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의원들이 9월 27일 긴급 의원총회에서 검찰의 심재철 의원실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박은숙 기자
이를 뒤늦게 확인한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지난 9월 17일 비공개 정부 예산정보를 취득하고 돌려주지 않는다며 심 의원실 보좌진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고발 나흘 만인 지난 9월 21일 심 의원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한국당은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기재부의 고발과 검찰의 압수수색을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강력반발하고 있다. 한국당은 비대위와 비상의총을 연이어 개최하며 야당 탄압에 대한 대정부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당내에선 국정감사와 정기국회 보이콧까지 거론되고 있다. 정부 예산정보 유출 논란이 정국의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쟁점은 정부 예산정보 유출의 불법 여부다. 심 의원 측은 “시스템 미비로 노출되어 있던 자료를 다운 받았을 뿐”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 의원은 해킹과 같은 불법행위는 하지 않았다며 해당자료 입수 과정을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기재부 측도 시스템 미비로 자료가 유출됐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 측은 “남의 집 문이 열려 있으면 물건을 훔쳐가도 되는 것이냐”며 불법유출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당 관계자는 “(정윤회 문건 유출 당사자인) 조응천 의원을 직접 영입해 국회의원으로 만든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 아닌가. 조응천이 하면 착한 유출이고 야당이 하면 나쁜 유출인가”라고 비판했다.
한 변호사는 “내용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데 불법인지 아닌지는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심 의원 측이 비공개 자료라는 사실을 알고도 유출했는지, 유출된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국가 이익이 훼손됐는지 등이 밝혀져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측에 따르면 심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는 작년 5월부터 지난 8월까지 청와대와 주요 정부부처 카드승인 내역 등이다. 기재부는 이러한 자료가 유출되면 국가안보전략이 유출될 우려가 있으며, 주요 고위직 인사의 일정 및 동선이 노출돼 신변안전에도 위해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 측은 기재부의 주장이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심 의원 측 관계자는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는 카드일련번호와 사용일시, 사용금액만 있다. 누가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연히 고위직 인사의 동선도 알 수가 없다. 청와대 인사들이 밥 먹고 돌아다닌 것이 안보전략과는 무슨 관계냐”고 되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기재부 측에 수차례 연락해봤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기재부 측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모두 서울로 불려갔다. 국회에서도 자꾸 전화가 와서 저희가 답변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 측 관계자는 “기재부 주장대로라면 그렇게 중요한 자료를 허술하게 관리한 것이냐. 우리를 고발하기 전에 자료를 방치한 책임자들부터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쟁점은 일련의 과정이 야당 탄압에 해당하느냐다. 심 의원 측은 “(신규택지 후보지를 사전 공개한) 신창현 의원은 고발된 지 보름이 지나도 수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발된 지 나흘 만에 압수수색이 들어왔다. 과연 (검찰) 혼자 판단했나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윗선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당의 한 당직자도 “당연히 청와대는 관련이 없다고 하겠지만 청와대와 교감 없이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의원실을 고발 나흘 만에 압수수색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여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두고 심 의원이 치명적인 자료를 확보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심 의원실 관계자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자료 중에서도) 그런 (치명적인) 자료는 없었다. 이미 발표한 자료와 비슷한 수준이다. 여권이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심 의원실은 9월 27일 확보한 자료 일부를 공개했다. 심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지난해 5월부터 지난 8월까지 2억 5000만 원가량의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사용이 금지된 시간대나 주말과 공휴일에도 업무추진비를 사용했고, 술집과 BAR 등에서도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정황이 발견됐다.
이 밖에 업종이 누락된 인터넷 결제 13건, 미용업종 3건, 주말과 공휴일에 백화점업에서 사용된 133건, 오락관련업 10건 등 용처가 불명확한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청와대 측은 “청와대는 24시간 365일 근무하는 조직”이라며 “내부 규정상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측은 “일부 술집에서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것은 일반식당 영업이 종료해 부득이하게 사용한 것이며, 백화점에서는 외빈행사 식자재를 구입하거나 백화점 내 식당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오락관련업의 경우에는 “영화 ‘1987’을 사건 관계자 등과 관람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심 의원 측은 9월 28일 추가로 자료를 공개했다. 이번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소관 업무회의에 참석하면서 부당하게 회의 수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 직원들은 각종 청와대 내부 회의에 참석하고 회의수당 명목으로 수십만 원씩 회의비를 받았다.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는 공무원인 경우 자기 소관 사무 이외의 위원으로 위촉됐을 경우에 한해서만 회의비 지급이 가능하며 자신이 소속된 중앙관서 사무와 담당 업무에 대해서는 회의비를 받을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해당 돈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정식으로 받은 정책 자문료”라고 해명했다.
한편 심 의원 측이 공개한 자료는 도덕적인 비판은 있을 수 있겠지만 정부가 무리수를 둬가며 막아야 할 만한 수준의 자료는 아니다는 의견이 많다. 심 의원 측도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고 내부규정 위반 정도”라고 인정했다. 앞서의 한국당 당직자도 “솔직히 말해서 국정감사에서 흔한 수준의 자료밖에 안 되는데 (여권이) 왜 (압수수색으로) 스스로 판을 키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해당자료가 여권에 민감한 자료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 전직 대통령이 국정원 특활비 문제로 기소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당 측 강규형 전 KBS 이사는 감사원 감사에서 법인카드로 월 13만 원 정도를 업무 외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해임되기도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