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규약 개정은 선수협의 승인이 없어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운찬 KBO 총재가 취임과 동시에 선수협을 ‘협력’해야 할 ‘파트너’로 공인했고, KBO도 선수협과 상의가 필요한 중대한 변화라고 여겨 검토를 요청했다. 선수협의 답변은 역시나 “받아들일 수 없다”였다.
1999년 처음 도입된 FA 제도는 소속팀 선택이 불가능하고 계약 기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대표적 제도다. 하지만 FA 시장 규모가 한껏 부풀어 오르면서 몸값 100억 원(4년 계약 기준)을 넘는 선수들이 연이어 탄생하자 10개 구단이 팔을 걷어 붙였다. FA 제도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몸값 상한선을 실현하기 위해 선수들의 숙원과도 같던 FA 등급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 등을 ‘당근’으로 꺼내 들었고, “총액 상한제를 받아들여야 등급제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선언도 했다. 그래도 선수협은 강경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전체 선수의 권익뿐 아니라 KBO 리그의 경쟁력 제고에도 부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 KBO의 개선안, 어떤 내용이 골자인가
KBO가 선수협에 전달한 FA 제도 개선안에는 ▲FA 계약 총액 4년 최대 80억 원으로 제한 ▲계약금 비중을 계약 총액 30% 이내로 제한 ▲FA 자격 요건을 고졸 선수 9시즌→8시즌, 대졸 선수 8시즌→7시즌으로 각 1년 단축(해외 진출 자격은 현행 7년 유지) ▲연봉 기준에 따른 FA 등급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등급제 시행 내용도 상세하게 분류돼 있다. 등급은 최근 3년 동안 각 구단 선수 평균연봉 순위(연봉 순위 산정시 FA 계약선수 및 해외진출 복귀 계약선수 제외)에 따라 A·B·C로 구분해 보상 선수와 보상 금액에 차등을 뒀다. 최초로 FA 자격을 얻은 선수는 A등급이 보호선수 20명 외 1명과 전년도 연봉 200%, B등급이 보호선수 25명 외 1명과 전년도 연봉 100%, C등급이 보상 선수 없이 전년도 연봉 100%를 각각 보상 기준으로 삼았다. 또 FA 자격을 다시 얻은 선수의 경우엔 A등급이 보호선수 25명 외 1명과 FA 계약기간 평균 연봉 150%, B등급이 보호선수 30명 외 1명과 FA 계약기간 평균 연봉 100%, C등급이 보상 선수 없이 FA 계약기간 평균 연봉 70%를 기준으로 각각 보상하게 된다.
당초 KBO는 10개 구단이 논의 끝에 합의한 이 개편안을 올 시즌 직후 곧바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 구단과 선수의 이면 계약을 방지하기 위해 FA 규정 위반이 적발되면 해당 계약을 무효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수는 1년간 참가활동 정지, 구단은 1차지명권 박탈과 제재금 10억 원 부과라는 강경한 제재 장치도 마련했다.
