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OK! 당신의 퇴직을 완벽하게 대행해드립니다.” 퇴직 대행회사 ‘엑시트’ 홈페이지 캡처.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직장을 옮긴 사람의 수는 311만 명으로 7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이렇듯 이직 열풍이 높아지는 가운데, 틈새시장을 노린 서비스가 화제다. 퇴직 대행. 말 그대로 퇴직 시 필요한 회사와의 연락을 대신 처리해주는 서비스다.
퇴직 대행회사 ‘엑시트(EXIT)’를 운영하는 니노 도시유키 씨(28)는 “여러 번 서비스를 찾는 근로자도 있다”고 밝혔다. 니노 씨 자신도 지금까지 3번의 이직을 한 경험자. 그때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이를 계기로 어릴 적 친구 오카자키 유이치로(29)와 함께 ‘사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서비스’를 창업하게 됐다.
지난해 봄 문을 연 엑시트는 설립 1년 만에 800건이 넘는 퇴직을 대행했다. 최근 들어 상담건수가 5000건으로 늘어나는 등 더 큰 수요 증가도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엑시트가 하는 일은 근로자와 회사 중간에 서서 원활하게 퇴직을 지원하는 것이다. 가령 ‘퇴직하고 싶다’는 근로자의 희망을 회사에 대신 통지해주고, 반대로 회사의 반응을 근로자에게 전달해준다. 퇴사 절차가 완료되면 카드키나 유니폼 등 회사소유 물품은 우편으로 보내는 식이다.
요금은 정규직 퇴직이 5만 엔(약 50만 원), 아르바이트의 경우 4만 엔(약 40만 원)이다. 2번 이상 서비스를 이용하면 1만 엔을 할인해주는 혜택도 있다. 니노 씨는 “5만 엔이라는 돈을 어떻게 느끼느냐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언급했다. 만일 비싸다고 생각된다면 비교적 괜찮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그는 “스트레스가 심해 회사 쪽은 쳐다보기도 싫은 경우 ‘사표 제출을 대신해주는 것치곤 싸다’는 반응도 많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온라인매체 ‘아에라 닷(AERA dot)’에 올해 4월 대형은행을 퇴직한 20대 남성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 남성은 5만 엔이라는 가격에 대해 “싸다. 충분히 낼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퇴직 당시 겪었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우선 과장에게 퇴직 의사를 전하자 만류로 2주가 지연됐다. 그리고 부장과의 면담을 거친 후 인사부 부장에게 보고되기까지 1개월 이상이 걸렸다. 만류 시에는 “퇴사해도 아무것도 못할 거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겠냐” 등등의 이야기가 나와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남성은 “만일 그전에 대행서비스를 알았다면 분명 상담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엑시트가 대행한 퇴직은 800건 이상, 퇴직 성공률은 100%다. 특히 “고문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대행을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큰 분쟁으로 이어진 사례가 없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의뢰인의 대부분은 20~40대 근로자들로, 남녀 비율은 거의 반반”이라고 한다.
혹시 대행의뢰가 유독 많은 직종이 따로 있을까. 이에 대해 니노 씨는 “간병, 건설, 음식업 등 이른바 인력부족이 심한 업종”을 꼽았다.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만두기 어렵다”며 신청하는 근로자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IT기업, 그 중에서도 엔지니어직의 의뢰가 늘어나는 추세다. 근로자에게 맡겨지는 재량이 커 사표를 내도 수리가 쉽지 않은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니노 씨는 “그 사람이 없다고 해서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분명 회사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엑시트 창업자 오카자키 유이치로(왼쪽)와 니노 도시유키. 사진출처=아에라 닷(AERA dot)
퇴직 대행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일각에서는 “그 정도도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가”라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사표 대행 중 ‘왜 본인이 직접 오지 않느냐’며 따져 묻는 회사 상사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퇴직 상담조차 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상사의 고압적인 태도가 원인일 수 있다”고 니노 씨는 덧붙였다.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때 주의할 점도 있다. 일본 매체 ‘제이캐스트’는 “직원이 인수인계 절차 없이 급작스럽게 퇴사해 손해를 입힌 경우, 회사에서 손해배상청구를 할 가능성도 전혀 없진 않다”고 전했다. 따라서 퇴직하는 근로자의 직무내용, 회사에서 차지하는 역할 등에 따라 어느 정도 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편 ‘일본의 퇴직 대행서비스’에 대한 외신의 보도 내용도 흥미롭다. 대체로 외신들은 관련 서비스가 성행하는 이유를 “최근 일본 노동시장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현재 일본 고용시장은 지원자 100명당 일자리가 163개로, 44년 만에 사상 최고를 기록 중이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로 인한 경기 호전과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적 배경이 복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평생직장의 나라’로 통했다. 일본 샐러리맨들은 고용된 첫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직장 경력을 그 회사에서 마무리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깊은 충성심은 최근 몇 년간 균열을 일으키며, 분위기가 확 바뀐 양상이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은 “근래 일본 경제가 2.5% 이하의 낮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직장인들이 더 많은 선택권을 갖게 됐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일본 취업정보사이트 ‘리크루트커리어’에 의하면 “지난해 이직자 가운데 전 직장보다 임금을 10% 이상 높인 이들의 비중이 역대 최대인 29.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근로자의 사표 제출을 강압적으로 막는 회사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구인난으로 시름에 빠졌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오히려 직원들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2017년 일본 노동국에 접수된 불만사항을 살펴보면, 퇴사 거부 관련 상담이 3만 8954건으로 부당 해고보다 17%나 많았다”는 것이다.
노동 분쟁 법률전문가, 스다 미키 씨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줬다. “25세의 여성 A는 더 나은 직장에 새롭게 내정 받아 이직하려고 했다. 그러나 A의 상사는 ‘그만두게 하지 않겠다’며 2주 동안 계속해서 그녀를 피해 다녔다. 면담신청조차 거부했다. 고충해결부서에 신고하고서야 겨우 퇴직수속이 시작됐지만, 이미 이직회사의 입사예정일을 한 달이나 넘긴 상태였다.”
참고로 일본의 민법에서는 ‘고용주와 근로자가 고용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 근로자가 2주 전 퇴직신청을 통해 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 측이 퇴사 자체를 거부할 법적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과 근로자들이 이 내용을 모르고 있어 문제가 발생한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이러한 작금의 상황이 일본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만들어냈다”면서 “퇴직대행 회사 엑시트가 그 틈새시장을 잘 파고들었다”고 평가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