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차량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강제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검찰이 장기전에 대한 대비를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에 따르면, 법원에서 잇따라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자 검찰은 내년 법원 정기 인사 시점까지 수사를 장기화하는 방안도 옵션으로 넣어뒀다. 압수수색 영장만 발부되면 수사는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얼개를 짜놨다는 설명인데, 검찰은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바뀌는 내년까지라도 확실하게 수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청와대의 판단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법원도 강력한 정부(검찰)의 의지를 읽었는지 서서히 영장을 발부하며 수사에 협력하는 모양새다.
# “이미 법원 주요 혐의 설계 완료”
검찰은 이미 큰 틀의 수사 방향을 확정했다.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혐의가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찾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는 게 검찰 내부에서 나온 중간 평이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법원에서는 ‘유죄가 될 게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기소하기에 충분한 자료와 진술을 확보했다”고 귀띔했다.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준선 기자
검찰은 지난 8월 초,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일제 강제징용 사건의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외교부를 압수수색했다. 또 지난달 30일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소유한 차량과 고영한 전 대법관의 서울 종로구 자택, 박병대 전 대법관의 성균관대 대학원 사무실, 차한성 전 대법관의 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 등을 털어 자료를 확보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은 지난 2016년 현직 판사가 연루된 부산지역 건설업자 뇌물사건인 ‘부산 스폰서 판사’ 당시 관련사건 재판에 개입한 의혹을, 박병대·차한성 전 대법관은 강제 징용 소송을 고의로 지연했다는 의혹을 각각 받고 있다. 검찰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을 통해 차 전 대법관이 “절차적 문제를 구실로 소송을 지연시키자”고 제안한 것으로 보고 이를 입증하겠다는 방침이다.
# 수사 장기화? “피하지 않겠다…목표는 양승태”
수사 초반 검찰이 생각했던 수사 일정은 ‘올해 안에 끝내자’였다. 하지만 중간에 변수가 발생했다. 법원이 수사 방향을 재판 거래로 확대하려는 것에 영장 기각으로 대응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가 검찰이 청구한 각종 영장에 대해 발부한 케이스는 10% 안팎. 지난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법원 발부율(88.6%)에 비하면 현격히 낮은 수치다. 검찰이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는 평이 법원에서조차 나오는 이유다.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뒤 올해 2월 퇴직한 유해용 변호사에 대해 검찰이 법원 내부 문건 유출과 파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법원은 이례적으로 3000자가 넘는 장문의 기각 사유를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법원의 대응에 대해 초반 당황했던 검찰은 내부적으로 ‘오래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수사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수사팀 핵심 관계자는 “내년 초 법원 정기 인사 때 영장 발부를 책임지는 판사들도 바뀌지 않냐. 지금처럼 계속 기각하면 내년 인사 때 새로 오는 판사들에게 다시 영장을 받아서라도 법원 내 문제를 확실하게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라며 “법원이 자료 협조 등에 비협조적이지만 판사들의 진술이나 자료 등을 종합하면 기소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다”고 털어놨다.
검찰이 정한 수사 최종 목표는 단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흐름을 잘 아는 한 법원 관계자는 “검찰이 내부적으로 임종헌 전 차장에 대해서는 구속, 양승태 전 원장은 불구속 기소로 방침을 정했다고 들었다”고 언급했다.
# 바뀐 법원, 청와대 눈치 보나, 키맨 ‘임종헌 전 차장’ 수사력 총력
이 같은 검찰의 수사 의지는 청와대와 같다는 게 앞선 관계자들의 일관된 판단이다. 법원 핵심 관계자 역시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를 받겠다고 얘기를 하기 전, 청와대와 소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영장 기각에 크게 반발하자, 법원도 다소 영장에 대해 너그러운 판단을 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실제 검찰은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차량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USB 등도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일부가 삭제된 것 같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수사를 올리기 위한 키맨(핵심 수사대상)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말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구속된 직후 최철환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임 전 차장한테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에게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하라’고 요구한 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봐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임 전 차장은 심의관들에게 법리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했는데, 해당 문건은 임 전 차장을 통해 청와대로 넘어갔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임 전 차장 측은 “청와대는 인력이 부족해서 각 부처나 기관에 협조요청을 많이 한다”며 통상적인 관례라고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유무죄를 판단할 법원이 소송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의 재판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는 문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게 검찰의 반박이다. 실제 검찰은 이밖에도 법원행정처의 실무적인 지시를 총괄했던 임 전 차장을 옭아맬 수 있는 혐의들을 정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법원 핵심 관계자는 “이제 임종헌 전 차장을 부르면, 남은 것은 대법관들뿐”이라며 “임 전 차장을 곧 부른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냐. 지금 속도라면 연말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이 피의자로 불려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재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