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 백두산 천지에서 정상들이 손을 잡고 손을 번쩍 들어 올릴 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하늘은 왜 그리 깨끗하고, 천지는 왜 그리 맑았는지. 하늘 연못 천지(天池)는 신성한 곳이다. 그런 천지가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일 자체가 서광 같다.
몇 년 전 나는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올랐다.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인파, 인파였다. 두 시간쯤 기다려 줄을 서서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뭐 하러 왔나, 회의가 들 정도로 삭막했다. 그리고 천지 앞에서, 아뿔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안내원이 저기가 천지라고 하는데 천지라고 하니 천지지, 거기 물이 있는지, 절벽이 있는지, 아직 오르지 않은 산이 있는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걸 보러 여기까지 이 고생을 하면 왔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또 그 고생을 하며 다시 백두산에 올랐다. 이미 상황을 파악한 터여서 기대가 사라졌으니 실망도 없었다. 그냥 일행을 따라가면 되는 여행이었다. 바람은 불었으나 날씨는 좋았다. 그리고 천지 앞에서!
세상에, 이런 곳이 있나 싶게 탄성을 질렀다. 화면에서, 사진에서 수도 없이 본 광경이었으나 실제로 보는 천지는 정말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동네였다. 신들이 거하고 선녀들이 놀법한 신성한 곳이었다. 산이 높고 바람이 세니 숲이 우거질 일 없고, 가는 길의 삭막함까지 모두 천지를 보호하고 지키는 파수군이다, 싶었다.
아무 때나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 천지의 하늘이 그때 있는 그대로의 자태를 드러내며 정상들의 마주잡은 손을 축복해준 것도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그만큼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인내하기 싫거나 포기하고 싶거나 화내고 싶을 때마다 천지의 하늘을 기억하고 힘을 내라고.
송이를, 권력자들이 나눠먹지 않고, 고향이 그리운 사람들, 가족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보낸 그 마음이면 이번엔 정말 남북문제가 풀리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려운 북미관계에, 더 어려운 징검다리 역할을 잘 하고 있는 듯하다. 그 징검다리로 인해 섬으로 고립되어 있는 우리가 대륙으로 뻗어가는 징검다리를 얻기를! 부자건, 가난하건, 남자건, 여자건, 나이 들었건, 젊었건, 단군의 자손이건, 다문화 가족이건 백두대간에 살고 있는 누구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국은 하나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유로이 평양에도 가고, 백두산에도 가고, 두만강에도 가고, 서울에도 오고, 한라산에도 오고, 낙동강에도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