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이 대법원 비자금까지 전방위적으로 수사할 것을 예고한 가운데, 법원과 검찰의 신경전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사법농단과 관련해 검찰은 지난해부터 10여 건이 넘는 고발을 접수했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올해 6월에야 착수했다. 이는 검찰이 법원을 겨냥한 수사를 내키지 않아했기 때문이란 게 정설이다. 검찰 내에선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이 맡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굳이 갑을관계로 따지면 우리가 을, 법원은 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대법원은 갑중의 갑”이라면서 “검사 재직 때는 물론 나중에 변호사 개업을 생각해도 법원과 등을 지면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로비를 하고 재판을 거래했다는 등의 충격적인 의혹이 불거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여론이 들끓었고, 여권 핵심부도 양승태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던 검찰로선 더 이상 선택의 폭이 없었다. 이런 차에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 협조 방침을 밝혔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 산하 공공형사수사부가 맡았던 사건을 3차장이 지휘하는 특수부로 재배당하며 ‘칼’을 빼들었다.
수사는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무엇보다 증거 확보가 어려웠다. 각종 압수수색 영장이 무더기로 기각된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10건 중 1건에 대해서만 영장이 발부됐다. 지난해 영장 발부율이 90%에 육박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낮은 수치다. 검찰이 신청한 첫 구속영장(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도 기각됐다. 유 전 연구관은 대법원 근무를 마칠 당시 재판 관련 기밀 문건들을 반출하고,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파기한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발끈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영장전담 판사가 유 전 연구관 개인 변호사인 줄 알았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무엇보다 그렇게 긴 기각 사유는 처음 봤다. 노골적인 제 식구 감싸기에 불과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통상 영장기각 사유는 200자 안팎인데 유 전 연구관의 경우 3600자 분량이었다. 앞서의 검사도 “영장판사가 마치 법정에서 판결을 하는 것처럼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영장 심사도 이렇게 깨지고 있는데 재판은 해보나마나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법원 행태에 대해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며 공개적으로 비판을 했다. 그리고 특수4부를 추가 투입했다. 기존에 특수1부와 3부 외에 4부까지 합류하면서 검사 20명 이상이 사건에 매달리게 됐다. 수사관과 지원 인력까지 합하면 100여 명에 달하는 규모다. 이는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에 필적하는 것으로 그만큼 검찰의 수사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론과 여권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검찰은 시간이 갈수록 법원이 궁지에 몰릴 것이라고 점친다. 장기전을 대비하고, 또 자신만만해하는 이유다. 또한 물적 증거 확보가 어려운 탓에 최대한 많은 인적 증거를 수집한다는 방침이다. 관련자들을 불러 진술을 청취하고 이를 통해 법리를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수사팀 확대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미 50명에 가까운 판사들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선 출석을 통보받고 아직 응하지 않은 판사들까지 합하면 그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측한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지금까지 제기된 것 말고도 다른 건들에 대한 의혹을 포착했다고 한다. 양승태 대법원의 비자금 부분도 그 중 하나다. 서울중앙지검 한 고위 인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영장 기각으로) 막혀버리지 않았느냐. 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하고,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쓸 것”이라면서 “지금 상황에서 머뭇거리거나 봐주기식 수사를 하면 우리가 지탄을 받게 된다. 판사 개인 비리를 포함해 사법부 전반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이뤄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의 칼날이 사법농단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향할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법원은 일단 반응을 자제하고 있긴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반발 기류가 역력하다. 우선 검찰을 향해서다. 검찰이 법리보단 여론에 따라 사법부에 대한 ‘망신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한 부장판사는 “국민들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법부가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법을 다루는 곳이다. 여론에 흔들려선 안 되는데 수사 책임자인 윤석열 지검장이 직접 나서서 수사진을 선동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면서 “판사들을 줄줄이 검찰로 불러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장 기각과 관련해서도 할 말은 있다. 또 다른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영장 기각이 국민 눈높이엔 맞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영장에 적시된 혐의 하나 하나 법리만 놓고 따지면 애매모호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오해를 받지 않으려 자세히 설명하다 보니 기각 사유가 길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장이 직접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고, 또 법원 내부에도 이번 사건에 대한 심각성을 잘 아는데 편파적으로 그렇게 했겠느냐. 검찰은 법원을 탓하기 전에 먼저 영장 청구 내용이 적절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법원 내에선 앞으로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 대해 원칙론을 고수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90%가량이었던 영장 발부율이 이번 사건에서 10%로 떨어졌다는 것에 대한 검찰의 비판이 나온 이후다. 앞서의 부장판사는 “그동안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 대해 많은 편의를 봐준 게 사실이다. 솔직히 엄격하게 따지면 그렇게 많은 영장이 발부될 수 있겠느냐”면서 “이번 사건의 영장 기각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라도 이젠 좀 더 영장의 요건과 내용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라고 전했다.
검찰과는 별개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불만도 새어나온다. 김 대법원장이 지나치게 정권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 대법원장이 적극적인 수사 협조를 천명한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왔다. 이를 두고 일부 판사들은 “3권 분립이 무너진 장면”이라고까지 했다. 대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이라 해도 개인 판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순 없다. 그런데 마치 영장 기각에 대해 대법원장이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했다. 그것도 대통령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말이다. 이는 판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