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점돼 ‘임대문의’가 붙은 써브웨이 매장.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민웅기 기자
써브웨이 점주 A 씨는 경기 안양시에서 5년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점포 매출은 꾸준히 늘었고, 운영도 잘해 몇 년 전 미국 본사에서 ‘고객평가 우수점포’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갑자기 미국 본사에서 가맹 해지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매장 운영 관련 벌점이 초과됐다는 이유에서다. 지적된 내용은 냉장고 뒤 먼지, 본사 지정 상품 아닌 국내 세제 사용, 바닥청소 미비, 소스통 라벨 탈착 등이었다. A 씨는 지적사항을 바로 잡아 국내 가맹본부 담당자의 긍정적 답변까지 받았지만, 미국 본사는 다시 지난해 10월 폐점 절차 진행을 통보했다. 그해 9월까지도 가맹본부 담당자가 “고객 불만도 거의 없고, 운영이 잘 되고 있다”는 평가를 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A 씨가 항의하자 써브웨이 본사는 가맹계약서 ‘10조 b항’을 내세웠다. 여기에는 “당사자 일방은 법적 행동에 앞서 반드시 분쟁 해결을 위한 중재 절차를 실행한다”며 “중재는 공청회가 열리는 미국 조정협회 산하 국제분쟁해결센터 또는 미국 분쟁해결센터에서 한다. 중재는 영어로 진행될 것”이라고 규정돼 있다.
이어 써브웨이 측은 지난 7월 이 같은 중재 절차가 미국 뉴욕에서 진행 중이라며 A 씨에게 중재를 위해 지정한 시간당 400달러의 변호사를 선택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A 씨는 “국내에서 장사를 하는데 미국 법원에 가서, 미국 변호사를 선임해 소명해야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며 “중재를 진행하면 1만 달러 이하인 법률비용까지 물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A 씨가 오는 12월 10일까지 미국 분쟁해결센터에서 의견을 내지 못하면 중재가 종료되면서 폐점이 확정된다.
A 씨는 공정위 산하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조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써브웨이 한국지사 측은 “가맹거래계약에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분쟁은 미국중재협회 산하 국제중재센터가 진행하는 중재를 통해 해결하며, 최종결정이 나오기 이전에 다른 장소에서 중재를 시도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는 이유로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는 이미 폐점 고발 등과 관련해 써브웨이에 여러 차례 조정 신청이 들어왔지만, 써브웨이는 모두 같은 반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A 씨는 공정위에 써브웨이의 행태에 ‘약관법’을 적용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내 약관법 14조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재판 관할 합의 조항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했다. 6조에도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은 무효”라며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고, 계약의 거래형태 등 관련된 모든 사정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약관법을 적용해 국내 가맹점주를 보호해 줄 방법이 없다고 유권해석했다. 공정위는 “불공정 약관인지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서는 국내 약관법이 적용 가능한 사안이어야 한다”며 “현재 국제사법 25조는 ‘계약’에서 준거법은 당사자가 묵시적 또는 명시적으로 지정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써브웨이 가맹계약서는 명시적으로 네덜란드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 간 계약에서 국내의 약관법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답을 내놨다.
