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위치한 빗썸 비트코인 거래소.
비트코인 광풍이 불면서, 전체 시장에서 원화 거래 비중은 급증했다. 지난해 9월부터 꾸준히 늘어난 원화 거래 비중은 지난해 12월 말에는 21% 수준까지 치솟았다(이 가운데 일부는 거래를 중지했던 중국 자금이 한국 거래소로 몰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는 일본 엔, 미국 달러에 비해 세 번째로 비중이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 1월, 은행들이 상당수 암호화폐거래소에 대한 신규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하고, 실명인증을 해야 새 가상계좌를 발급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격까지 폭락하며 시장은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암호화폐 거래 시장에 유입되는 신규 자금이 줄었다. 현재 원화 거래 비중은 7% 수준.
자연스레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거래량을 기록하던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한때 세계 최대 거래량을 기록했던 업비트는 암호화폐 시장조사연구기관인 Coinhills 발표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21위까지 줄어들었다. 세계 1위 거래소로는 BitForex(싱가포르)가, 2위에는 BitMEX(홍콩) 거래소가 차지했다. 3위는 bitFlyer(일본), 4위에는 OKEx(중국)거래소가 각각 이름을 올렸다.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던 빗썸은 24위, 코인원은 43위로 밀렸다.
# 그래도 매력적인 시장…거래소 가격 급등
“지난해 700억 원에 사겠냐는 제의가 있었는데, 암호화폐를 잘 몰라서 기회를 놓쳤죠. 지금 못해도 수천억 원은 하지 않겠습니까?” (사모펀드 관계자)
암호화폐 관련 얘기가 나오자, 사모펀드 관계자가 내놓은 답변이다. 지난해 초, 암호화폐가 본격적으로 광풍을 타기 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대형 거래소가 매각 의사를 밝혀왔다는 것. 구체적인 가격도 제안됐다. 700억 원. 하지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사모펀드 측은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광풍이 불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급등했고, 한풀 꺾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매물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재 국내 대형 거래소들의 시장가는 최소 2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암호화폐 관계자 역시 “올해 시장이 주춤하다고 하지만, IT 역시 버블을 겪고 난 뒤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됐다”며 “블록체인을 토대로 하는 거래소 역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 전망 “이제 다시 시작” 우세하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가격 흐름인 탓일까. 정부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암호화폐는 끝났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업계 전반에서는 “단순히 가격 흐름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블록체인의 기본도 모르는 얘기”라는 분위기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연구원 교수(암호화폐연구센터장)는 민간금융위원회 간담회에서 “금융당국을 비롯한 일각에선 암호화폐의 투기성을 빼고 블록체인만 키우겠다고 하지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분리될 수 없다”며 “암호화폐를 활용한 자금 조달 모델인 암호화폐공개(ICO)는 당장 허용하기 어렵다면 규제 샌드박스에서라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가상통화 거래에 관한 공청회.
암호화폐 업계는 이달 개최되는 G20 재무장관회의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암호화폐와 관련된 국제 기준 및 가이던스 개정을 긴급히 요청했는데, FATF는 10월 총회에서 암호화폐를 통한 돈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광범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기존 규제 개정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전세계적인 규제안이 결정되면,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하는 본격적인 암호화폐 거래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중장기적으로 살아나기 위한 전략을 선택했다. 정부 규제 등으로 위기에 놓였지만, 다음 도약을 위한 시장 주도권 확보전이 치열하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의 지분 23% 정도를 쥐고 있는 카카오는 자회사인 그라운드X를 통해 블록체인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플랫폼 클레이튼(Klaytn)을 연말에 내놓을 계획인데, 여기서 클레이(KLAY)라는 암호화폐도 출시할 계획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은 새로운 암호화폐 ‘메카’로 떠오른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지난 8월 말, 코인원 인도네시아를 정식 오픈했는데 “인도네시아가 정보기술(IT)과 금융 기술의 빠른 성장과 발전으로 높은 핀테크 산업 성장 잠재력을 가진 국가다. 시장 초기 단계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이 인도네시아 내에서 올바르게 자리 잡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 당국 및 기존 금융권과도 적극 협조한다”는 게 코인원 측의 설명이다.
