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DAS)를 실소유하며 349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중형을 선택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의혹으로만 거론됐던 다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유인 것으로 (일단) 확정됐다. 검찰이 징역 20년의 중형을 구형한 점, 일부 혐의가 무죄가 난 점을 감안할 때 1심 재판부가 선택한 징역 15년은 무겁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 “충분히 예상됐던 결과”
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을 엄중하게 꾸짖었다. 검찰이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혐의는 1992년부터 2007년까지 다스를 실소유하면서 비자금 약 349억 원을 조성하고, 축소 신고를 통해 법인세 31억 4500만 원 상당을 포탈했다는 것. 또 삼성에 다스 소송비 67억 원을 대납하게 하고, 국정원에서 특활비 7억 원,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당시 회장에게 30억 원 등 110억 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도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오후 2시부터 1시간 넘게 선고를 진행한 정계선 부장판사는 “다스 주식은 피고인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이 다스 실소유자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넉넉하게 인정된다”며 240억 원대 다스 횡령에 대해 유죄를 선택했다. ‘다스는 누구 것이냐’는 의혹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은 ‘MB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또 삼성 측으로부터 받아 챙긴 다스 소송비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받은 10억 원(뇌물죄) 등도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이팔성 전 회장에게 받은 30억 원의 뇌물 역시 “이 전 회장의 비망록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법인세 포탈 혐의와 차명재산 상속 검토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의 혐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또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부분에 대해서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의 양형은 너그럽지 않았다. 정계선 부장판사는 “공직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트린 행위다. 국민의 기대와 대통령 책무를 저버렸다”고 훈시한 뒤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설명과 함께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에 벌금 150억 원, 추징금 111억 4100여 만 원을 구형하면서 “2년간 전직 대통령들이 연달아 구속되는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의 씻을 수 없는 상처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검찰은 “국민에게 받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넘어 사유화했고, 국가 운영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강도 높게 질타했는데 법원 역시 같은 맥락의 판단을 한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구형의 3분의 2만 나와도 성공이라고 하는데 이번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분의 3이 나온 셈 아니냐”며 “검찰의 유죄 입증이 성공했고, 중형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 실패로 돌아간 이 전 대통령 전략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변론 전략이 실패했다는 평이 나온다. 검찰은 앞서 이 전 대통령 양형 사유를 ▲헌법가치 훼손 ▲다스 관련 국민 기만 ▲대통령으로서 직무 권한 사유화 ▲재벌과 유착 ▲대의 민주주의 근간 훼손 ▲책임회피 등 6개로 나눠 접근했는데,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제시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단 하나의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지도 않았다. 그저 “정치적인 수사다, 국격이 훼손됐다. (관계자들의) 진술은 거짓이다”라는 방식으로 일관했다.
되레 정치적인 보복 수사라고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 변호를 맡은 강훈 변호사는 “중국에 문화대혁명이라는 게 일어난 적이 있다. 그 결과 중국 역사가 몇십 년 후퇴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낳게 됐다”며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미래로 나갈 길잡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는데, 정권 교체 시 전 정권 세력에 대한 정치보복이 반복되는 것을 방치하면 독재국가가 될 것”이라고 법원에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검찰 출신 법조인 역시 “차라리 혐의를 인정하고 대신 고령인 점, 국가를 위해 봉사한 등을 설명하는 게 더 깔끔했을 것”이라며 “개인적인 범죄 혐의에 정치적인 프레임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공판 내내 출석과 불출석을 반복하며 일관되게 대응한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낮은 수준의 대응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 MB 측 “불출석” 밝히고 실제 불참…“중형 확정 시그널”
법원이 중형을 선고할 것이라는 점은, 법원이 선고 재판을 생중계하겠다고 결정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흐름이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자신이 있는 것 같다”는 평이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일 “공공의 이익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다수 언론사 신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 이번 선고 중계방송을 허가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 결정이었다.
이미 재판부에 “선고 생중계를 원치 않는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던 강훈 변호사는 4일 오후에는 “이 전 대통령을 오전에 접견해 의논하고 돌아와 변호인들 사이의 협의를 거쳐 내일 선고공판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기자들에게 반발하는 입장을 내놨고, 실제 이 전 대통령은 선고공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 관계자는 “재판을 생중계한다는 것은 향후 재판 결과가 뒤집힐 때 ‘비판받는 증거’가 될 수 있는, 매우 부담스러운 결정”이라며 “그럼에도 재판 생중계를 선택했다는 점은 유무죄가 2심에서 뒤집힐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고, 국민들이 납득할 양형을 할 수 있다는 두 가지가 전제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안재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