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회장으로 있는 서울시체육회는 8월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을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으로 또 다시 임명했다. 2012년부터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으로 있었던 그는 2016년 체육회 통합 때 대한체육회의 중임 승인이 내려지지 않아 임명이 보류되다가 2016년 9월 9일 대한체육회의 영구제명 처분을 받고 체육계 모든 지위를 잃은 바 있었다. 2013년 차지했던 대한테니스협회 회장 자리도 빼앗겼다. 주 부 회장은 이의신청을 했지만 기각돼 징계가 최종 확정됐다.
대한테니스협회의 문제 제기가 발단이 됐다. 2016년 대한테니스협회는 주원홍 부회장이 재임하던 시기인 2013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업무 일체를 점검했다. 점검 결과 단기 대여금을 이용한 자금 횡령, 협회 공금 사적 사용 등의 문제가 확인돼 주 부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따르면 주원홍 부회장은 대한테니스협회장 시절 육군사관학교 테니스장 기부채납을 추진하며 정부 승인 및 이사회, 총회 의결 없이 30억여 원을 차입해 정관을 위반했다. 육사 테니스장을 건설하며 수의계약, 분할계약, 무자격업체 선정 등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사실도 추가됐다. 사퇴 이후 운전기사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법인카드 약 970만 원을 부당하게 쓰는 등의 문제도 징계 사유에 포함됐다.
2016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 비리 사례집에 나온 주원홍 부회장 사례.
허나 2016년 10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취임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2017년 4월 10일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통합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은 체육인 구제방안 지침’을 펴냈다. 금품수수 및 배임횡령, 입학 비리, 폭력 및 성폭력, 승부조작 및 편파판정 등 체육계 4대악으로 징계를 받더라도 징계가 가혹하다고 판단되면 감경할 수 있다고 적었다.
체육인 등록규정에 따르면 징계기간의 절반이 지나지 않으면 징계를 바꿀 수 없다. 인사규정에는 금품 및 향응 수수, 공금 횡령 및 유용, 배임 관련 징계는 감경할 수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구제방안 지침에 나온 “이번만 특별히 적용하지 않겠다”는 문장은 주원홍 부회장의 구제 논리가 됐다. 3개월 뒤인 2017년 7월 대한체육회는 주원홍 부회장의 징계를 견책으로 낮췄다. “비리에 단 한 번 연루되더라도 체육계에서 영구 퇴출시키겠다”는 대한체육회의 무관용 원칙은 공수표로 돌아갔다.
대한체육회는 당시 “심의 결과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은 3년간 해마다 5억 원씩 협회에 기부한 점, 비인기종목으로 낙후시설을 보유한 테니스의 현실을 감안하여 테니스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 적극 행정을 펼친 점, 선수 양성 등 테니스 발전에 공헌한 점이 인정됐다. 당초 제명이 과도한 경우로 판단해 견책으로 징계를 감경했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의지가 강했다. 체육계에 따르면 2016년 체육회 통합 때 주원홍 부회장의 중임을 대한체육회는 막아섰다. 박 시장은 재심을 청구했다. 주 부회장 중임 승인은 계속 보류됐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부임 뒤에 주 부회장의 징계가 완화됐다. 박 시장은 그제야 주 부회장을 서울시체육회로 다시 불러들였다.
체육계에 따르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구명 운동도 주원홍 부회장 구명에 큰 힘이 됐다. 실제 안 의원은 2017년 2월 14일 제349회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회의에서 유동훈 전 문체부 제2차관에게 “박근혜 정부 시절 김종 전 문체부 차관한테 핍박 당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명예회복을 못 하고 있다.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 같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였는데 김종한테 찍혀 체육시민개혁연대 10년 동안 대표였다는 이유로 심동섭 국장에게 작업 당해 끌어내려졌다. 검찰 조사를 받게 되고 비리체육인으로 지금 완전히 낙인 찍혔다.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7월 영국 윔블던 테니스대회에 참석한 김인곤 미주대한테니스협회장, 주원홍 부회장, 안민석 부부. 사진=제보
2017년 3월 23일 제350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 때도 “김종 전 차관은 마음에 안 드는 체육인들 찍어 내리기를 3년 동안 했다. 가장 대표적인 선의의 피해자가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이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사람은 테니스계뿐만 아니라 체육계 지도자들 중에서 굉장히 존경 받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쓴 것도 아니고 관례적으로 돼 왔던 것인데 협회를 운영하며 돈을 횡령했다고 망신을 주고 비리 지도자로 사례집에 크게 내세웠다. 이 사람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게 김 전 차관의 체육농단에 대한 우리의 선의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주원홍 회장 같은 사람을 비리 지도자로 몰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도자 아무도 없다. 내가 120% 단언한다”고 했다.
안민석 의원의 비호와 달리 법원은 1심에서 주원홍 부회장에게 횡령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2015년 1월 대한테니스협회 공금 1000만 원을 자신이 회장으로 있었던 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의 대회 포상금으로 쓰는 등 이듬해 2월까지 총 4회에 걸쳐 85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주 부회장은 2017년 10월 18일 동부지검에서 벌금 200만 원 선고를 유예받았다. 선고유예는 일정 기간 형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까지 2년간 사고 없이 지내면 선고를 면해주는 제도다.
주원홍 부회장 쪽 변호인은 “고의로 횡령을 하거나 불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재물을 가지려고 한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사건 수사 이전에 횡령 금액을 모두 변제한 데다 벌금형 이상의 범죄 전력이 없고 대한테니스협회장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당히 기여했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대한테니스협회에 연 5억 원씩 3년을 기부하는 등 주원홍 부회장의 ‘상당한 기여’는 대한체육회의 징계 완화 이유이자 사법부의 선고유예 이유가 됐다. 주원홍 부회장은 미디어윌이라는 기업의 고문도 맡고 있다. 벼룩시장, 알바천국, 모스버거, 딘타이펑을 소유한 미디어윌 그룹의 주원석 회장은 주 부회장의 동생이다. 미디어윌 그룹은 전체 매출만 2017년 3000억 원을 훌쩍 넘는 기업이다.
취재진의 질문에도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최희주 인턴기자
이와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은 여러 번 전화와 문자에도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11일 오후 2시 15분쯤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노동포럼을 끝내고 나오는 박 시장에게 직접 관련 질문을 던졌지만 박 시장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서울시체육회 관계자는 “주원홍 부회장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임원 관련 기준은 벌금 300만 원이라 절차상 문제가 없고 그 전에 공적이 많아 임명됐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최희주 인턴기자 perrier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