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는 9월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립대총장 및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정 청장은 1988년 서울경제신문 문화부 기자로 언론에 발을 들이며 1995년부터 한겨레신문사, 2002년부터 중앙일보에서 일하다 예산 8693억 원의 공공기관 수장이 됐다.
정재숙 청장은 2002년부터 중앙일보 지면으로 이우환 화백을 자주 소개한 기자로 유명했다. 이 화백은 경상남도 함안 출신으로 서울대 미대를 다니다가 중퇴 뒤 일본에서 활동하며 차츰 세계무대로 발을 넓혀간 사람이었다. 삼성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2003년 이 화백의 개인전을 삼성미술관에서 중앙일보와 함께 열었다. 이 화백의 작품이 국내 언론에 자주 다뤄지기 시작한 건 2006년쯤부터였다. 정 청장의 미술 보는 안목은 이때부터 탁월하다고 평가 받았다.
이우환 화백에 대한 관심은 김정숙 여사도 높은 편이라는 게 미술계 관계자 다수의 반응이었다. 이 화백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다. 김 여사는 미술 자체 상당한 관심을 쏟아왔다. 2017년 7월 2일 김 여사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비영리 치매치료기관 아이오나 시니어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미술로 치매노인을 돌보는 이 기관에서 김 여사는 파랑새를 직접 그리며 센터 관계자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넉 달 뒤인 11월 10일에는 베트남 땀타잉 벽화마을을 방문해 ‘Art for Better Community(더 나은 커뮤니티를 위한 예술)’라고 적힌 옷을 입고 벽화를 채색한 뒤 현지인에게 미술용품을 선물했다.
국내 행사도 자주 찾는다. 6월 5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한메이린 세계순회전’ 개막식에 참석했다. 9월에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전시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이런 김정숙 여사의 미술 사랑은 대를 이어 계속됐다. 아들 준용 씨(36)는 멀티미디어 디자이너로 개인전을 열고 비엔날레에 참여하기도 했다. 딸 다혜 씨(35)는 미술관 큐레이터로 금산갤러리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 미술계에 따르면 다혜 씨는 성실함과 똑 부러진 일 처리로 미술계 관계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미술 사랑은 대통령 가족만의 일이 아니다. 이낙연 총리의 부인 김숙희 여사(63)는 화가다. 김 화백은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20년 이상 미술교사로 활동했다. 1990년 교사 퇴직 뒤 23년 만인 2013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전남개발공사는 김 화백의 첫 개인전 때 그림 2점을 900만 원에 구입해 화제를 모았다. 2017년 4월 두 번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임종석 비서실장도 미술 사랑 정권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다. 임 실장의 딸은 미술을 전공한다. 딸 동아 씨(여·21)는 중학교 시절부터 미술을 하고 싶어했다고 알려졌다. 2016년 1월 총선을 앞두고 은평구 국회의원 선거 준비에 착수했던 임 실장의 선거 사무실 벽에 임 실장 초상을 그려놓고 가기도 했다. 강용석 변호사에 따르면 동아 씨는 현재 미국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공부하고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딸 동아 씨가 그린 임 실장 초상. 사진=임종석 실장 소셜 미디어
허나 이런 정치 거물의 미술 사랑은 늘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종종 반대파의 시빗거리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 아들 준용 씨는 동계올림픽을 기념해 2월 2일 ‘소리를 향한 비행’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강원도 평창에서 열렸던 미디어아트 전시회에 등장했다. 황유정 당시 바른정당 대변인은 “준용 씨는 아버지가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고용정보원 직원이 됐고 대통령일 때 평창올림픽 미디어아트 전시회 28인의 작가 반열에 올랐다”며 “관계자들은 공정한 심사로 선발됐다고 하지만 객관적 기준보다 개인의 선호가 심사 기준이 되는 예술세계에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낙연 총리는 국무총리로 지명되는 과정에서 아내 김숙희 화백의 그림 때문에 야당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전남개발공사가 2013년 김 화백의 그림 2점을 900만 원에 구입한 사실을 두고 “비싸게 산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김 화백의 그림은 40호가 400만 원, 50호가 500만 원에 팔렸다. 이를 두고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감정위원장이 “전남개발공사의 김 화백 그림 구입 가격은 1호당 10만 원으로 책정됐는데 미술을 전공한 이력과 경력 등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가격”이라고 말하는 등 서서히 진화됐다.
임종석 실장의 딸 동아 씨는 미국 유학 때문에 시비가 걸렸다. 9월 20일 강용석 변호사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임종석이 딸은 미국 유학을 보냈군요. 희한하게도 반미 외치고 좌파인 사람들이 아들, 딸은 일찍부터 미국 유학 보내는 건 뭘까요? 좌파의 이중성이랄까. 임종석도 그럴까요”라고 했다.
임종석 실장은 친북반미 성향의 정치인으로 분류돼 청와대에 입성할 때 논란의 중심이 된 바 있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2005년부터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에게 권한을 대행 받았다며 국내 방송사에게 저작권료를 걷었다.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13년간 재단이 방송사 등에서 걷은 돈은 약 22억 원이었다. 북한 작가의 문학작품을 펴낸 국내 출판사에 저작권료 약 7억 원을 걷기도 했다. 실제 북한으로 송금도 했다. 임 실장은 대북 협의는 물론 재단 출범을 주관한 이사장 출신이었다.
4월 24일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임 실장은 친북반미 행위 때문에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미국 비자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1989년 인터뷰에서는 미국을 ‘착취적인 정치로 한국을 도둑질했다’고 비판했고 동시에 ‘주한미군을 줄이고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한 적도 있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