국내 영업 중인 외국계 프랜차이즈가 한국법인과 가맹점 간 계약을 맺어 국내 공정거래법 등 규제를 받는 것과 달리 써브웨이는 네덜란드 소재 계열사와 국내 가맹점이 계약을 맺게 하는 방법으로 국내 규제를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써브웨이 측은 가맹점주들에게 “가맹계약서상 뉴욕 중재합의에 따라 한국공정거래조정원 조정신청을 철회하지 않으면 법적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공문을 보냈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약관법을 보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써브웨이가 준거법으로 지정된 네덜란드에서는 써브웨이의 가맹계약서 조항이 불합리하다고 판결한 판례가 존재한다. 2014년 네덜란드의 써브웨이 가맹점주가 제기한 ‘계약서상의 뉴욕 중재합의 조항 무효화’ 청구 소송에 대해 네덜란드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네덜란드 재판부는 가맹점주를 경제적 약자인 자연인으로 규정하고 “중재합의는 가맹점주로 하여금 청문회를 위해 뉴욕에 가게 하는데, 이는 금전·시간·에너지에서 상당한 부담을 지운다. 중재 합의가 가맹점주에게 과도하게 불리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내외 판례가 있다고 해도 일단 약관법 위반에 해당돼야 적용할 수 있다”며 “공정위는 법원과 같은 권한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정부세종청사 내부. 연합뉴스
가맹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법조계 관계자는 “공정위는 불공정 약관에 대한 행정적 규제를 하는 기관으로서 당연히 약관법 적용 여부를 다퉈야 하는데 스스로 심사할 수 없다고 손을 드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심지어 많은 판례들을 보면 구체적 사건에 대해 사법심사를 하는 법원에서도 국제사법상 다른 국가에 준거법을 두고 있어도 약관규제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다른 지역에서 써브웨이 매장을 운영한 점주 B 씨도 A 씨와 비슷한 가맹해지 절차를 거쳐 최근 가게 문을 닫았다. B 씨는 “폐점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하고 억울한 부분이 많았다”며 “현재 써브웨이 한국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며 나 외에도 소송을 준비 중이거나 진행하고 있는 점주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수년 전 써브웨이 매장을 폐점해야 했던 C 씨는 인터넷에 ‘써브웨이 악마기업을 고발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부당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C 씨는 “써브웨이 한국지사가 자신들이 공급한 인테리어와 제품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는데 그 비용이 7000만 원에 달했다”며 “엄두가 나지 않아 주저하자 그동안 좋은 평가를 받아오던 우리 점포가 나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지적하면서 압박을 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줬다”고 밝혔다. 한국지사는 또 C 씨의 매장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새로운 점포를 열었다고 했다. 이에 C 씨는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정위 다른 관계자는 “한국공정거래조정원으로 써브웨이 폐점 관련 조정 신고가 10건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써브웨이 본사 측이 조정에 불응해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써브웨이 측은 “분쟁 소명을 위해 가맹점주가 반드시 뉴욕 현지를 방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화 소명도 가능하며, 영어 소통이 어렵다면 통역을 이용해도 무방하다. 이후 가맹점주가 국제중재센터의 중재 결과에 불복하면, 국내에서 국내법에 따라 소송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며 “또 분쟁이 발생되면 조기 해결을 위해 한국지사 차원에서 가맹점주와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친다. 중재 과정에 있는 가맹점주가 국제중재센터에 직접 소명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매장이 분쟁 사유가 된 위반사항을 개선·시정하면 분쟁조정 절차는 자동 철회된다”고 설명했다.
써브웨이 측은 또 “써브웨이는 가맹사업을 전개 중인 모든 나라에서 지역법을 준수하고 있다. 전 세계 써브웨이의 가맹거래계약서는 미국 본사에서 작성해 각 나라로 전달되며, 현지의 법률 및 실정에 맞게 법률자문을 거쳐 매년 업데이트된다”며 “현재까지 써브웨이 가맹거래계약 내용이 국내 약관법 조항에 위배된다는 법률적 피드백이 없었다”며 “차후 이러한 지적이 나오면, 신의칙의 원칙에 따라 법률적인 자문을 토대로 본사와 협의해 수정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써브웨이의 과거 개설된 가맹점은 대부분 39㎡ 규모의 소규모 점포다. 하지만 최근 만들어지는 매장은 82㎡ 수준으로 커졌다. 한국은 가맹사업거래공정화에관한법률로 10년 이하 사업자를 함부로 내쫓지 못한다. 그래서 장사가 잘 되는 구 소형 점포들을 상대로 트집을 잡아 계약을 해지하고 다시 큰 매장을 차리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