, 1명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 7월 10일 학교 측이 피해 학생 중 1명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학생들로부터 피해 사실을 전해 듣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불과 3년 전에는 충남 천안의 한 특수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의 대법원판결이 있었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충남 천안의 한 특수학교에서 지적장애를 앓는 10대 여학생 7명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교사 이 아무개(51) 씨에게 징역 15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이 씨는 지난 2010년 3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자신이 가르치던 10대 여학생 3명을 5차례 걸쳐 성폭행하고, 4명의 여학생을 7차례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두 사건은 각각 ‘강원판 도가니’와 ‘천안판 도가니’로 불렸다.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과 닮았기 때문이다.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이후 지난 2011년 10월 국회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아동과 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장애 여성과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범죄 형량을 각각 7년, 10년으로 높였고, 공소시효도 폐지했다. 또 장애인 보호·교육 시설의 장이나 직원이 장애인을 성폭행하면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 하도록 했다.
하지만 ‘도가니 사건’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2, 제3의 도가니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몇 가지 원인과 배경을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특수학교에서 성범죄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학교의 ‘폐쇄성’을 꼽았다. 의사 표현이 원활하지 않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된,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하게끔 하는 현실이 이른바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한다는 주장이다.
한경근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교는 비장애인들과 거리상 분리 돼 위치적으로 폐쇄성을 가지고, 학급에서는 담임선생님이 워낙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게 된다”면서 “도덕적이지 못한 교사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다른 환경보다 높다”라고 지적했다.
장애 학생들의 범죄를 예방하고 인권 교육을 지원하는 기구는 사실상 유명무실해 보였다. 현재 교육부는 전국 특수교육지원센터 199개소 산하에 ‘장애 학생 인권지원단’ 202개 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장애 학생 인권지원단에서는 매월 1회 이상 관내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장애 학생 인권교육 지원 및 범죄예방 활동을 한다”면서 “교육기관이다 보니 학생 개개인의 범죄사실 등을 수사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전했다. 태백 소재 학교를 관할하는 장애 학생 인권지원단 관계자도 “보통 학생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 학생 담당자 위주로 인권 실태를 파악하고 학교 측 필요에 따라 강사를 지원하는 등의 일을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사고 학교로부터 보고된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당국의 감시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이 사건 고발은 피해자인 장애 학생과 내부고발인의 몫이 됐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경우 내부고발자가, 천안 특수학교 성폭행 사건은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계기로 구성된 부처 합동조사단이, 태백 특수학교 성폭행 사건은 피해 학생이 직접 사건을 고발했다. 최초 피해를 당한 날로부터 적잖은 시간이 흐른 때였다.
정종화 삼육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차형조 인턴기자
두 전문가는 특수 교원 수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재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특수교사 법정 정원의 산출 기준(유치원 4명, 초등학생 6명, 중학생 6명, 고등학생 7명당 1학급 기준 교사 1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장애인 정책 1년을 말하다’에 따르면 이 기준 대비 특수교사 확보율은 2017년 4월 기준 67.2%(1만 9327명)다.
한 교수는 “성폭력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가해지는 유·무형의 차별과 폭력 등이 교사 개인의 특성이나 스트레스 등에서 비롯돼선 안 된다”면서 “법정 교원을 확보하고 특수교사들이 가지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도 “교사 한 명이 너무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학생을 소수로 하고 교사 수를 늘리면 교사끼리 크로스체킹(상호감시)도 가능할 것이다”고 조언했다.
두 교수는 교원과 학생 모두에게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도 공감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는 1급 정교사 자격을 받게 되면 그 이후에 자격검정을 하지 않는다”면서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인성 등을 재교육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을 생각해 볼 때가 됐다”고 했다.
정 교수는 “지적 장애 학생의 경우 (인지) 능력이 보통 3세~5세 정도 된다”면서 “그 나이면 ‘예’, ‘아니오’ 정도의 소통이 가능한 나이이기 때문에 범죄행위에 대해서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하게끔 어려서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장애 학생이 의사표시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면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18년 교육부 ‘특수교육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특수교육대상자는 9만 780명으로 전년 대비 1427명이 증가했다. 이 중 29%(2만 6337명)는 특수학교 및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배치됐다. 특수학교 또는 일반학교에서 공부하는 장애 학생들이 범죄의 위험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고민해 볼 시점이다.
차형조 인턴기자 cha6919@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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