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태영 수원시장
현실성 부족이라는 지적은 애초의 특례시를 시정 홍보 목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냐는 의심까지 낳고 있다. 자칫 염태영 시장의 제1공약인 특례시가 공염불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특례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의 유형이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의 중간단계를 의미한다. 수원시는 2002년 인구 100만이 넘어서자 광역시 승격을 추진했으나 현실적인 한계에 막혀 중단하고 특례시로 방향을 바꿔 추진해 오고 있다.
특례시가 되면 재정수입과 행정력이 늘어난다. 수원시는 여기에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며 도시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도시 브랜드 가치 향상은 그것을 운영하는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실질적인 효과는 공무원(부시장 등)이 늘어나고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더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 즉 단체장의 권한이 늘어난다는 데에 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5월 고양시, 용인시, 창원시와 함께 ‘100만 대도시 특례 실현’을 위한 공동대응기구를 구성하기로 했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야당 심판론이 대세를 이루던 선거라 당락에는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으나 이 기자회견으로 염태영이라는 인물의 존재감을 대내외적으로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많다.
9월에는 창원시청에서 특례시 추진 공동대응기구 출범식을 개최하며 마치 특례시를 금방이라도 이룰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특례시라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 정부 “특례시 약속한 적 없어”
일요신문이 지난 9월 22일 수원시청 인적자원과에 특례시가 언제쯤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문의하자 수원시는 “9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치분권 종합계획이 나왔고 문재인 대통령이 특례시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행안부에서 실천계획이 다음달 말경(10월 말) 나온다”며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정순관 위원장이 내년까지 대도시 특례를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치분권위원회의 입장은 수원시의 주장과 달랐다. 9월 11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 자치분권 종합계획은 주민주권 구현,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 지방재정 확충 등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던 지방분권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이었을 뿐, 특례시에 대한 언급이나 논의는 없었다.
이날 자치분권위원회는 자치분권 종합계획(6대 전략, 33개 과제)을 발표했는데 이 중에도 6번째 전략에 지방 행정체제 개편과 지방 선거제도 개선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이는 저출생‧고령화 등 중‧장기적 인구 구조의 변화 및 인구 감소 등에 따라 행정체제 개편 등을 논의한다는 내용으로 특례시를 약속했다는 주장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자치분권위원회 분권제도과 전문위원에 따르면 “정순관 위원장이 수원시에 특례시를 약속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며 ‘대도시 특례제도 개선에 대한 명칭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자치제도과 사무관 역시 “국무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부처에서 세부 추진방안을 마련해 위원회에 올린다. 실천계획을 올리는 시기를 11월까지로 보고 있고 이후 심의를 거쳐 확정하는 시기가 2개월 정도 소요된다. 즉 이르면 내년 초가 될 예정”이라고 답했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종합계획에서는 재정분권에 대해 간단하게 말했을 뿐이고 특례시를 거론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확인해 줬다.
정부가 특례시를 약속했다는 수원시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부분이다.
특히 정부는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통해 현재 8:2인 국세:지방세 비율을 7:3수준으로 개편하고 점차 6:4수준으로 개편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특례시를 반드시 이뤄내야만 하는 한 가지 축인 재정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 특례시를 추진해야 한다는 명분 하나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된다. 특례시를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 특례시 입법도 2016년 이후 국회서 계류중
정부의 계획과 별도로 ‘특례시’라는 새로운 지방자치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특례시를 위한 입법은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수원시 갑을 지역구로 둔 이찬열 의원은 2016년 7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초지자체의 종류에 특례시를 추가하고 설치 기준을 인구 100만 이상의 시로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실상 특례시 지정을 위한 가장 중심적인 법안이다.
같은 해 8월 수원시 무를 지역구로 둔 김진표 의원도 지방분권 및 지방 행정체제개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의 경우 부시장을 3명으로 하는 등 조직의 구성 및 운영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취득세를 시의 세목으로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들 개정안은 2016년 11월 국회 제346회 제10차 안정행정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올라온 후 이후 단 한 번도 논의된 적 없이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어떤 이유에선지 두 의원은 공교롭게도 해당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와 있다. 법안의 처리나 추후 동향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지조차 의심되는 상황이다.
수원시는 특례시 추진을 위해 앞으로도 지역 국회의원들의 힘을 빌릴 계획이다. 하지만 이렇게 발의만 해놓고 법안소위조차 올라가지 못하는 법안을 보면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의원들에게도 특례시 같은 입법을 위해 최일선에 나서는 것은 부담이 된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국가 정책과 운영의 실태를 파악하고 심의를 해야 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를 위해 광역지자체와 인근 기초단체들의 저항에 맞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수원 외의 다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우리 지역 국회의원들이 특례시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찬성하고 도움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다”라며 입법 요청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난색을 보였다.
정부와 국회가 이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특례시는 수원시가 주장한 것과는 달리 가시밭길을 걸을 것으로 예측된다. 내년이 아닌 민선 7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을 거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런 악재 속에서 염태영 시장이 자신만의 수완을 발휘해 특례시를 이뤄낼지 단순한 시정 홍보와 이목을 불러일으키는 것에만 특례시를 사용하는데 그칠지 두고 볼 일이다.
김창의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