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한 자와 수혜를 입은 자는 모두 빠져나가고 브로커만 처벌받은 사례, GS건설 관급공사 관련 로비스트의 말이다.
GS건설의 부탁을 받고 조달청 고위 공무원을 소개하고 수주에 도움을 준 브로커 이유직 씨가 양심선언을 했다. 연합뉴스
10여 년 전 리먼사태로 국제 경제가 얼어붙고, 건설 경기 추락에 중견건설사는 연쇄부도를 맞았다. 주택시장으로 호황을 누릴 수 없자 건설사들은 플랜트나 토목사업 등 비주택 부문을 강화했다. 이 때 건설사 먹거리로 떠오른 것이 관급공사다. 2008년 말부터 GS건설은 공공부문 강화를 천명하며 직제를 새로 바꾸는 등 관급공사에 사활을 걸었다. 국내 영업본부 산하에 공공수주팀도 기존 2개에서 3개 팀으로 확대했다. 그 덕분인지 GS는 경기도 광교신도시 신축공사, 농촌진흥청 신청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등을 따내며 관급공사 1조 원 클럽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GS건설이 각종 공공 건설 사업을 수주하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한 것은 이유직 성화종합전기 대표다. 과거 대한전선에서 근무했던 이 씨는 정부 사업 발주를 내는 조달청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조달청과 인연이 깊던 이 씨에게 먼저 접근해 온 것은 GS건설이다.
이 씨는 2009년 1월 서울 중구 GS 역전빌딩 1층 접견실에서 남 아무개 부장으로부터 ‘GS건설에서 앞으로 관급공사를 수주해 시공하려는데 조달청엔 아는 사람이 없다. 경기도 출신 공무원을 소개해주고 수주에 도움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전방위 로비의 시작이었다.
이 씨는 남 부장을 조달청 물자국장 사무실로 데리고 가 유 아무개 조달청 차장을 소개시켰다. 리베라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여 아무개 전 조달청 차장도 소개시켜줬다. 8월에는 행정안전부의 정부청사관리소 서기관인 황 아무개 과장과 만남도 주선했다. 이들을 통해 관급공사 수주를 담당하는 심사위원 관리자를 만나기 위해서다. 심사위원을 포섭하면 심사결과를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다. 심사위원을 1명씩 초대해 GS건설 소유의 골프장에서 회동을 가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11월 GS건설은 2390억 원 상당의 광교신도시 아파트 신축공사를 따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씨는 양심선언을 통해 법정에서 밝히지 않았던 비리사실을 최근 고발했다. 이 씨는 “GS건설은 대포폰까지 만들어 유 아무개 조달청 차장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내가 2010년 1월 GS건설 남 부장이랑 직접 유 차장 개포동 자택을 방문해 5만 원권 6다발, 총 3000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농촌진흥청 신청사 공사 수주를 앞두고 유 차장에게 직접적인 뇌물을 제공했다는 것.
GS건설 관계자들은 농촌진흥청 신청사 이전공사 수주를 앞두고도 조달청 관계자들을 찾았다. GS건설은 2010년 12월 이 씨와 함께 조우회 사무실을 찾았다. 조달청 출신 OB들의 친목모임인 조우회에서 이 씨는 ‘관급공사 수주를 많이 해야 하니 GS건설을 많이 도와 달라’고 김 아무개 전 조달청 부이사관에게 부탁했다. 2011년 2월 GS건설은 2430억 원 상당의 농촌진흥청 신청사 이전공사를 수주 받았다.
GS건설이 소개받은 조달청 공무원 중 가장 실세는 유 전 차장이다. 조달청 심사위원의 결재라인 상단에 있어 이들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브로커 이 씨와 GS건설 관계자를 만난 사실을 시인한 유 전 차장은 “이유직 씨와 GS건설 관계자가 청에 찾아와서 만난 것은 사실이다. 밥 먹은 것 정도가 기억나고 돈은 받은 적 없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GS건설은 감옥에 있는 이 씨를 관리하며 그가 입을 열지 않도록 단속했다.
# 수주 대가로 브로커에게 흘러들어간 5억 원
“내가 받은 5억 원이 증거다. 무슨 대가로 나에게 5억 원을 줬는지 생각해 보시라. 이 자체가 GS건설 입장에서는 배임이다.” (브로커로 활동한 이유직 씨)
“GS에서 브로커 줘야 한다고 업(UP) 계약서 쓰자고 했죠.” (하청업체 대표)
GS건설은 수주 로비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리어 이유직 대표와 하청업체 간 아귀다툼의 피해자를 자처한다. 하지만 광교신도시와 농촌진흥청 공사를 수주한 뒤 GS건설은 이유직 대표에게 대가를 보상했다. 외부자인 이 씨에게 GS건설은 5억 원을 지급했다.
