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 시중 배극렴이 교지를 받아낼 것입니다.”
조준이 뒤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 조준의 옆에는 남은과 정도전이 서 있었다. 소위 이성계의 책사들로 그들은 왕조의 틀을 완전히 바꿀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제는 이성계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격살한 뒤에 송도 일대는 참언과 동요까지 나돌고 있었다.
“목자(木子)가 나라를 얻는다.”
목자는 파자로 합치면 이(李)자가 된다. 물론 그 동요는 이성계 쪽에서 송도의 인심을 얻기 위해 퍼트린 동요였다. 송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고 돌아다녀 민심이 흉흉했다.
“고려는 500년 왕업을 이어 왔네.”
이성계가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막상 결단을 내리려고 하자 무거운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가 거느린 군사들이 배신하여 고려왕조에 붙어버리면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다. 이성계 자신은 물론 가문이 멸문을 당하게 될 것이다. 송도는 태풍전야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 500년 역사를 찬탈하려는 순간이 닥쳐왔는데도 고려 도읍 송도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것이다.
“역성혁명입니다.”
정도전이 낮게 말했다. 역성혁명이니 비상한 각오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역성혁명은 임금의 성을 바꾸는 것이다. 몰락한 왕조를 무너트리고 새 왕조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위정자들은 역사를 찬탈할 때 천명을 받았다고 한다. 역사가 바뀔 때 백성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현혹하기 위해 하늘의 명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하늘을 속이고 백성들을 속이는 일이다.
“군대에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고려 왕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일은 군대가 하는 일이다. 이성계는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성계는 심지가 깊은 인물이었다. 역사를 바꾸려고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새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는 모양새를 취하려고 하고 있었다. 노회한 정치가이자 전략가다. 무예가 당대에 가장 출중한 인물이면서도 책략 또한 따를 사람이 없다.
“잠시만 기다리라.”
이성계는 말에서 내려 송악산 주봉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1392년 7월11일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달이 창천에서 신비스러운 월광을 뿌리고 있었다. 이성계의 수하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성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송악산에는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울 때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천신대(天神臺)가 있었다. 이성계는 지금 그 곳을 향해 혼자서 휘적휘적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송악산에서 가장 높은 주봉이었다. 희디흰 달빛이 나뭇잎과 골짜기를 휘감으면서 온 누리에 밝은 빛을 뿌렸다.
“하늘이시여, 이성계를 보우하소서.”
이성계는 천신대에 이르자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지난 며칠, 전쟁터로 출전할 때보다 더 무거운 긴장감이 엄습해 와 잠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비상한 각오로 새 왕조를 건설하려고 하고 있었다.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고려는 공양왕이 이성계와 동맹을 맺어야 할 정도로 이성계의 군대에 짓눌려 있었다. 임금을 마음대로 폐하고 세우는 이성계였다. 그가 한 마디 명령을 내리면 무시무시한 피바람이 불어 닥친다.
“계획대로 도모하라.”
이성계는 한 시진 만에 송악산 주봉에서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남은, 조준, 정도전에게 무겁게 말했다. 정도전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자 감히 항거할 수 없는 굳은 결의가 엿보였다.
이튿날 조정을 대표하여 시중 배극렴이 공민왕의 부인인 왕대비 앞에 나아갔다.
“지금 왕이 혼암하여 임금의 도리를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으므로 사직과 백성의 주재자가 될 수 없으니 이를 폐하기를 청합니다.”
내각 수반인 시중 배극렴이 아뢰자 왕대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배극렴의 뒤에는 무장한 장수들이 따르고 왕궁 곳곳에도 창칼을 번뜩이는 군사들이 삼엄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명령만 내리면 모조리 도륙해 버리겠다는 살벌한 기세였다.
“누구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오?”
왕대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왕대비도 이성계와 동맹을 맺은 공양왕이 군대에 에워싸여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성계 장군입니다.”
“이성계 장군은 이성(異姓)이 아니오?”
왕대비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공양왕 대신 이성계가 왕이 되는 것은 고려가 멸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의 왕대비로 이는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다. 그러나 한낱 여인인 왕대비가 막강한 군사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교지를 내려주십시오.”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어리석어 임금 자리에 앉았으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른 일이 없겠습니까?”
공양왕은 울면서 왕관을 벗고 왕궁을 나갔다. 임금이 신하의 심기를 거스른 일을 걱정하니 기가 막힌 일이다. 공양왕의 처지를 잘 대변해 주는 말이다. 이성계의 군사들이 공양왕을 원주로 호송했다.
