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뿐만이 아닙니다. 차기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페이스북도 뜨겁습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꾸준히 비판해 왔습니다. 두 사람 역시 여권의 스타 못지않은 ‘페북 셀럽’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한글맞춤법’ 실력은 어떨까요.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세상에 반포한 것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입니다. ‘일요신문i’는 한글날을 맞아 페북 셀럽 정치인들의 한글맞춤법 실력을 검증해 봤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경기지사,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황교안 전 국무총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일요신문i’는 검증 기준을 명확히 정했습니다. 페북 셀럽 정치인들이 최근에 페이스북에 올린 10개의 게시글을 국립국어원의 한글맞춤법 규정에 따라 분석했습니다. 논란의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명백하게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를 선별했습니다.
페이스북 게시글 중 최소한 세 줄 이상의 내용이 담긴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너무 짧은 게시물로는 맞춤법 구사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연설문은 보좌진들의 검토를 거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외했습니다. 페북 셀럽 정치인들의 ‘날 것 그대로’인 한글맞춤법 구사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상’
문재인 대통령은 9월 4일~10월 4일까지 10개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일자리 위원회 회의 소감, 미국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 뒷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들이 가득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페이스북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맞춤법 구사능력은 ‘상’에 속합니다. 상당한 수준의 어휘 구사는 물론 틀린 표현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10개의 글 중에 두 번 정도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문 대통령은 10월 4일 좋은 일자리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주문하면서 “정부는 공공기관을 통한 대규모 공공 구매 등을 통해서 전기차, 수소차 등 신산업·신제품의 초기시장 창출을 지원하고, 연구개발과 전문인력 양성까지 적극 지원을 당부합니다”고 밝혔습니다.
이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정부는’=‘당부합니다’라는 내용이 국어기본법과 한글맞춤법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연구 개발과 전문 인력 양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문 대통령은 9월 22일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 주석의 사망에 대해 애도를 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쩐 다이 꽝 베트남 주석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에 충격과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며 “주석님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영면을 기원한다”는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영면은 “영원히 잠든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국립국어원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빌다’는 뜻의 ‘기원하다’가 영면의 서술어로 쓰일 수 없다고 해석합니다. 자칫 이미 죽은 사람에게 ‘죽음을 바란다’라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영면하다’의 올바른 쓰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랜 병환 끝에 영면에 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제자들에 둘러싸여 선생님은 영면하셨다”라는 표현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상’
박원순 서울시장은 8월 25일~9월 22일까지 10개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방북 대표단에 합류한 소감, 메르스 대응 문제 등에 대해 꾸준하게 의견을 밝혀 왔습니다.
박 시장의 맞춤법 구사능력은 ‘상’입니다. 앞서 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박 시장은 두 번의 맞춤범 실수를 했습니다. 박 시장은 9월 21일 추석 안부 인사를 전하면서 “넉넉해야 할 명절에 민생경제가 녹록치 않아 마음이 무겁습니다”고 밝혔습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녹록치 않아’는 틀린 표현입니다. ‘녹록지 않아’가 맞는 표현입니다. ‘녹록하다’는 흔히 뒤에 부정어와 함께 쓰여 ‘만만하고 상대하기 쉽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주는 여전히 침착하고 꿋꿋하게 응대했다. 그제서야 녹록지 않은 상대를 만났다는 걸 황제는 알아차렸다’와 같은 상황에서 쓰입니다. 박 시장이 “민생경제가 녹록지 않아 마음이 무겁습니다”로 고쳐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 시장은 9월 9일 메르스 대응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아무리 꼼꼼하게 따지고 확인해 보아도 지나치지 않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표현은 영어 숙어인 ‘too ∼ to ∼’에서 나온 번역투 표현입니다. 따라서 ‘꼼꼼하게 따지고 확인해야 합니다’로 고쳐 써야 합니다.
#이재명 경기지사 ‘최상’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SNS 정치인 중 ‘역대급 페이스북 셀럽’입니다. 이 지사는 성남 시장 재임 시절부터 정책 홍보, 네거티브 대응 등에 관해 페이스북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이 지사의 지지자들이 페이스북에 몰리면서 그는 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 반열까지 올랐습니다.
