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고성준 기자.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이 조선호텔과 신세계백화점을 이명희 회장에게 물려준 것처럼 호텔 등 유통부문은 이부진 사장의 몫이 될 것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장은 호텔신라 지분이 단 1주도 없다. 호텔신라는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가 11.7%, 삼성전자와 삼성SDI 등 전자계열사가 5.2%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부진 사장에게는 호텔신라 최대주주에 오를 만한 자산이 충분하다. 보유 중인 삼성SDS 지분 3.9%의 시가만 7000억 원 상당이다. 삼성 계열사의 호텔신라 지분가치와 엇비슷하다. 하지만 삼성SDS 지분을 팔고, 다시 삼성 계열사의 주식을 사는 과정은 복잡하고, 상당한 양도소득세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주목할 만한 사례가 제일기획이다. 애초 제일기획은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몫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2016년 제일기획의 지배주주는 삼성물산에서 삼성전자로 바뀌었다. 이서현 사장의 삼성SDS 지분은 이부진 사장과 같다. 공교롭게도 제일기획의 삼성 계열사 지분도 7000억 원 상당이다. 이서현 사장이 제일기획 최대주주가 되려면 주식을 팔고 살 필요 없이 전자와 보유 지분을 맞바꾸면 된다.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호텔신라 지분을 삼성전자로 넘기면 제일기획과 같은 구조가 된다. 두 자매는 삼성SDS 지분을 삼성전자에 넘기는 주식교환만으로 호텔신라와 제일기획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 삼성물산 삼분(三分) 해소는 어떻게?
삼성물산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지분율 17.08%)이다. 두 자매도 각각 5.1% 지분을 갖고 있어 이른바 ‘3두’ 체제다. 물론 삼성물산은 자사주가 발행주식의 13.8%에 달해 지주사와 사업사로 인적분할을 할 경우 이 부회장은 안정적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자매의 지분은 그룹 지배력과 직결되는 만큼 외부에 매각할 수 없다. 순환출자에 걸려 계열사에 매각할 수도 없다. 이 부회장이 매입하기엔 규모(2조 5000억 원)가 너무 크다. 사업부분별로 인적분할한 후 자매 간 맞교환으로 지분을 정리하는 방법이 있다.
문제는 각자 맡고 있는 사업의 규모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내 자산은 이부진 사장의 유통·레저(웰스토리 포함)가 3조 원 남짓이고, 이서현 사장이 이끄는 패션이 1조 3000억 원가량이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유통·레저가 1800억 원, 패션이 330억 원으로 차이가 크다. 유통·레저가 그룹 내부 일감도 많은 반면 패션 부문은 그룹 관련 사업이 거의 없다. 웰스토리에 상응할 만한, 이서현 사장 몫이 뭔가 필요하다.
금산분리가 아직 안된 에스원의 최대주주는 삼성SDI(11%)지만 4개 금융계열사가 가진 지분도 9.6%에 달한다. 이들 지분 20.6%의 시가는 7000억 원 남짓이다. 일본 세콤과 합작기업이지만 업종 특성상 그룹 관련 일감이 많다. 연간 순이익은 호텔신라나 제일기획보다 많다. 미래 성장성도 크다.
# 계열사 지분 가졌으면 ‘호재’(?)
통상 유동화가 어렵던 계열사 지분 해소는 주가에도 호재일 수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SDI(0.2%)와 삼성전기(0.3%), 삼성중공업(3.1%), 삼성엔지니어링(0.1%), 제일기획(0.2%) 지분을 갖고 있다. 규모가 미미해 매각해도 경영권에 영향이 거의 없다. 삼성화재의 삼성엔지니어링(0.2%), 삼성카드의 제일기획(3%) 지분 역시 소수지분이라 경영권과 거리가 멀다. 시장에 제 값만 받고 판다면 현금흐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진짜 ‘대박’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이다. 현재로서는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삼성전자에 넘기거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상장해 만든 현금으로 삼성금융 계열사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어찌됐거나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에 막대한 현금이 유입되는 시나리오다.
반면 호텔신라나 에스원, 제일기획 등은 현금을 수반하는 거래보다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간 맞교환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지배구조 불확실성 해소라는 간접적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해당 계열사의 재무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