GS건설은 중간에 자신의 하청업체 J 사를 끼워 넣고 하청업체가 이 씨에게 돈을 지급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J 사에 일감을 주며 견적을 낼 때 이유직 씨에게 줄 돈을 포함시키는 식이다. GS는 J 사에 “브로커에게 돈을 줘야 하니 실제보다 계약금을 올려 업(UP) 계약서를 쓰자”고 제안했다. 하청업체는 다시 이 씨와 허위 고문 계약을 맺고 GS가 지시한 5억 원을 지급했다.
GS건설은 “모든 수주과정은 절차에 맞게 이뤄졌다”며 “이유직 씨에게 대가를 준 적이 없다. 하청업체가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비나 브로커 섭외활동 전부를 부인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미 경찰수사 과정에서 GS건설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 심의위원들의 평가로 시공사가 선정된다. 조달청과 경기도 공무원들을 통해 수주 정보를 얻고, 최종적으로 담당공무원이나 심의위원들에게 수주를 부탁해줄 것을 기대했다”고 진술했다.
J 사 대표는 “GS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와서 브로커에게 돈을 줘야 하니 업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우리는 브로커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GS건설은 브로커를 통한 모든 로비활동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달리 재판부는 이유직 씨에게 브로커 활동에 대한 혐의로 징역 2년, 추징금 4억 5000만 원을 선고했다.
브로커 활동으로 옥살이를 하면서도 이 씨는 조달청과 GS건설의 비리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감옥에 있는 이 씨가 입을 열지 않도록 GS가 감언이설을 꾸며댔고, 이를 믿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내가 혼자 안고 가면 대가가 있을 것이라며 나를 진정시켰다”며 “GS건설 남 부장의 형이 면회까지 와서 ‘함구할 것’을 종용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남 부장의 형은 2015년 11월 이 씨를 면회하고 영치금을 냈다.
# 조달청-건설사 유착 드러난 GS건설
이유직 씨는 GS건설이 조달청 인맥을 통해 수주가 원활히 이뤄지자, 조달청 인사 영입에 열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이 씨에 따르면 GS건설의 박 아무개 상무는 퇴직을 앞두거나 퇴직한 조달청 인사 6명 명단을 가져와 ‘더 힘센 자’를 가려달라고 이 씨에게 부탁했다. 이 씨는 명단을 보고 육사 출신인 권 아무개 전 대구지방조달청장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권 씨를 추천했다. 이 씨는 “내가 추천해서 권 씨가 GS건설 영업상무로 활동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실제로 권 전 청장은 GS건설 고문으로 재직했다. 2010년 4월에 조달청을 퇴임한 직후 권 전 청장은 2011~2014년 GS건설에서 영업담당으로 활동했다. 고위공무원이 유관기관인 GS건설에 재취업했음에도 조달청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조달청 감사실에는 권 전 청장의 재취업과 관련된 기록조차 없다. 고문으로 월급이 나가는 만큼 모니터링이 되어야만 하는 데도 구멍이 생긴 것. 이에 대해 조달청은 “어떤 직위든 간에 재취업의 경우 연락이 오게 되는데 이 경우는 기록 자체가 없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보통 발주처에 따라 해당 출신 공무원을 영입한다. 고문으로 주로 활동하며 출신 조직에서 나온 수주 영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조달청과 건설사 간의 유착관계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건설사-조달청 유착은 수면위로 떠오르기 힘든데, 이 경우 브로커가 처벌을 받은 만큼 사건 전모가 드러났고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징역살이를 마친 이 씨는 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내고 GS건설 임직원과 조달청 공무원 등을 뇌물공여, 뇌물수수, 배임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이를 대검찰청에 이첩,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이승철 부장검사)에서 수사를 진행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고발을 각하했다.
최근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양석조 부장검사)에서 다시 수사 중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검찰에서 GS의 역외탈세 등 문제를 이미 갖고 있어서 당장 수사 진척이 없더라도 GS그룹으로서는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GS건설 측은 “이유직 씨에게 돈을 준 것은 하청업체고, 이미 그 분이 변호사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아 다 끝난 사안”이라며 “우리는 정당한 계약을 통해 수주를 진행했고, 뇌물은 가당치 않은 사안이라 엇갈리는 진술은 소명하면 명쾌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