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과 각 당 대표들이 9월 5일 국회의장 주최 정당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이정미, 바른미래당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문 의장,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박은숙 기자
“현역 의원이 장관인 부처를 눈여겨봐라.”
정치권 한 관계자가 전한 문재인 정부 2년차 국감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10월 10일부터 29일까지 20일간 열리는 국감은 사실상 공수교대 후 치러지는 첫 번째 승부다. 지난해에는 대통령 궐위선거 이후 5개월여 만에 국감을 한 탓에 전 정부 인사들이 부처 곳곳에 남아있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정부의 인사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면이 속출했다. 야권도 포지션이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9년 2개월 만에 허허벌판으로 나왔지만, 야성은 종적을 감췄다.
올해는 다르다. 공수교대가 명확하다. ‘여당=수비’, ‘야당=공격’의 전선이 더욱 명확해졌다. 하지만 여당의 고민은 깊다. 민주당 한 의원의 말이다. “소속은 여당이지만, 국감 특성상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 감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공무원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의원이 특정한 부처는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장관으로 있는 조직이다. 각 부처가 여당을 방패삼아 ‘소나기만 피하자’는 인식이 파다하게 퍼졌다는 얘기다. 현역 의원 국회 인사청문회 불패를 이어간 부처가 또 다른 형태의 특혜를 받을 수도 있는 셈이다.
10월 초 현재 현역 의원이 장관으로 있는 부처는 행정안전부(김부겸), 해양수산부(김영춘), 국토교통부(김현미), 문화체육관광부(도종환), 농림축산식품부(이개호) 등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전직(홍종학) 의원이 장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교육부(유은혜)와 여성가족부(진선미) 장관 후보자에 민주당 현역 의원을 지명했다. 사실상 18개 부처 가운데 30% 이상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수비보다는 공격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수비와 공격의 경계선에서 적잖은 고민이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20대 후반기 국회 원 구성이 지연되면서 국감 한 달 전 신규 상임위에 배치된 의원실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자료협조 등에서 늘공(늘 공무원)이 주도권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상임위를 바꾼 야당 한 의원은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전직 보좌관은 상임위 교체에 대해 “이직 이상의 업무 부담감이 있다”고 전했다.
제1야당의 딜레마도 만만치 않다. 자유한국당은 ‘돌아온 홍반장’으로 내부 갈등의 시계추가 한층 빨라졌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9월 15일 귀국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봄을 찾아가는 고난의 여정을 때가 되면 다시 시작할 것”이라며 사실상 정치재개의 신호탄을 쐈다. 이에 김병준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홍 전 대표는) 평당원 중 한 분”이라며 “솔직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 지점이 연말 정국의 두 번째 관전 포인트다.
제1야당은 홍 전 대표를 비롯해 당 최대 주주인 김무성 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의원 등이 내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몸풀기에 들어갔다. 김태호 전 의원도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는 카드다. 제1야당의 내부 갈등이 일촉즉발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특히 김무성 의원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그는 평양 남북정상회담 전 유일하게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 등판했다. 한국당 대정부질문자 20명 중 절반이 초·재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6선 의원이 직접 국회 본회의장에 선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김 의원은 야당의 첫 질의자로 나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등 정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이다 총리’인 이낙연 국무총리에게도 질의 대신 충고성 발언을 이어갔다. 여의도 정가에선 김 의원의 대정부질문을 두고 “연설을 연상케 했다”며 사실상 당권 도전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병준 혁신비대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미 “오는 12월까지 인적쇄신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내부 반발을 우려해 인위적 인적청산 대신 당협위원장 교체를 통한 ‘인적 쇄신’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교체 범위에 따라 갈등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갈 공산이 크다. 한국당의 253개 당협위원장 중 사고 당협(22개)을 제외한 231개 당협위원장은 10월 1일부로 사퇴한다. 이 중 조직강화특별위원회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비대위원장 권한’으로 교체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구상이다.
파열음은 즉각 불거졌다. 박덕흠 비대위원은 “당헌·당규를 보니 당협위원장 일괄 사퇴 규정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차기 당권 후보자로 거론되는 김문수 전 의원도 “자유한국당에서 가장 먼저 쫓겨나야 마땅한 사람은 김 위원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들의 갈등 이면에는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의 갈등이 깔렸다.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20일 복수의 친박계 의원이 황교안 전 총리에게 당권 도전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다. 한국당은 김병준 혁신비대위의 인적쇄신과 당권 경쟁이 맞물리면서 추석 이후 잠복해있던 계파 갈등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은 엄동설한 그 자체다. 소수파인 이들의 생존 키워드는 ‘차별화’다.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값 폭등, 규제혁신법, 남북경협, 상가임대차 보호법,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등 각종 이슈를 놓고 문재인 정부를 거세게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남북정상회담 정례화를 비롯해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선거구제 개편 등을 놓고는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야권 단일대오보다는 각자도생을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 정국의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여당과 제1야당의 ‘적대적 공생관계’ 형성 여부다. 이해찬호와 김병준호의 공생관계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앞서 김 위원장이 “한국당이 주장하는 국민성장론이 맞는지, 소득주도성장론이 맞는지 토론하자”고 제안하자, 이 대표는 “격이 맞아야 하지”라며 “토론의 가치가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다만 두 당에도 공통분모는 있다. 선거구제 개편이다. 현행 소선거구제의 최대 수혜 당은 민주당과 한국당이다. 거대 양당은 87년 체제 이후에도 불변한 영·호남 지역주의를 골자로 하는 승자독식 구도의 수혜자였다. 제1당과 2당의 영·호남 기득권 포기 없이는 중대선거구제든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든, 소선거구제의 개편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국회 입법조사처의 ‘선거제도 개선 방향: 중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 시뮬레이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총선 결과를 토대로 중선거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민주당과 한국당의 의석수는 123석과 122석에서 77∼110석과 101∼105석으로 각각 축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38석과 6석에서 81∼83석과 22∼23석으로 각각 늘어났다. 사실상 두 당의 결심만 남은 셈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 대통령은 8월 17일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하는 안을 개인적으로 강력하게 지지한다”면서도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로 추진될 문제”라고 전제를 깔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최고의 협치를 주장하면서도 “선거구제 개편은 서로 연계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의당 한 당직자는 “양자를 연동하자는 것은 선거구제 개편에 소극적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개헌의 국회 합의 실패를 앞세워 선거구제 개편을 차기 국회 몫으로 넘길 개연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20년 집권론을 넘어 ‘50년 집권론’을 주장한 상태다. 호남 기득권이 없는 장기집권은 허상에 불과하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선거구제 개편을 수용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도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면, 남는 것은 영·호남 지역주의를 볼모로 한 두 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꼬집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