야구계는 대체적으로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한 야구 관계자는 “갑자기 몸값을 80억 원으로 제한하는 게 선수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사실 한 시즌 입장 수익이 80억 원이 안 되는 구단들도 있다.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몸값을 언제까지나 감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구단들도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단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여러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고액 연봉 선수 한 명의 몸값을 아끼면 더 많은 선수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구단 이기주의’의 또 다른 단면이라는 비판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FA 선수 몸값을 과도하게 부풀려 놓은 것은 다름 아닌 구단들인데, 이제 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선수들을 ‘돈만 아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모양새”라며 “사실 2~3년 전만 해도 ‘FA 자격 취득 연수를 1년 줄이자’는 얘기만 나와도 모든 구단이 펄쩍 뛰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큰 목표가 생기자 이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 선수협은 어떤 이유로 반대했나
선수협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강경한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 가장 단호하게 반발한 부분은 역시 ‘FA 계약 총액 상한제’다. “공정거래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FA 총액 100억 원을 넘긴 선수들이 여럿 등장한 상황에서 이런 제한은 오히려 다른 파행이나 편법을 만들어 낼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은 ‘FA 총액 제한이 왜 시장의 거품을 빼고 구단 운영비를 감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데 기자회견의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FA는 KBO 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 권익 보호 제도인데 구단들이 너무 금액 감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며 “수년 전 FA 다년 계약 금지 조항이 생겼다가 곧 없어졌듯이, 이 문제도 그저 임시방편에 그치고 말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애꿎은 선수들이 결국 또 피해를 보게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KBO와 구단들이 제시한 ‘대안’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FA 등급제와 최저 연봉 인상이 선수들에게 유리한 조항임은 분명하다”면서도 “일본 프로야구와 비슷하게 분류한 등급제의 경우 등급 선정의 문제뿐 아니라 각 구단이 보상해야 하는 부분이 여전히 작지 않기 때문에 소위 B나 C등급 선수들이 쉽게 팀을 찾을 수 있는 개선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KBO가 제시한 기준대로 선수를 등급별로 나눈다면, 각 구단 연봉 상위권 선수 대부분이 FA나 해외 복귀 선수로 빠지게 돼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했다. “KIA 같은 경우엔 올해 연봉 1~7위가 모두 FA나 해외 복귀 선수라 안치홍, 김선빈, 김세현부터 A등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올 시즌이 끝난 뒤 즉각 시행하는 방안 역시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KBO가 선수협을 제도 개선의 협상 당사자로 인정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이런 변화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문제다. 최소한 시즌 개막 전까지는 예고됐어야 했다고 본다”며 “지금은 시간이 채 한 달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하는 선수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운찬 야구위원회 총재
일단 첫 번째 협상은 ‘결렬’이다. 선수협은 추후 다시 논의할 여지를 열어뒀지만, 이 역시 FA 총액 상한이 아닌 다른 문제에 한해서다. 김 총장은 “현재 FA 시장 상황이 과열을 넘어서 거품을 만들고 공멸의 길을 걷고 있다면, 선수협도 이를 안정화하는 KBO 리그 정책에 협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총액 상한은 실정법에도 저촉되고 과열 현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정책은 아니라고 본다. 포스트시즌이 끝난 뒤 구단들, KBO와 협의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담긴 제도를 만드는 데 협조할 의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 FA 제도는 어떻게 변화했나
FA 제도는 1999년 한국 프로야구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리그 전체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고, 여러 차례 변화의 과정도 거쳤다. 사실 제도 도입 초창기에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이적’과 ‘대박’의 길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화제였다. 투수 송진우가 1999년 11월 원 소속팀 한화와 3년 총액 7억 원에 사인하면서 역대 1호 FA 계약 선수로 기록됐는데, 당시 한화와 송진우 사이의 협상 과정과 내용이 매일 언론을 통해 생중계됐을 정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 소속구단 해태와 협상이 결렬된 언더핸드 투수 이강철이 3년 총액 8억 원을 받기로 하고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다시 한 번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강철은 역대 1호 FA 이적 선수로 기록됐다.
도입 첫 해인 1999년 FA를 신청하고 계약한 선수는 총 5명. 몸값 총액은 24억 5000만 원이었다. 야구계가 난리가 났다. ‘천문학적 금액’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돈을 쓰다 다 망한다”고 했다. 1년 뒤 홈런 타자 김기태가 쌍방울에서 삼성으로 옮기면서 4년 18억 원을 받자 걱정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나 리그는 무사히 운영됐고, 선수들의 몸값은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점점 더 치솟았다.
KBO는 결국 2009년부터 FA 선수들의 다년 계약과 계약금 지급을 금지했다. ‘FA가 타 구단으로 이적할 때 전년도 연봉의 50%를 초과해 받을 수 없다’는 규정도 만들었다. 그 시기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했다. 협상에도 난항을 겪었다. 결국 구단과 선수가 몰래 ‘이면 계약’이라는 타협안을 찾았다. 실제로는 계약금이 포함된 4년짜리 계약을 해놓고 공식적으로는 1년짜리로 발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2010년 말 FA가 된 선수들을 마지막으로 이 규정은 2년 만에 사라졌다. 2011년 FA부터 다시 다년 계약과 계약금 지급이 허용됐다. 그러나 이미 구단과 선수들은 이면 계약에 대한 죄책감을 없앤 뒤였다.
