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라더스 10주년이 지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글로벌 증시가 공황에 빠졌다. 계기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다. 객관적 전력상 미국이 중국을 압도하지만 사상 최장 랠리를 자랑하던 미국 증시도 피해가 상당하다.
우리나라 코스피와 코스닥도 모두 난리가 났다. 외국인 자금이탈과 함께 이른바 이동평균선 역배열이 완성 직전이다. 코스피는 약세장 진입(고가 대비 20% 하락)이 코앞이고, 이미 약세장에 들어선 코스닥은 신용융자잔고 청산까지 나타날 조짐을 보인다.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주력 산업의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인상과 미중 무역분쟁이라는 대외악재까지 겹친 결과다. 외국인은 환율에, 신용융자는 금리에 민감하다. 두 지표의 방향을 가늠할 이벤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 상당 기간 증시 약세는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거침없이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11일 코스피지수가 전날보다 98.94포인트(4.44%) 내린 2,129.67를, 코스닥지수가 40.12포인트(5.37%) 내린 707.38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 미중 무역전쟁 넘어 환율전쟁으로
주식이든 채권이든 외국인 자금은 환율에 민감하다. 보통 경제 기초가 강하면 해당 통화는 강세를 보인다. 이 경우 해당 통화 투자로 환차익을 거둘 수 있다. 올 초부터 미국 금리가 우리보다 더 높은 한미 금리역전 현상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지난 8월까지 외국인들의 국내 채권매수가 이어졌던 이유다. 미국 채권 금리가 더 높지만 환차익을 감안할 경우 원화채권을 사는 게 더 유리할 수 있어서다. 투기적 성격의 ‘재정거래’가 다수 유입된 데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최근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했다.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상도 더 빠르고 가팔라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었다. 달러 강세 추세가 더 강화된 셈이다. 달러 강세는 원화 약세를 유발한다. 9월 하순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반등했고 외국인 자금 이탈이 뚜렷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니나라는 물론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의 성장률 전망을 하향했다. 경제가 불투명해지면 기축통화인 달러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다. 원화 약세 요인이다. 국내 투자 외국인들에게는 환위험이 높아진 셈이다.
# 증권가도 “현금보유를”
유동성이 줄어도 기업이익이 가파르게 늘어나면 주가가 오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이미 지난 2월부터 외국인들은 우리 주식시장에서 순매도로 돌아섰다. 최근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3분기 실적을 발표했지만 4분기에는 반도체 가격 하락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주력 수출산업들은 무역분쟁 여파로 환경이 녹록지 않다. 미국 역시 금리상승으로 차입이 많았던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 미국 증시를 이끌었던 IT기업은 무역전쟁과 미중, 미러 갈등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미중 무역분쟁은 조만간 환율 갈등으로 초점을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를 전후로 관세 위주의 통상공세가 일단락되면, 11월 말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간의 새로운 협상, 즉 위안화 절상 여지가 부각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내다봤다.
현금보유를 늘리라는, 사실상 주식 매도를 외치는 증권가 애널리스트도 다수 등장했다. 전상용 토러스증권 연구원은 “10월과 11월에는 한국 증시에 큰 변수로 작용할 미중 무역전쟁, 미국 중간선거 등이 있어 주식 비중을 늘리기보다는 현금보유 비중을 늘리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 또 날개 잃은 추락 코스닥
코스닥은 신용융자잔고가 잠재위험 요소다. 통상 코스닥 신용융자잔고의 청산은 20일, 60일 이동평균선이 동반 하락할 때 발생한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상승 추세가 무너졌다는 심리가 확산되는 시점이다. 코스닥 신용융자 잔고는 8월 이후 5000억 원 이상 불어났지만 10월 2일부터 20일, 60일 이평선이 동반 하락하기 시작했다.
류용석 KB증권 연구원은 “2015년 이후 코스닥 급락이 나타났던 세 번의 사례(2015년 8월, 2016년 10월, 2017년 6월)에서 공통적으로 이동평균선 동반하락과 신용융자잔고 청산이 나타났다”면서 “이 같은 지수 하락 시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중소형주가 더 부진할 수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