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설을 맞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안랩을 방문해 전시관을 둘러보는 안철수 전 대표. 연합뉴스
안랩 직원들의 노조 설립 움직임은 회사가 지난 9월 14일 서비스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신설법인 안랩비에스피(BSP)를 설립키로 결정했다고 공시하면서 촉발됐다. 안랩 측은 “서비스사업부문의 특성에 적합한 경영환경 및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사업부문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분할 목적을 설명했다. 안랩 직원 1000여 명 가운데 서비스사업부 직원 356명이 별도 법인 소속으로 바뀌게 됐다.
사측의 발표 직후부터 안랩 사내 익명앱 블라인드 등에서 직원들의 비판 목소리가 들끓었다. 물적분할 후 비상장 자회사로 이동하는 것은 직원들의 업무와 임금·복지 등이 걸려 있는데, 이를 직원들과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는 이메일로 임의통보 하나 보내고 세부사항이나 조건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안랩비에스피 설립을 반대하는 모바일 메신저 오픈채팅방까지 생겨났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안랩에 노조가 없어 사측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직원들은 최근 네이버·넥슨 등 IT기업에서 노조가 결성되는 것을 보며 “노조가 있었으면 좀 더 나은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것”, “노조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푸념했다.
노조 결성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처음에는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노조가 있던 적이 한 번도 없다보니 직원들이 이름을 밝히고 나서거나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갖는 것을 어려워했다. 물적분할의 대상이 되는 서비스사업부문 직원들은 업무 특성상 각 지역으로 외근을 나가 시간에 맞춰 한 곳에 모이기도 쉽지 않았다. 실제 회사의 분사 발표 약 1주일 후 직원들이 판교 회사 인근에서 집회를 가지려고 했지만, 무산되기도 했다.
그렇게 2주를 보낸 후 지난 9월 27일 문제를 절감한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참석한 직원은 10명 내외로 알려졌다. 당시 자리에 참석한 노조 한 관계자에 따르면 “그날 모임의 목적이 노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보니 처음부터 이견 없이 편하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이날 백승화 초대 노조위원장을 포함해 6명의 집행부도 꾸려졌다. 이후 설립총회부터 신고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안랩 노조는 지난 3일 설립 인증을 받아 정식 노조가 됐다. 안랩의 노조 설립은 창립 23년 만이다. 안랩은 안철수 전 대표가 회사를 시작한 1995년 이래 노조가 존재하지 않았다. 안랩 노조는 최대한 빨리 사측과 교섭에 들어갈 예정이다. 노조 설립에 관여한 한노총 관계자는 “노조의 이슈는 현재 신설법인 분사”라며 “주주총회 전에 투쟁에 들어가려면 노조 설립도 촉박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랩 측은 “노조 설립은 헌법에 보장된 근로자의 권리로 당연히 이를 존중하고 합법적인 활동을 보장할 것”이라며 “이번을 계기로 노조원뿐 아니라 비노조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 직원들의 성장과 행복에 좀 더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측은 안랩비에스피로 물적분할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립 배경과 목적, 사업방향과 성장전략, 근로관계의 범위와 내용 등에 대한 추가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백승화 위원장은 “4일 사측에 공문을 통해 노조와 협상을 요구했다. 사측이 설명회를 즉각 취소하고 합법적 교섭단체인 안랩 노조와 협상을 통해 분사 문제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며 “사측이 노조의 정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을 시 강력한 저항과 투쟁을 전개해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