2016년엔 꾸준히 유지돼 오던 원 소속구단 우선 협상기간도 폐지됐다. 이전까지는 FA 선수가 원래 소속됐던 팀이 먼저 독점 협상권을 갖는 게 원칙이었다. FA 시장이 열린 첫날부터 일주일간 원 소속구단과 계약을 우선 논의하고, 이때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다시 일주일 동안 원 소속구단을 제외한 다른 팀들과 협상할 수 있었다. 이 기간이 모두 지난 뒤에야 비로소 원 소속팀과 다른 구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팀과 협상할 수 있는 진짜 FA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우선협상기한 역시 다년 계약 금지 조항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부터 유명무실했다. 탬퍼링(사전 접촉)이 야구 규약상 ‘불법’이라는 데 대한 경각심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일부 구단은 “우선협상기한이 그나마 탬퍼링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며 반대했지만, 결국 우선협상기한은 2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메이저리그와 일본의 FA 제도 커트 플러드 “가족 떠날 수 없다” 은퇴 5년 뒤 자유 이적 허용 유서 깊은 메이저리그는 한국보다 훨씬 먼저 FA 제도를 도입했다. 1975년 12월 처음으로 FA 제도 시행이 승인됐다. 1970년 세인트루이스 외야수 커트 플러드가 필라델피아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플러드는 가족과 함께 살았던 세인트루이스를 갑작스럽게 떠날 수 없다는 이유로 트레이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메이저리그 규약은 구단의 독과점을 인정하고 선수의 자유 이적을 금지해놓은 상황이었다. 플러드는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항변하면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플러드는 패소했다. 현역 선수들은 자신들이 받게 될 불이익을 걱정해 법정에서 플러드의 편을 들지 않았다. 연방대법원도 구단과 사무국의 손을 들어줬다. 플러드는 결국 1971년 13경기만 뛰고 은퇴했다. 하지만 1975년 선수노조 위원장 마빈 밀러가 팔을 걷어붙였다. 플러드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불합리한 법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 1976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6시즌을 뛴 선수는 FA가 돼 자유롭게 다른 팀과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됐다. 이후 FA 제도는 진화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FA 자격을 얻으려면, 25인 로스터에 한 시즌 172일 이상 등록돼 총 6년의 서비스 타임을 소화해야 한다. 부상자 명단이나 출전정지 명단에 등재되더라도, 마이너리그에 내려가지 않는 한 서비스 타임은 인정된다. 메이저리그에는 이 외에도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있다. 경력이 3시즌 이상 되면 연봉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게 대표적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1993년부터 FA 제도를 시작했다. 스위치히터로 이름을 날렸던 내야수 마쓰나가 히로미가 최초로 FA를 선언해 한신에서 후쿠오카로 이적했다. 총 8년(한 시즌 1군 등록일수 145일 기준)을 뛰면 일본 내 구단 이적이 가능한 국내 FA 자격을 얻을 수 있다. 2007년 이후 입단한 4년제 대졸 혹은 사회인 야구 출신 선수는 7년 이후에도 가능하다. 다만 해외로 자유롭게 이적하려면 조건에 관계없이 9시즌이 지나야 한다. 일본 FA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팀 내 연봉 순위에 따라 FA 선수 보상 규정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팀 내 연봉 3위 이내인 A등급 선수를 다른 구단이 데려가려면 보상 선수 1인과 그 해 연봉의 50%, 혹은 보상 선수 없이 연봉의 80%를 내줘야 한다. 4위부터 10위까지인 B등급 선수가 이적할 때는 선수 1인과 연봉의 40%, 혹은 연봉의 60%를 상대팀에 보상한다. 대신 11위부터 시작되는 C등급 선수를 영입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이 없다. 보상 선수에 대한 부담 탓에 이적 기회를 찾지 못하는 베테랑이나 백업 출신 FA 선수들에게는 천금 같은 조항이다. 대어급 선수들의 몸값 경쟁만 치열해진 한국 야구계에도 끊임없이 FA 등급제 도입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