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만호(萬戶)여, 두 장수끼리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물러갑니다.”
나하추는 급히 말을 몰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놈!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디로 달아나느냐?”
이성계가 벼락을 치듯이 호통을 치고 나하추를 향해 활을 쏘았다. 나하추가 깜짝 놀라 말에서 굴러 떨어지자 화살이 말의 목을 꿰뚫었다. 나하추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장군님!”
나하추의 군사들이 황망히 달려와 나하추를 구출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이성계는 그 모습을 보고 껄껄 웃다가 해가 기울었기 때문에 진을 물렸다.
“이제 해가 지고 있다. 놈들은 함관령을 넘어 본진으로 돌아갈 것이다. 별동대를 조직해 놈들을 기습하라.”
나하추는 이성계에게 당한 일이 분하여 장수들에게 영을 내렸다. 원나라 군사들은 전 세계를 짓밟은 용맹한 몽고 군사들이다. 그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함관령으로 소리없이 달려가 본진으로 돌아가는 이성계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나하추는 맹장이다. 반드시 기습을 해올 것이다.’
이성계는 본진으로 돌아가는 군사들의 후미를 맡았다. 과연 그가 예측한 대로 해가 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하추의 별동대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기습을 해왔다. 함관령은 산세가 험고해서 꼬불꼬불한 길이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공(令公), 나를 구해 주시오. 영공, 나를 살려주시오.”
군사를 감독하는 환자(宦者) 이파라실(李波羅實)이 맨 아래 쪽에 있다가 황급히 이성계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성계가 위에서 내려다보자 은갑옷을 입은 두 적장이 이파라실을 쫓아오면서 창을 겨누고 있었다. 이성계는 재빨리 말을 돌려 두 장수를 쏘아 죽였다. 이성계의 활 솜씨는 거의 신화적이다. 그는 언제 어느 곳에서도 자유롭게 활을 쏠 수 있었다.
“이성계다. 저 자를 죽여라!”
나하추의 별동대가 함성을 지르면서 이성계에게 달려왔다. 이성계는 당황하지 않고 화살 서너 대를 한꺼번에 쏘았다.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맹렬한 파공성이 일어나면서 나하추의 군사들이 순식간에 나뒹굴었다. 이성계는 눈 깜짝할 사이에 20여 인의 적을 화살로 쓰러트렸다. 원나라군은 필사적으로 이성계를 향해 공격을 해왔다. 한 적병이 이성계를 겨누고 창을 들어 찌르려고 하자 이성계는 갑자기 몸을 한쪽으로 돌려 떨어지는 것처럼 하면서 그 겨드랑을 쳐다보고 쏘고는 즉시 다시 말을 탔다. 그때 한 적병이 앞으로 나와서 이성계를 향해 활을 쏘았다. 이성계는 즉시 말 위에서 일어나 섰다. 그러자 화살이 사타구니 밑으로 빠져 나갔다. 이성계는 말을 채찍질해 뛰게 하여 적병을 쏘아 그 무릎을 꿰뚫었다. 또 내[川] 가운데서 한 적장을 만났는데 그 사람의 갑옷과 투구는 목과 얼굴을 완전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화살을 날릴 데가 없구나.’
이성계는 속으로 감탄했다. 적장은 별도로 턱의 갑을 만들어 입을 열기에 편리하게 했기 때문에 아무리 살펴도 활을 쏠 만한 틈이 없었다. 이성계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 말을 쏘자 말이 갑자기 앞발을 치켜들었다. 적장이 깜짝 놀라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입이 자연스럽게 열려 이성계가 그 입을 쏘아 맞혔다. 적장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말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적장이 쓰러지자 적이 당황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성계는 용감한 철기병으로 이들을 공격하게 했다. 고려의 철기병들이 맹렬하게 공격하자 적병은 다투어 달아나느라고 저희들끼리 서로 짓밟고 뒤엉켜 진이 흩어졌다.
이성계는 정주에 진을 치고 수일 동안 머물면서 병사들을 휴식시켰다.
‘적을 유인해 섬멸해야 한다.’
이성계는 휴식을 하는 동안 작전을 세웠다. 적들은 초원의 기병들이라 산악지대에는 약했다. 이내 휴식 기간이 끝나자 요충지에 복병을 배치하고 군사를 삼군으로 나누어, 좌군은 성곶(城串)으로 나아가게 하고, 우군은 도련포(都連浦)로 나아가게 하고,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송두(松豆) 등에 나아가서 나하추와 드넓은 함흥평야에서 대진했다.
나하추의 군사는 수만 명에 이르고 있었다.
이성계는 용기를 내어 단기로 돌진하면서 적을 시험해 보았다.
“나는 고려의 장군 이성계다. 나와 겨룰 자가 있으면 나오라!”
이성계는 적의 진중을 향해 크게 외쳤다.
“기다려라. 내가 간다!”
‘이놈들이 나하추의 부장들이구나.’
