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0일 북한의 당 창건일 70주년 행사의 한 모습. 당시 ‘핵보유국’을 강조하던 북한은 ‘비핵화’ 변곡점에 서있는 이번 당 창건일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 연합뉴스
북한은 조선노동당 규약(최근 개정일은 2010년 9월 28일) 전문을 통해 당은 ‘조선민족과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며 근로인민대중의 모든 정치조직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형태의 정치조직이며 정치, 군사, 경제, 문화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통일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사회의 영도적 정치조직이며 혁명의 참모부’로 정의한다.
북한에서 당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절, ‘선군정치’를 앞세우고 그에 따라 군부가 비대해지면서, 일각에선 ‘군이 당을 넘어섰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는 이제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사법, 의회, 정부 등 삼권이 균형을 이루는 대다수 정상국가와 달리 북한에서 당은 절대적 존재다. 단, 북한의 당은 다른 사회주의 1당 독재국가와 달리 수령 1인의 영도 아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1945년 10월 10일 일국일당 원칙에 따라 한반도에 세워진 조선노동당은 이제 곧 73돌을 맞는다. 이는 남한의 현 원내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당이 6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정의당’이라는 사실에 비춰본다면, 역사가 무척 오래된 셈이다. 하물며 북한 정권 수립이 1948년 9월 9일인 점을 비춰 볼 때,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의 역사는 정권의 역사보다 더 깊은 셈이다.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국무위원장, 군 최고사령관과 함께 조선노동당의 현 최고 수뇌직함인 당 위원장을 겸한다.
북한의 이번 당 창건 73주년은 현 시국을 놓고 볼 때,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 정세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북한은 주요 기념일을 즈음해 각종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았다. 북한은 가장 최근인 지난 9월 9일 정권 수립 70주년 열병식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무력 과시를 전격 생략하며 국제사회에 ‘비핵화 의지’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그간 북한은 당 창건일에도 중요한 정치적·군사적 메시지를 내놓아 왔다. 현재 북핵문제의 사실상 발화점이라 할 수 있는 ‘북한 1차 핵실험’은 바로 12년 전 당 창건 61주년을 하루 앞둔 2006년 10월 9일에 발생했다. 70주년이었던 2015년 10월 10일에는 육·해·공군과 노동적위군 및 전략자산이 나열된 대규모 열병식과 10만 인파의 민간 퍼레이드는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미국과의 전쟁에도 응할 수 있다는 호전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당시 그 옆에는 중국 서열 5순위인 류윈산 상무위원이 있었다.
대남 평화공세 속에서 미국과 근본적인 비핵화 및 종전협상에 나서고 있는 북한이 이번 당 창건일에 특별한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앞서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미국의 달라진 대우 속에서 6박 7일간 UN총회 일정을 소화했다.
기조연설에서 리 외무상은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라며 “비핵화를 실현하는 우리 공화국 의지는 확고부동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신뢰감을 가지게 할 때만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과 관련해서도 리 외무상은 “(미국이) 종전선언 발표를 반대하고 있다”라며 “조선반도 비핵화도 신뢰조성을 앞세우는 데 기본을 두고 평화체제 구축과 동시 행동 원칙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당국이 ‘비핵화’와 ‘종전’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전달하면서도 미국의 신뢰와 상호성을 단호한 조건으로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딱 두 가지를 보고 있다. 우선 첫 번째로 당연히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평화는 물론 비핵화와 종전에 대한 메시지가 어느 수준까지 나오느냐다. 예상하기론 ‘종전’과 관련한 뜻밖의 발언 가능성도 있다”라며 “무엇보다 선당후사를 강조하는 북한에서 이번 당 창건일은 당 위원장으로서 김정은의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노동신문의 이날 기념 전문과 함께 잘 살펴볼 부분이다. 그 무게와 의미가 다른 자리와는 새삼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또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별도의 메시지도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어 “두 번째로 이번 당 창건일에 중국과 러시아의 대표단 참석 여부 및 그 명단과 전달 메시지”라며 “현 시국은 북한은 물론 주변국 역시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미국과 예민한 관계에 있는 중국이 이번 당 창건일에 북한에 어느 정도 수준의 대표단을 보내고, 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가 핵심으로 여겨진다.
한편 이번 당 창건일에는 북한이 현 시국을 고려해 무리한 열병행사를 계획하는 일은 삼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정부 수립일에도 열병 규모를 대폭 축소한 북한은 이번에도 그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중 접경지대에서 활동하는 한 대북소식통은 “현재까지 군의 특별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