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들롱
[일요신문] 영화사상 손꼽히는 미남 스타인 알랭 들롱에겐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흑역사가 있다. 1968년에 일어난 어느 살인사건이다. 살해된 사람은 스테판 마르코비치. 들롱의 보디가드였던 인물로, 도박사이자 당시 프랑스 사교계의 일원이었다. 그가 죽기 전에 형에게 남긴 편지 한 장은 들롱을 궁지로 몰았다.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나가 정치권과 연결되었으며, 최고 권력자까지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사게 되었다. 그가 죽은 지 올해로 50년. 하지만 여전히 살인자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중엔 알랭 들롱이 유일하게 살아 있다. 올해로 83세인 들롱. 그는 과연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진실을 이야기할까?
1968년 10월 1일, 파리 서쪽 엘랑쿠르 마을의 쓰레기더미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삼베 끈으로 묶인 채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그 남자의 이름은 스테판 마르코비치. 31세의 젊은 남자였다. 그의 죽음은 곧 프랑스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그는 알랭 들롱의 보디 가드였고, 프랑스 사교계의 한량이었으며, 지골로라고 소문이 나 있던 남자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엔 왠지 엄청난 사연이 얽혀 있을 것만 같았다. 이때 스테판의 형 알렉산더는 동생이 보낸 편지 한 장을 들고 나왔다. “내가 살해되면 그건 100퍼센트 알랭 들롱과 그의 대부인 프랑수와 마르칸토니 때문이다.” 마르칸토니는 코르시카 지역 마피아의 거물.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스테판 마르코비치
마르코비치와 들롱이 알게 된 건 1950년대였다. 당시 신인 배우였던 들롱은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프랑스와 유고의 합작 영화를 찍고 있었다. 이때 길에서 큰 패싸움이 일어났는데, 그 중 두 명이 눈에 띄었다. 밀로쉬 밀로쉬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사내와 그의 친구인 스테판 마르코비치였다. 들롱은 자기보다 두 살 아래인 스무 살이 갓 넘은 두 남자를 자신의 보디가드로 고용했다. 그들은 세르비아 갱스터들과 관련돼 있는 거친 남자들이었다.
프랑수아 마르칸토니
프랑스의 1968년은 격동의 시간이었다. 학생 혁명으로 보수적인 드골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권을 노리고 있던 퐁피두에게 아내가 파티에서 그룹 섹스를 즐기는 사진은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었다. 이때 그는 친하게 지내던 알랭 들롱에게 이야기했고, 들롱은 대부이자 갱인 마르칸토니에게 마르코비치의 암살을 부탁했다는 게 호사가들의 추리였다.
이때 마르코비치의 자동차에서 클로드 퐁피두의 사진을 찾아낸 경찰 루시엥 에메-블랑은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퐁피두 세력과 적대 관계인 드골 세력의 조작이며, 사진 속에서 다른 여성과 난잡한 행동을 하고 있는 40대 금발 여성은 클로드 퐁피두가 아니라 섭외된 매춘부라는 것이었다.
스테판 마르코비치와 나탈리 들롱과 알랭 들롱
그러나 들롱과 마르칸토니에 대한 혐의는 여전했다. 일단 마르코비치의 시체가 발견된 곳이 마르칸토니의 집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들롱에게 접근했던 프랑스의 수많은 갱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배후에 마르칸토니가 있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르코비치가 들롱과 동성애 관계였다는 얘기도 있었고, 들롱의 아내인 나탈리 들롱과 마르코비치가 내연 관계였다는 설도 있었다. 마르코비치와 클로드 퐁피두가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는 루머도 있었다. 아무튼 들롱과 마르칸토니가 마르코비치를 죽였다는 물증은 어디에도 없었고, 결국 그들은 혐의를 벗었다.
조르주 퐁피두
이후 퐁피두 대통령은 임기 중인 1974년에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클로드 퐁피두는 2007년에, 마르칸토니는 2010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마르코비치의 죽음에 관련된 주요 인물들 가운데 살아 있는 사람은 알랭 들롱이 유일한 상황.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2000년에 ‘들롱의 미스터리’라는 책이 출간되어 의혹을 제기하려 하자 가처분 신청을 내서 책의 유통 자체를 막으려고도 했다. 물론 그의 조치는 실패했지만, 마르코비치 사건은 들롱에게 매우 민감한 그 무엇인 듯하다. 과연 그를 죽인 건 누구일까? 반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진실은 미궁 속에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