시사저널e가 주최한 미래혁신포럼 2018:제4회 국제 인공지능(AI) 포럼에 참석한 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
# 지자체들도 잇따라 ‘암호화폐 투자’ 언급
정부는 부정적이지만, 지자체들도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점도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해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암호화폐 ‘S코인’을 도입하겠다고 언급한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서울을 ‘글로벌 블록체인 선도도시’로 발전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가칭 ‘B코인’을,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코인’을 지역화폐로 만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되는 등, 지역 시장 활성화를 기치로 내 건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입에서 신사업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암호화폐다.
결국 핵심 터닝 포인트는 ‘정부의 입장 변화’가 될 것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은 10월 초 열린 한 토론회에서 “암호화폐 거래소와 암호화폐 공개(ICO)를 통합한 정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재화 객원기자
“2030년 시장규모 3400조” 이제 막 태동하는 블록체인 산업 “블록체인은 기술이며, 암호화폐는 그 기술을 이용한 거래입니다. 암호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을지를 봐야 합니다.” (암호화폐 개발업체 관계자) 대중들의 관심은 급등한 코인 가격에서 비롯됐지만, 대기업들과 주요 국가들은 산업을 넘어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블록체인의 미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는 물론 미국 시카고와 스위스 주크 등 몇몇 도시들이 블록체인 시장을 대표하는 국가, 도시가 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블록체인이라는 플랫폼이 향후 제2의 인터넷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볼록체인 기술은 모든 거래자의 전체 거래 장부를 공유 및 대조해, 거래를 안전하게 만드는 차세대 보안 기술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이 중 암호화폐는 거래 때 발생하는 일종의 수수료 개념이다. 즉,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위에 오가는 ‘가상의 거래비용’ 정도로만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우선적으로 변화가 예상되는 것은 ‘보안’이 중요한 금융이다. 특히 은행 및 보험 서비스, 카드 거래 등이 거론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은행 및 보험업의 80%는 2025년쯤 소멸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을 정도다. 블록체인은 해킹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뢰성, 투명성을 필요로 하는 산업군들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보안업계는 물론, 선거나 저작권, 특허권과 같은 영역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SDS는 지난해 9월, 해운물류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결과 “높은 수준의 암호화로 수출·입 관련 서류의 위·변조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시장 전망 규모도 엄청나다. 가트너는 블록체인 시장의 규모가 2030년 약 340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며, 리서치앤마켓은 블록체인 시장의 공공 부문만을 두고 보더라도 2018년 1억 6200만 달러(약 1880억 원)에서 매년 84.5% 이상 급성장해 오는 2023년 34억 5800만 달러(약 3조 9462억 원)에 이를 것으로 진단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포럼에서는 2025년까지 글로벌 GDP의 10%가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됐다. “정보가 오가는 곳, 모든 유통이나 거래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대기업들도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딥러닝, 사물인터넷(IoT) 등 수많은 기술의 융합이기 때문에 기업들 간 광범위한 기술 교류 및 개발이 필수적이다. 실제 세계 최초의 블록체인 연구기관인 블록체인 리서치 연구소(BRI)에는 캐나다 정부는 물론, 나스닥, TMX, 딜로이트, IBM, 마이크로소프트, 텐센트, 후지쯔, P&G 등이 가입해 기술 개발 및 협력에 나섰다. 삼성전자도 이스라엘의 블록체인 개발 업체에 자회사를 통해 투자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투자’ 외에 기술 개발로는 정부 규제가 많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한 암호화폐 개발 관계자는 “블록체인은 수수료 개념인 암호화폐가 필수적으로 필요한데, ICO를 전면금지하는 통에 우리나라는 초반 선제적으로 치고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블록체인에 대한 정부의 통 큰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