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민주당 대표. 박은숙 기자
역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여의도 전체를 휘젓고 있는 이 대표가 또다시 여권 발 장기집권론에 불을 지폈다. 이번에는 북한 평양이 발단이 됐다. 보혁 갈등의 화약고인 국가보안법 손질까지 언급했다. 이 대표는 10월 5일 ‘10·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에서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해 “제가 살아있는 한 절대 (정권을) 안 빼앗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장은 컸다. 야당은 “망언 중의 망언”, “조공외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왜 거기 가서 상사에게 보고하듯 얘기하는지 때와 장소를 너무 안 가린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어느 나라 집권당 대표냐”고 쏘아붙였다. 운동권 출신인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표를 직접 겨냥, “북한 갈 때마다 사고를 하나씩 치고 들어온다”고 직격했다. 야권 일각에선 “홍준표로 까먹었던 표를 이해찬이 벌어준다”는 말도 나온다.
반면 여권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역공을 취했다. 여권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이 대표의 발언은 고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룩한 남북평화 체제를 확고히 해 9년 2개월간 단절됐던 보수 정권으로 회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집권 의지를 밝힌 이 대표의 발언은 10·4 남북공동선언을 잘 이행하겠다는 뜻”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평양 발언은 의도와 관계없이 ‘남남 갈등’의 단초로 작용했다. 한국당 고위 관계자는 “제정신을 가지고 한 발언이냐”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의 평양 발언은 남북 국회회담도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의 문도 닫아버렸다. 이 대표의 평양 방문 전 조건부 동의 입장을 밝혔던 바른미래당은 10월 8일 4시간 의원총회 끝에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조기에 접은 셈이다. 이에 따라 연말 정국은 여야의 강 대 강 구도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남은 관전 포인트는 여권 내부권력 지형의 변화다. 정치권 안팎에선 장기 집권론을 앞세운 이 대표가 민주당호를 이끌 경우 21대 총선을 앞두고 ‘친노 vs 친문’ 갈등이 극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청와대와 이 대표가 차기 구도를 놓고 견해차를 노출하고 있다는 갈등설은 끊이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 와중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린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5대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선임됐다. 친노의 좌장인 이 대표가 추천했다. 유 전 장관이 스스로 차기 권력구도 링에 오를 가능성은 낮지만, 여의도 안팎에선 정계복귀의 불씨는 지펴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노무현재단 진성회원은 10월 현재 5만 명을 웃돈다. 지난해 예산만 80억 원대에 달했다. 회비를 내지 않는 인터넷 회원은 20만 명 수준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민주당 8·25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를 적극적으로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선 유 전 장관이 진노(진짜 친노) 전유물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오른 것에 주목한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제1대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2대),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3대), 이 대표(4대) 등이 맡았다. 노 전 대통령 후원회장이었던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생전에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유 전 장관을 향해 “친노(가) 아니다”라며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친노 적자 경쟁은 참여정부 초기부터 촉발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과 ‘국민의 힘’ 등이 합친 ‘국민참여연대’(국참연)와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은 “진짜 친노는 나야 나”를 외쳤다. 전자는 문성근 씨 등이 주축이었다. 후자는 유 전 장관 등 개혁당 인사들이 핵심을 이뤘다. 국참연 내 강경파는 참정연에 ‘사이비 개혁파’ 딱지를 붙이기도 했다. 이에 참정연은 “진짜 친노는 참정연밖에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양측 간에 적잖은 간극이 있음에도 유 전 장관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맡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이 대표의 ‘유시민 러브콜’이 차기 대권 구도와 맞물린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과 궤를 같이한다. 친노계와 친문계의 물밑 다툼은 물론, 이 대표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힘겨루기에는 차기 총·대선 과정에서 필연적인 ‘주류 적자 경쟁’이 깔렸다. ‘유시민 카드’가 친문계의 힘을 제어하기 위한 일종의 ‘외연 확장’ 전략에 가깝다는 의미다.
