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민주공원에서 열린 부마항쟁 36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5.10.16
# 부마항쟁과 문재인
부마항쟁이 일어난 해인 1979년,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고시생’이었다.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에서 고시공부에 몰두한 문 대통령은 1979년 초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한다. 2차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부마항쟁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12.12 쿠데타 등 큰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불안정한 정국 탓에 공부에 소홀했던 문 대통령은 2차 시험 시기를 그 다음해로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사업회 관계자는 “당시 기념사업회 운영 전반에 관여해 심의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을 한 대표 주자로 여겨지니 사업회 쪽에서 모셔왔을 것이다”고 말했다.
# 부마항쟁과 헌법 개정
제 19대 대통령 후보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부마항쟁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고 약속했다.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다. 당시 문 대통령은 “부마항쟁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촛불항쟁 정신을 새겨야 한다”며 “헌법 전문에 민주화 운동 역사를 추가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가치를 분명히 하겠다”고 했다.
말 뿐인 공약은 아니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는 실제로 부마항쟁의 이념이 담겼다. 기존 헌법 전문에는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만 있었는데 여기에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 세 가지 상징적 사건을 추가한 것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개헌안을 발표하며 “민주주의 역사의 정통성을 강조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의 극구 반대로 테이블 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의결 정족수 미달로 채택되지 못한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부마항쟁을 두고 헌법 전문에 명시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부마항쟁 당시 부산 시내의 모습.
올 3월에는 문재인 대통령 주도로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도 재정비됐다. 진상규명위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출범한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다. 대통령이 15명의 위원 중 실질적으로 11명을 추천했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대다수가 ‘친 박근혜계’ 인사거나 박정희 정권에 우호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탓에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위원 5명이 사퇴해 결원이 생긴 상태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공석이었던 5개의 진상규명위원 자리에 허진수 전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회장 등 새로운 인사를 임명했다. 박근혜 정부시절 진상규명위가 작성한 보고서 채택도 연기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시절 작성된 보고서는 한 마디로 부실했다”며 “지금은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를 조건부 채택해 10월까지 수정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도 8월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9년 만의 일이었다. 재단의 초대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스승으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가 맡았다. 기념재단은 부마항쟁 진상규명을 하는 동시에 기념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부마항쟁과 위수령
한편 문 대통령은 68년 만에 위수령도 폐지했다. 위수령은 육군 부대가 한 지역에 계속 주둔하며 그 지역의 경비, 육군의 질서 및 군기 감시와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대통령령을 말한다.
박정희 정부는 부마민주항쟁 때 위수령을 발동해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과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위수령 폐지가 의결되는 순간 “참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대변인에 의해 전해졌다.
내년은 부마항쟁이 40주년을 맞는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연 문재인 정부에서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될까. 현대사기록연구원 관계자는 “부마항쟁은 민주화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기는 하지만 국가기념일이 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명선 인턴기자 line23@ilyo.co.kr
부마항쟁, 국가기념일 지정되지 않은 까닭은? 한국 현대사의 4대 민주항쟁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그리고 부마항쟁이다. 그런데 이중 부마항쟁만 아직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부마항쟁이 과소평가된 점이 꼽힌다. 부마항쟁이 다른 민주화운동에 비해 피해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가려진 면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기록연구원 관계자는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엄청난 살육이 있었다. 그런데 부마항쟁은 다른 사건들에 비해 피해 규모가 작았다”며 “부마항쟁이 다른 민주운동들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부산과 마산 쪽에만 치우쳐 일어나 민주운동 자체의 규모도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이 완결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부마항쟁은 진압하려고 계엄을 선포하는 와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다”며 “뚜렷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 끝나서 어떻게 보면 흐지부지된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을 10월 16일로 지정해 추진 중이다. 기념 날짜를 부산에서 항쟁이 시작된 10월 16일 할지 마산으로 항쟁이 확산된 18일로 할지를 두고 부산과 창원지역 간에 갈등이 있었지만, 16일로 합의됐다.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선] |
응답하라 1979! ‘부마항쟁’다시보기3-‘인터뷰’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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