1382년 7월 16일, 배극렴과 조준이 정도전, 김사형 등 대소신료와 한량(閑良), 기로(耆老)를 거느리고 국새(國璽)를 받들고 이성계의 저택으로 향했다. 송도의 북천동 이성계의 집 앞은 벌써 새 임금이 선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사헌(大司憲) 민개는 홀로 슬퍼하면서 고려가 멸망한다고 애통해 했다. 남은이 벌컥 화를 내고 민개를 죽이려고 하자 이성계가 만류했다.
“의리상 죽일 수 없다.”
이때 이성계의 집에서는 일가의 부인들이 이성계와 부인 강 씨에게 인사를 드리고, 물에 만 밥을 먹고 있었다. 조정대신들과 군사들이 구름처럼 몰려오자 부인들이 모두 당황하여 북문으로 흩어져 돌아갔다. 이는 실록 태조 총서편에 있는 기록으로 이성계의 인품을 강조하기 위해 씌어진 기록이다. 배극렴 등은 왕위에 오를 것을 청했다. 이성계는 문을 닫고 배극렴 등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해 질 무렵에 이르러 배극렴 등이 문을 밀치고 바로 내정(內庭)으로 들어와서 국새를 청사(廳事) 위에 놓았다. 이성계는 두려워하여 이천우를 붙잡고 겨우 침실문 밖으로 나왔다. 백관이 일제히 늘어서서 절하고 북을 치면서 만세를 불렀다.
“나라에 임금이 있는 것은 위로는 사직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할 뿐입니다. 고려는 왕씨가 건국함으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500년이 되었는데, 공민왕에 이르러 아들이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때에 간신들이 권세를 마음대로 부려 요망스런 중 신돈의 아들 우(禑)를 공민왕의 후사라 일컬어 왕위를 도둑질한 지가 15년이 되었으니 왕씨의 제사는 이미 폐해진 것입니다.”
이는 고려왕실의 대가 끊어져 부득이 이성계가 임금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우(禑)가 곧 포학한 짓을 마음대로 행하고 죄 없는 사람을 살육하며, 군대를 일으켜 요동을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공이 맨 먼저 대의를 주창하여 군사를 돌이키니, 우는 스스로 그 죄를 알고 두려워하여 왕위를 사양하고 물러났습니다. 이에 이색, 조민수 등이 신우의 처부(妻父)인 이임에게 가담하여 그 아들 창(昌)을 도와 왕으로 세웠으니, 왕 씨의 후사가 두 번이나 폐해졌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공에게 대위에 앉으라고 명한 것인데, 공은 겸손하게 사양하여 왕위에 오르지 아니하고 공양왕을 추대하여 임시로 국사를 서리(署理)하게 했으니, 거의 사직을 받들어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견책하는 뜻을 알려서, 성상(星象)이 여러 번 변하고 요얼이 번갈아 일어나니, 정창군(定昌君: 공양왕)도 스스로 임금의 도리를 잃고 백성의 마음이 떠나가서 사직과 백성의 주재자가 될 수 없음을 물어 알고 물러나와 사저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군정과 국정의 사무는 지극히 번거롭고 지극히 중대하므로, 하루라도 통솔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 마땅히 왕위에 올라서 신(神)과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소서.”
배극렴 등이 꿇어 엎드려 아뢰었다.
“예로부터 제왕의 일어남은 천명이 있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나는 실로 덕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 감히 이를 감당하겠는가?”
이성계는 왕위에 오를 뜻이 없다고 사양했다. 대신들과 이성계가 몇 번이나 권하고 사양하기를 반복하다가 마지못하여 수창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백관들이 궁문 서쪽에서 줄을 지어 영접하니, 이성계는 말에서 내려 걸어서 전(殿)으로 들어가 왕위에 올라 여러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았다.
“내가 수상이 되어서도 오히려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직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어찌 오늘날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내가 만약 몸만 건강하다면 필마로도 피할 수 있지만 마침 지금은 병에 걸려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데 이 지경에 이르렀다. 경들은 마땅히 각자가 마음과 힘을 합하여 덕이 적은 사람을 보좌하라.”
이성계는 마침내 영을 내려 고려왕조의 중앙과 지방의 대소 신료들에게 예전대로 정무를 보라는 영을 내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