이해찬호 출범 후 친노계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10·4 남북공동선언 11주년 기념식에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서갑원 전 의원 등이 참여하면서 친노계가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현재 ‘포스트 문재인’이 없는 만큼, 여권 내 각 계파는 차기 대선주자 키우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친문계 한 관계자도 “정권연장을 위해선 친노와 친문은 물론, 86그룹, 비문과 비노 등 모든 주자들이 모두 나와서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에선 문 대통령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도 ‘차기 대선주자 키우기’의 일환으로 분석한다. 임 실장을 필두로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등은 86그룹을 관통한다. 문재인 정부 신주류인 운동권 세력이 차기 총·대선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할 수도 있다. 진문(진짜 친문)이 주축이 된 부엉이모임도 86그룹 핵심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 등 86그룹의 합류 시점에 맞춰 정파그룹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친노+86그룹이냐, 친문+86그룹이냐’도 여권 역학구도의 핵심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 친노·친문과 마찬가지로, 운동권 그룹도 분화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반면 비노·비문의 입지는 축소됐다. 지난 대선에서 다크호스로 부상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6·13 지방선거 이후 당 주류와 융화하기보다는 각개 약진하는 모양새다. 당 한 관계자는 “당 주류에서 이 지사를 견제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보스포럼 취소 가능성을 내비쳤음에도 평양 남북정상회담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영화배우 김부선 씨와의 스캔들 논란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때 1∼2위를 달리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하락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9월 27∼28일 이틀간 조사해 10월 5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7.1%로, 범진보진영 후보 중 5위에 그쳤다. 이낙연 국무총리(16.2%), 박원순 서울시장(13.7%), 김경수 경남도지사(11.6%), 심상정 정의당 대표(9.1%)가 1∼4위를 차지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이며,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사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비노·비문계의 구심력 약화는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주류 인사들의 친노·친문계로의 편입이 빨라질 수도 있다. 86그룹 송영길 의원이 부엉이모임 합류를 고민하는 것이나, 박원순 시장과 김부겸 의원 등이 친문계와 스킨십을 늘리는 것도 이런 까닭과 무관치 않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정부 2년차에서 차기 대권을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도 “정권 중·후반기로 갈수록 어느 후보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 비전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국민의 선택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사퇴 번복’ 민병두 정무위원장 향햔 엇갈린 평가 “역시 여의도 대표 정책통” vs “재벌 중심 경제로 회귀냐” 20대 후반기 국회 정무위원장인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여의도의 대표적인 정책통인 민 의원은 6·13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에 출마했지만,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당내 경선 후보직과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5월 4일 “당과 유권자 뜻에 따라 사직을 철회하고 두 달 치 세비는 기부할 것”이라며 돌연 사퇴 의사를 철회했다. 이후 민 의원은 일찌감치 정무위원장을 준비하면서 포지션을 구축했다.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다. 민 의원은 재벌·대기업 총수의 무분별한 증인 소환에 제동을 걸었다. 정무위는 재벌·대기업 총수의 재판장으로 불린다. 민 의원이 내세운 논리는 ‘여야 간사 합의안’인 2단계 국감이다. 실무진과 임원 등을 부른 뒤 충분한 답변이 안 나오는 경우 최종 책임자를 부르자는 얘기다. 앞서 여야 간사는 비공개 협의를 통해 대기업 총수급 인사의 출석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국회 대관 업무를 맡는 기업 직원들 사이에선 안도의 기류가 흐른다. 한 기업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경제통인 민 의원이 정무위원장에 오르면서 묻지마식 증인 소환이 없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국회 한 관계자도 “예전에는 재벌·대기업 총수 증인 출석을 둘러싼 기 싸움으로 시작 전부터 소모전 양상을 보였다”면서 “국감 효율성 면에서도 독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하도급 문제는 기업 총수가 나오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도 “실무임원은 책임과 결정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고 가세했다. 여당 내부도 민 의원에 대한 불만이 크다. 정부기관에서 근무하는 전직 민주당 보좌관은 “민 의원의 정무위 운영 제1 기조는 ‘여야 합의’”라며 “여야가 합의하면 의결 절차를 밟고 반대면 어떤 법안도 논의하지 않는 구조”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여야가 9월 20일 합의 처리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도 마찬가지였다. 박영선 우상호 우원식 전직 원내대표는 법안 처리 당시 “자존심이 상한다”, “왜 내부 갈등 법안만 논의하냐”, “보수정권의 재벌 중심 경제로 회귀하자는 것이냐” 등으로 비판했다. 같은 당 제윤경 의원도 “의원총회는 왜 여느냐”라고 쏘아붙였다. 민 의원은 당내 반발에도 여야가 합의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을 결국 의결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