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처럼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치어리더들이건만 사실은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어두운 이면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 프로미식축구(NFL)의 치어리더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명 ‘베일리 스캔들’은 그동안 숨겨져왔던 치어리더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낱낱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 계기로 퇴폐적이면서 동시에 청순해야 하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강요 받고 있는 치어리더들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와 성차별 혹은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 폭로하기 시작한 치어리더들은 현재 구단을 상대로 단체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는 전직 치어리더 베일리 데이비스(22)를 만나 NFL 소속의 치어리더로서 활동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치어리더들이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 보도했다.
베일리 데이비스는 3년 동안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치어리더팀인 ‘세인츠에이션스’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지금은 팀에서 퇴출된 상태다. 오른쪽은 변호사 사무실에 서 있는 데이비스. NFL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치어리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치어리더팀은 가장 예쁘고, 가장 운동신경이 뛰어나며, 동시에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맡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릴 때부터 치어리더가 되길 희망하는 소녀들도 많다.
치어리더로서 가장 큰 영광은 뭐니 뭐니 해도 NFL 팀 소속의 치어리더가 돼서 수많은 관중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백미라고 하면 단연 미 전역에 생방송 되는 슈퍼볼 경기에 나가 춤을 추는 것이다.
치어리더란 직업은 강도 높은 훈련을 요하기 때문에 여느 운동선수 못지않은 체력과 운동신경을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해 2009년 슈퍼볼 우승팀인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치어리더로 3년간 활동했던 데이비스는 “NFL 팀 소속의 치어리딩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스포츠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운동선수로는 간주되지 않는다”라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해 치어리더가 됐던 데이비스는 처음 오디션을 봤을 때를 떠올리면서 “너무 행복해서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라고 말했다. 데이비스의 아버지는 고향 팀인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광팬이었으며, 어머니는 90년대 슈퍼볼 무대에 오른 치어리더 출신이었다. 부모 모두가 미식축구 팬인 만큼 집안에는 미식축구 50개 팀의 헬멧이 일렬로 진열되어 있고, 벽에는 유명 선수들의 사인이 적힌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데이비스는 “목요일에는 온 가족이 모여 주니어 칼리지 경기를, 금요일에는 고등학교 경기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각각 칼리지 경기와 NFL 경기를 보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탓에 그녀의 꿈은 어릴 때부터 자연히 뉴올리언스 세인츠 팀의 치어리더가 되는 것이었다. 매년 4월에 열리는 치어리더 오디션은 지역에서 열리는 가장 큰 이벤트 가운데 하나로, 마치 미인대회처럼 TV를 통해 생중계된다. 심사위원은 댄스 강사, 미용사, 치과의사 등이 포함된 열 명으로 이뤄져 있다.
오디션 출전자들은 뛰어난 춤 실력과 외모를 갖추는 것은 물론이요, 모든 선수들의 이름과 해당 포지션을 줄줄이 외우고 있어야 한다. NFL 규칙도 낱낱이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 2105년 오디션을 봤던 데이비스는 모두의 축하 속에 최종 합격했고, 그렇게 자신이 꿈꾸던 치어리더가 됐다. 하지만 첫째 날부터 고난은 시작되는 듯했다. 훈련 첫날, 안무 코치는 그녀에게 금발 머리를 어두운 색으로 염색할 것을 주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팀에 금발 머리가 너무 많으니 바꾸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살짝 주름진 뱃살을 잡고는 이렇게 명령했다. “이거 빼도록.”
데이비스는 “그때부터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감이 지속적으로 몰려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들 중 대다수는 햇살이 뜨거운 날에도 경기가 시작되기 전이면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자동차 안에 들어가 히터를 틀어놓고 앉아 있곤 했다. 땀을 흘려서 살을 빼기 위해서였다. 한번은 치어리더 한 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더욱 끔찍한 일은 따로 있었다. 홈구장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치어리더들은 경기 중간의 휴식시간마다 팬들을 상대로 치어리더 비키니 달력을 팔아야 했다. 데이비스는 “경기 당 의무적으로 20개를 팔아야 했다. 팔지 못할 경우에는 다음 분기에 춤을 출 수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짓궂은 남성 팬들의 성추행을 방지하기 위해서 평범한 운동복을 입고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간혹 할당된 분량을 미처 판매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비키니 유니폼을 입고 관중석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럴 때면 술 취한 남성 팬들의 추파를 참아가면서 달력을 팔아야 했다. 간혹 함께 셀카를 찍을 것을 요구하는 팬들이 허리춤에 손을 두르거나 축축한 입술로 볼에 입을 맞춰 불쾌감을 주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기 싫었던 데이비스는 “한번은 아버지에게 남은 달력을 개당 20달러(약 2만 원)에 몽땅 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 달력들은 지금도 집에 쌓여있다”라고 털어 놓았다.
