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서 동메달을 획득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연합뉴스
[일요신문] ‘월드클래스’를 자랑하던 대한민국 여자배구가 표류하고 있다. V리그 휴식기에 열린 국가대표 일정에서 연이어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다.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에서 연이어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이를 이유로 최초 전임제 감독인 차해원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다. 과연 지난여름 여자배구 대표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대한민국 여자배구는 김연경을 필두로 김해란, 황연주, 김수지, 양효진, 김희진 등 ‘황금세대’가 좋은 성과를 거둬왔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 4강, 2016 리우올림픽 8강으로 세계무대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이외에도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매년 여름 국가대표 일정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배구여제’ 김연경의 활짝 웃는 모습을 이전보다 보기 힘들었다. VNL 16개 팀 중 12위, 아시안게임 동메달, 세계선수권에서는 44년 만에 본선라운드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세계선수권 본선라운드 진출 실패는 이전부터 일었던 대표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선수 선발, 팀 운영, 용병술 등에 대한 지적이 뒤따랐다. 급기야 일부 팬들은 감독 해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감독 경질을 바란다’는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저조한 성적으로 이번 시즌을 마무리한 대표팀이 가장 크게 지적받는 부분은 선수단 운영이다. 대회에 나서는 엔트리 구성 단계에서부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표팀은 이번 시즌 열린 3개 대회(VNL,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에 주전 선수들을 투입했다. 김연경, 양효진 등 베테랑들은 일부 VNL 일정에서 휴식을 부여받기도 했지만 참가 대회에서 긴 경기시간을 소화하며 체력적 문제를 노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는 각 대회에 선택적으로 선수를 파견한 경쟁 국가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대한배구협회는 다른 대회에 비해 중요성이 확연히 떨어지는 AVC컵에만 2진급 대표를 파견했다.
박은진, 이주아, 정호영 등 고교생 3인방의 엔트리 합류 또한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한국 여자배구 미래로 평가받는 이들에게 ‘국제대회 경험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누구든 공감한다. 김연경도 고교시절부터 대표팀에 합류해 경험을 쌓았다.
논란을 낳은 지난 세계선수권 14인 엔트리. 사진=대한배구협회 홈페이지
또한 엔트리 포지션 배분도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배구협회는 그간 대회에 나서는 14인 엔트리 중 4명을 레프트 포지션으로 채웠다. 하지만 세계선수권에 나선 레프트 4명 중 1명은 KGC 인삼공사 소속 오지영이었다. 그는 수년째 V리그에서 리베로로 활약 중인 선수다. 구단 홈페이지에도 리베로로 소속돼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선수권에 리베로만 3명을 데려간 모양새가 됐다.
리베로만 3명을 데려간 대표팀은 결국 1차전부터 탈이 났다. 이소영이 부상을 당하며 레프트에는 김연경과 이재영만이 남게 됐다. 이재영도 어깨에 부상을 입어 테이핑을 한 채로 대회에 임해야 했다. 배구 강국 미국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아제르바이잔, 지난해 아시아 예선에서 3-0으로 완파했던 태국에까지 패하며 세계선수권 예선 탈락이 확정됐다. 대표팀은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상대로 1승만을 거두고 돌아왔다.
일정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팀 내부 문제까지 터져 나왔다. ‘스포츠서울’ 단독보도에 따르면 세계선수권 이전 진천선수촌 합숙훈련 중 코칭스태프 간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선수들에게도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든 여건이었다.
세계선수권 이후 귀국길에서 눈물을 보였던 차해원 감독은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8일 배구협회 내 회의 결과 차 감독과 유경화 여자부 경기력향상위원장이 사퇴를 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났다. 다만 이들의 사직서가 아직 수리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10여 년간 한국 여자배구를 이끌어온 김연경은 입버릇처럼 “도쿄 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대표팀은 세계랭킹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세계선수권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세계랭킹 포인트는 오는 2019년 여름으로 예정된 올림픽 예선전에 영향을 미친다. 올림픽으로 가는 길마저 험난해진 상황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허재·선동열에 차해원까지…아시안게임 감독 잔혹사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각 종목 국가대표팀 감독들의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초 폐막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자배구 동메달을 획득한 차해원 감독이 사퇴 위기에 몰렸다. 아시안게임에 이어 세계선수권에서도 대표팀의 부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선수 선발 논란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연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박정훈 기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선동열 야구 대표팀도 곤경에 처했다. 성적을 냈음에도 선수 선발과 관련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고 국가대표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농구 대통령’ 허재는 아시안게임 직후 농구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대회 이전부터 선수 선발 논란이 일었고 결국 동메달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자 지휘봉을 스스로 내려놨다. 이들은 아시안게임에서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점 외에도 각 종목에서 도입한 전임감독제의 첫 주자였다는 공통분모를 공유했다. 첫 전임감독제 도입 이후 진통을 겪은 각 종목 대표팀이 어떤 운영을 이어갈지 팬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