이 지사의 언어 습관은 다소 투박하고 거칩니다. 이 지사는 10월 4일 “바가지 강요하는 표준품셈, 혈세낭비를 왜 강요합니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불로소득 특혜가 판치면 나라가 망합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지사는 또 9월 21일 수술실 CCTV 도입을 촉구하면서 “수술실 CCTV가 몰지각한 소수 의료인으로 인한 국민의 불신 불만을 해소합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지사가 맞춤법을 정확히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지사는 9월 14일부터 10월 4일까지, 10개의 게시글을 올렸지만 맞춤법에 어긋난 부분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이 지사의 맞춤법 구사 능력이 그야말로 ‘최상’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황교안 전 총리 ‘중’
그렇다면 야권의 페이스북 셀럽 정치인들은 어떨까요.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여권 정치인처럼 적극적으로 글을 게시하지 않지만 황 전 총리의 게시물은 보수층의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황 전 총리는 2017년 12월 12일부터 10월 2일까지, 미국방문 소감, 태풍 솔릭 북상에 대한 우려 등 다양한 주제로 10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중 황 전 총리가 한글맞춤법을 틀린 횟수는 3번입니다. 황 전 총리의 문제는 페이스북에서 높임 표현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황 전 총리는 8월 25일 쓰레기를 스스로 줍는 노인을 칭찬하면서 “그분께서 쓰레기 줍는 모습을 몇 컷 찍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사진을 찍는 주체가 ‘그분’인지, 황 전 총리인지 불분명한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게시물 전체의 내용상 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됐지만 이같은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황 전 총리는 이렇듯 객체 높임 표현을 자주 사용해 왔습니다. 2월 10일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 청년위원회 정책에 대해 언급하면서 “페친 여러분들께서도 청년지원 방안에 대한 좋은 의견이 계시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2월 15일에도 같은 표현을 재인용하면서 ‘의견이 계시면’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의견이 계시면’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계시다’는 ‘선생님이 차를 타고 계신다’처럼 화자가 주어를 직접 높일 때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는 표현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로 고쳐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맞는 표현은 무엇일까요? ‘있으시다’는 주어와 관련된 대상을 통해 주어를 간접적으로 높일 때 사용합니다. ‘고객님께서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이 적절한 예입니다. 따라서 황 전 총리는 ‘의견이 있으시면’이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최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놨지만 여전히 보수 진영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인입니다. 특히 그는 미국에서 돌아온 뒤 페이스북 활동을 재개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 대북 정책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홍 전 대표는 ‘최악’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 전 대표는 9월 2일부터 10월 4일까지 10개의 글을 올렸지만 맞춤법 실수를 9번이나 범했습니다. 홍 전 대표는 9월 28일 “북핵 문제라도 잘되어 간다고 해야 11월 중간 선거를 치룰 수 있기 때문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치루다’라는 표현은 ‘치르다’의 잘못된 표현입니다. ‘중간 선거를 치를 수 있기 때문에’로 고쳐써야 합니다. ‘보야야’ 역시 ‘보아야’로 고쳐야 합니다. 9월 25일 홍 전 대표는 “역사적 사실도 알고 남북대화에 임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한번 적어 보았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바램’은 ‘바람’의 잘못된 표현입니다.
홍 전 대표는 또 9월 2일 “헌법 제119조 제1항 경제 자유화가 제119조 제2항 경제 민주화 보다 앞에 있다는 이유로 내가 경제 자유화가 우선한다는 식으로 기사를 게제한 것을 보고 아연 실색을 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게제하다’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게제’는 ‘부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게구(偈句)의 참뜻이라는 뜻으로, 불교의 오묘한 진리를 이르는 말입니다. 홍 전 대표의 말을 있는 그대로 문장을 해석하면, “기사를 불교의 오묘한 진리로 한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는 황당한 뜻이 됩니다.
따라서 ‘기사를 게재하다’는 표현으로 고쳐 써야 합니다. ‘게재’는 ‘글이나 그림 따위를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실음’이란 뜻입니다. 이 외에도 홍 대표는 ‘시간이였습니다’, ‘할려는’, ‘줄려는’ 등 반복적으로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시간이었습니다’, ‘하려는’, ‘주려는’이란 표현이 맞습니다.
1926년,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은 한글날의 시초입니다.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됐고,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됐습니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물론 전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인 한글을 기념하기 위한 날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정치인들은 맞춤법에 맞게 한글을 구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종대왕께서도 하늘에서 흡족한 표정을 짓지 않을까요.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