베일리 데이비스를 포함한 많은 치어리더들은 NFL의 규정에 따라 노출해야 한다.
첫해 급여는 시간당 7달러 25센트(약 8200원)였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되는 해에는 각각 1달러(약 1000원)씩 더 올랐다. 하지만 미용실 비용, 메이크업, 스프레이 비용은 모두 개인이 부담했기 때문에 수중에 남는 돈은 사실 거의 없었다. 몇몇 팀들의 경우에는 치어리더들에게 부수적으로 무료 경기 티켓, 무료 주차장 이용권 등을 제공하긴 하지만 미식축구 선수의 평균 급여가 200만 달러(약 22억 9000만 원)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형편없는 근무 조건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런 불공평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많은 치어리더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 반감을 표시하지 않고 있었다. 수많은 팬들 앞에서 춤을 추거나 자신들을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해오는 팬들을 볼 때면 더욱 그랬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치어리딩은 지금까지 아무리 여성인권운동가들이 나서서 성차별이라고 주장해도 꿋꿋이 명맥을 유지해왔다. 미국인들의 3분의 2가 여전히 치어리더 전통을 유지하길 바라는 것만 봐도 이런 현실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뉴올리언스 세인츠 팀의 연고지가 있는 루이지애나주처럼 보수색이 짙은 남부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베일리 스캔들’로 인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최근 ‘슈테른’은 전했다. 데이비스가 치어리더 세계의 비밀(?)에 대한 침묵을 깨자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치어리더들이 따라서 서서히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베일리 스캔들’이란, 데이비스가 소속팀에서 억울하게 퇴출당한 데 대해 항의하면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말한다. 사건은 올해 초 전직 모델 출신이자 팀의 코치인 애슐리 디턴이 치어리더들에게 보낸 단체 메일에서 시작됐다. 이메일에는 치어리더 한 명이 파티에서 미식축구 선수와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메일을 받은 치어리더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시 알아차렸다.
팀 소속의 치어리더들이 선수들과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치어리더들은 식당, 클럽, 공연장 등 그 어떤 곳에서도 선수들과 함께 있어선 안 됐다.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막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아 피자를 주문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만일 선수 한 명이 식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경우 ‘안녕하세요’나 ‘멋진 경기였어요’라는 정도의 인사는 건넬 수 있지만 그 밖의 대화를 나눌 경우에는 즉시 해고될 수 있다.
데이비스는 “구단 측은 우리들에게 이런 규정이 치어리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오히려 이런 규정은 남자들로부터 여자들을 숨기는 파키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에서나 익숙한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나라들은 으레 여성들에게 “우리가 당신들을 남자로부터 보호하고 명예를 지켜주고 있다며 여자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규정은 거의 모든 NFL 팀 소속의 치어리더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치어리더의 계약서에는 이런 규정이 명시되어 있는 반면, 선수들의 계약서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는 점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고 ‘슈테른’은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치어리더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선수들을 팔로잉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만일 자신을 먼저 팔로잉하는 선수가 있을 경우에는 즉시 그 선수를 차단해야 한다. 치어리더들의 SNS 계정은 구단 측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으며, 위의 규정을 어긴 사실이 적발될 경우에는 즉시 해고당한다. 이와 관련, 데이비스는 “하지만 우리가 경기 휴식 시간에 술취한 팬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때면 ‘조신한 척하지 마!’라는 말을 듣곤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다시 말해 너무 조신한 척해도 욕을 먹고, 반대로 너무 천박해도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코치로부터 전송된 단체 이메일을 받고 난 후 “저런, 누군지 몰라도 곤란해졌네”라고 생각하고 넘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 후 동료 치어리더로부터 “아무래도 코치는 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데이비스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 파티가 열렸던 날 그녀는 플로리다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코치는 그녀의 말은 듣지 않은 채 화만 냈다. 결국 팻 맥키니 감독에게 불려간 데이비스는 한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도덕성, 품위에 대한 일장연설과 함께 그녀가 어떻게 팀의 명예를 실추시켰는지에 대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감독 또한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데이비스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해고가 된 사건은 그다음 벌어졌다.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개인적으로 올린 수영복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레이스 달린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진을 본 코치는 이 사진이 ‘알몸을 보여선 안 된다’는 팀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일리 데이비스의 인스타그램 사진은 팀의 입장에서 보면 ‘천박한 사진’에 지나지 않는다.
