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유지론을 펼치는 대표적인 단체는 종교단체다. 낙태죄 유지론자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낙태 의사결정과정에서 충돌하는 가치로 규정한다. 그 대척점에 여성단체와 진보단체가 있다. 폐지론자는 임신주체의 기본권과 생명권을 근거로 들어 여성의 몸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두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반대주장을 가진 두 축이 다른 층위의 개념을 두고 서로 갈등을 좁히지 못하는 것이다.
임부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임신중단의 의사결정과정으로 보는 전통적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생명권이라는 절대명제 아래 임부의 의사결정인 낙태결정권이 개인의 이기심으로 치부되기 쉽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태아의 생명권을 두고 보면 현재의 낙태 관련법은 자기모순적이라는 데 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며 헌법재판소의 위헌여부 결정에 이목이 집중된다. 금재은 기자
# 생명권 존중 최우선이라면서 장애 있는 태아는 낙태가능?
우리나라에서 낙태를 규율하는 법률은 형법과 모자보건법이다. 형법이 낙태를 처벌해야 할 범죄로 명시하고, 특별법인 모자보건법은 예외적으로 ‘적법한 낙태’의 범위를 열어준다. 형법은 낙태한 여성이나 낙태수술을 집행한 사람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수술을 한 사람이 의사나 조산사 등 의료인일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더 엄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모자보건법은 임신부나 배우자가 △우생학적/유전학적 장애나 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혈족/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합벅적 낙태’범위로 규정한다. 물론 임신주체와 배우자(사실혼 관계 포함)의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낙태죄 처벌이 필요하다면 모자보건법은 이에 전면 배치되거나 상당히 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다. ‘우생학적’ 근거를 들어 장애인과 열악한 조건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는 생명권 보호의 예외사항으로 두고 있는 점이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일제시대 정서가 반영된 조항이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열등(?)한 생명을 배제시켜버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센인에 대한 정부의 강제 낙태와 단종수술이다.
강제 정관수술과 낙태수술을 당한 한센인 500여 명은 2011년부터 5차례에 걸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은 한센병이 유전성 질병이 아닌데도,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국가가 약자의 인격권과 생명권을 박탈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민사30부(강영수 부장판사)는 2016년 한센인이 낸 국가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2000만 원씩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개인의 재생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산아제한이 국가의 주요한 인구정책 방향이던 1960년 대엔 보건소에서 낙태시술을 제공했지만, 2011년에는 부산의 한 보건소가 낙태시술을 한 산부인과 의원을 고발했다. 국가가 필요에 따라 낙태죄를 활용한 단적인 예다.
# 좌절된 헌법소원 이번엔?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도 있었다. 다만 낙태죄 헌법소원은 임신 주체인 여성이 아닌 낙태 시술 제공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2012년 낙태를 시술해준 혐의로 기소된 조산사 송 아무개 씨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송 씨는 2010년 1월 임산부의 부탁으로 임신 6주차 태아를 낙태 시술해 줬고, 임부와 낙태 시술장에 동행했던 연인 박 아무개 씨가 이후 조산사를 고소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제청 중인 헌법소원은 낙태시술제공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합헌과 위헌 의견이 4:4로 나왔다. 최종적으로 낙태죄를 합헌으로 본 헌재는 “발달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태아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 현재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법적 낙태가 시행되고 있으므로, 이보다 더 가벼운 형벌 제재를 가한다면 현재보다 낙태행위가 더욱 만연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또 “일정한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예외 조항이 존재하기에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 사회적 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로까지 허용사유를 넓힌다면 자기낙태죄 조항은 사문화되어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될 것이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자기낙태죄 조항이 사문화될 것을 우려했지만 현실적으로 낙태죄가 사문화된 것은 이미 수치로 드러났다. 또 낙태죄 조항 폐지로 인간생명 경시풍조가 확산될 것이라는 것이 구시대적이며 감정적인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여성계에서는 국가가 낙태를 대하는 태도에 일차적으로 여성의 판단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낙태죄 처벌이 사라지면 무분별한 성관계와 반복된 낙태가 거듭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낙태죄 처벌로 인해 국내 낙태시술 발전이 더딘 것도 문제로 꼽는다. 현행법상 낙태를 받을 수 있는 산모들이라도 간편하고 건강한 임신중절시술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신체적 문제로 임신중절을 받아야 하는 산모의 경우 무조건 낙태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낙태를 죄로 처벌하는데 우선하기보다 산모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먹는 낙태약 도입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