이성계가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면서 말을 채찍질해 재촉하는 시늉을 하자 세 장수가 다투어 뒤쫓아 가까이 왔다. 이성계가 갑자기 또 나가자 세 장수의 말이 노(怒)하여 미처 고삐를 당기기 전에 바로 앞으로 달려 나가 재빨리 멈춘 이성계를 앞질렀다. 이성계가 뒤에서 그들을 쏘자 세 장수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말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이성계는 말들을 유인하여 적의 장수들을 죽인 것이다. 고려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창을 흔들었다.
“공격해라! 총공격!”
나하추가 격분하여 손수 북을 치면서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성계는 그들을 유인하여 말들이 잘 달리지 못하는 계곡에서 대파했다. 나하추의 군사들은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이성계를 당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하추는 이성계와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흩어진 군사를 거두어 물러갔다.
“이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겠다. 그는 신무(神武)라고 할만하다.”
나하추의 누이가 군중(軍中)에 있다가 이성계의 뛰어난 무용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말했다.
1364년 최유(崔濡)가 원나라 황제에 의해 고려왕에 봉해진 덕흥군(德興君)을 받들고, 원나라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평안도지방으로 쳐들어왔다. 이성계는 최영과 함께 수주(隋州) 달천(獺川)에서 이들을 대파하여 반역자들을 원나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
1377년(우왕 3) 크게 창궐하던 왜구를 경상도 일대와 지리산에서 대파했다.
왜구의 침략은 거의 전쟁 수준을 방불케 했다. 1380년에는 왜구가 남도지방을 완전히 휩쓴 일도 있었다.
우왕 6년(1380) 경신 8월, 왜적의 배 500척이 진포(鎭浦)에 배를 매어 두고 하삼도(下三道)에 들어와 침구(侵寇)하여 연해의 주군(州郡)을 도륙하고 불살라서 거의 다 없어지고,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은 것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시체가 산과 들판을 덮게 되고, 곡식을 그 배에 운반하느라고 쌀이 땅에 버려진 것이 두껍기가 한 자 정도이며, 포로가 된 어린아이들을 베어 죽인 것이 산더미처럼 많이 쌓여서 그들이 지나간 곳이 피바다를 이루었다. 2, 3세 되는 계집아이를 사로잡아 머리를 깎고 배[腹]를 쪼개어 깨끗이 씻어서 쌀과 술을 놓고 하늘에 제사지내니, 삼도 연해 지방이 텅 비게 되었다. 왜적의 침구 중에 이와 같은 일은 일찍이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고려말 왜구들의 노략질은 임진왜란 때보다 더욱 처참했다. 우왕이 이성계를 삼도(충청, 전라, 경상) 도순찰사에 임명하여 왜적을 토벌하라는 영을 내렸다. 찬성사 변안열을 도체찰사로 임명하여 이성계의 부장으로 삼고, 평리(評理) 왕복명(王福命), 평리 우인열(禹仁烈), 우사(右使) 도길부(都吉敷), 지문하(知門下) 박임종(朴林宗), 상의(商議) 홍인계(洪仁桂), 밀직(密直) 임성미(林成味), 척산군(陟山君) 이원계(李元桂)를 원수(元帥)로 임명하여 이성계의 지휘를 받게 했다.
이성계는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왜구는 경상도 상주까지 진격하여 6일 동안 주연을 베풀고 부고(府庫)를 불살랐다. 이성계가 경산부(京山府)를 지나서 사근내역(沙斤乃驛)에 도착하자 벌써 배극렴(裵克廉) 등 아홉 원수가 그들에게 패전하여 상황이 심각했다. 박수경(朴修敬)과 배언(裵彦) 같은 두 원수는 왜구와 싸우다가 전사했다. 왜구는 함양 일대를 도륙하고 파죽지세로 남원으로 진격하면서 운봉현(雲峰縣)을 불사르고 인월역(引月驛)에 진을 치고 있었다.
서울과 지방의 민심이 요동을 쳤다. 이성계가 남원에 이르자 왜구가 120리 밖에 진을 치고 있었다. 배극렴 등 패전한 장수들이 와서 길에서 이성계에게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이성계는 하루 동안 말을 휴식시키고 전투를 벌이려고 했다.
“적군이 험지에 있으니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려 싸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장수들이 이성계를 만류했다.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온 것은 왜구를 섬멸하기 위해서다. 어찌 그들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성계는 부장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진군하라는 영을 내렸다. 군사들을 거느리고 운봉을 넘자 왜구가 수십 리 밖에 진을 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이성계는 본진을 먼저 보내고 황산(黃山) 서북쪽 정산봉(鼎山峰)에 올라 지세를 살폈다.
“적군은 반드시 이 길로 와서 우리의 후면을 습격할 것이다. 내가 마땅히 빨리 가야 되겠다.”
이성계는 왜구가 본진을 습격할 것을 예상하고 말을 달려갔다. 고려군의 본진은 평탄한 길을 따라 진군하다가 적군의 기세가 강성한 것을 바라보고는 싸우지 않고 물러갔다, 이때 해가 벌써 기울고 있었다. 이성계는 이미 험지(險地)에 들어섰는데 적군의 기병(奇兵)과 예병(銳兵)이 함성을 지르며 사방에서 뛰어나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