감독 역시 데이비스에게 “그 사진은 천박하다”라고 말하면서 “내 손녀였으면 절대 못 찍게 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그 날로 데이비스는 구단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처음에는 팀의 동료 치어리더들이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듯했다. 이들은 경기장에서는 더 심한 노출을 한 채 남자들 앞에서 춤을 추도록 하면서 그 정도의 사진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손바닥만 한 비키니를 입고 달력 사진을 찍는 마당에 원피스 수영복이 왜 문제냐며 항변했다.
하지만 이런 치어리더들에게 코치는 단체 이메일을 보내 “이번 경험은 모두에게 교훈이 되어야 한다. 반항적인 행동으로 주의를 끌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이에 치어리더들은 데이비스와 연락을 끊었으며, 어떤 치어리더들은 그녀를 가리켜 ‘배신자’라며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데이비스를 응원하는 치어리더들은 속속 등장했다. 데이비스가 공개적으로 치어리더로서 겪었던 차별을 폭로하기 시작하자 CNN, NBC,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또 다른 치어리더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댈러스 카우보이스 소속의 치어리더들은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팬들로부터 “당신들 강간당할 수 있다”라는 협박을 당했다고 폭로했는가 하면,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치어리더들은 구단의 명령을 받고 부자 후원자들의 개인 파티에 참석해야 했다고 말했다. 치어리더들은 파티에서 “누가 미혼이고, 누가 기혼이지?”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자신들이 마치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창녀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버팔로 빌스 구단은 치어리더들에게 음모를 어떻게 다듬었는지 검사하는 ‘음모 검사’를 실시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올해 초 데이비스를 비롯한 60여 명의 치어리더들은 세라 블랙웰 변호사를 고용해 NFL과 각 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데이비스는 “나는 더러운 소문과 무고한 사진 때문에 팀에서 해고됐다. 다시 명예를 되찾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른 치어리더들 역시 모두 성차별, 발언의 자유권 침해, 노동 착취, 불합리한 노동조건 등을 소송 이유로 꼽았다. 이에 블랙웰은 “이번 사건을 통해 어쩌면 치어리딩이 영구히 폐지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NFL 역시 기업과 같기 때문에 ‘미투 운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일 성차별 문제로 집단 소송을 당할 경우에는 수백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치어리더에게 강요되는 모순적인 이면에 대한 비난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령 신체 부위를 노출하거나 스킨십을 참도록 강요하는 동시에 청교도적인 순결 역시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슈테른’은 “마치 플레이메이트와 동정녀 마리아가 뒤섞인 모습이다”라면서 이런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는 치어리더들도 많다고 말했다.
가령 지난 시즌까지 마이애미 돌핀스의 치어리더로 일했던 크리스탄 웨어(27)는 독실한 종교인이었다. 심지어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고 싶어할 정도로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이에 그녀는 운동화에 시편 46편 5절인 ‘하느님이 그녀 안에 있으니,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다’라는 글을 새겨 넣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를 본 코치는 “너무 순결을 강조하면 남성 팬들이 떠날 것”이라며 즉시 지울 것을 명령했다. 그후 웨어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종교관을 드러내지 못했고, 이를 견디가 못해 결국 팀을 떠났다. 현재 그녀는 블랙웰 변호사를 통해 마이애미 돌핀스를 종교적 자유를 침해한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이런 논란에 대해 현재 NFL과 모든 구단은 “치어리더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은 성희롱과 성차별이 없는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 “NFL과 모든 팀은 공정한 근무 조건을 지지한다”라는 등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만일 그랬다면, 나는 지금 아직도 뉴올리언스 세인츠 소속 치어리더로 춤을 추고 있었을 것이다”라며 코웃음쳤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