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전원책 변호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 막판에 바뀐 칼잡이
6월 지방선거 대패 후 자유한국당엔 위기감이 퍼졌다. 인적 쇄신을 핵심으로 하는 개혁 없인 당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김병준 비대위’다. 한때 친노 인사였던 김병준 위원장은 취임 초부터 계파 청산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그 벽은 높기만 했다.
친박, 친홍, 복당파 등 주요 계파들은 김 위원장을 가운데 두고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주요 당론을 정할 때도 계파 논리가 충돌하면서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김병준 비대위는 결국 실패할 것이란 말들이 공공연히 돌았다.
김 위원장은 히든카드를 빼들었다. 당 외부 인사에게 인적 쇄신 전권을 준 조강특위를 출범하기로 한 것이다. 친박 등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현직 당협위원장 일괄 사퇴안도 밀어붙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 “김 위원장이 독해졌다” “김 위원장 배후에 특정 계파 수장이 있다” 등과 같은 말이 나왔다.
정치권 관심은 누가 조강특위를 주도할 외부위원으로 발탁되느냐에 쏠렸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따르면 당초 중도 성향의 한 교수와 검찰 출신 변호가가 유력한 후보였다고 한다. 검찰 출신 변호사의 경우 친박계에서 강하게 밀었다는 후문이다. 한 친박 의원은 “우리가 선호했던 그 변호사를 강력하게 밀었던 것은 맞다”고 귀띔했다. 조강특위 외부위원을 놓고서도 계파 신경전이 벌어졌을 것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양자구도로 좁혀지는 듯했지만 김병준 비대위는 새로운 인물을 발탁했다. 여러 차례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 전원책 변호사를 삼고초려 끝에 ‘칼잡이’로 영입한 것이다. 이를 두고도 친박과 친홍 인사들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그동안 친박들을 향해 쓴소리를 해왔던 전원책 변호사를 데려온 게 김 위원장만의 결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친박 청산을 원하는 김무성 의원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 현역 의원 살생부에 뒤숭숭
전권을 부여받은 전 변호사는 연일 화제성 발언을 쏟아내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그동안 존재감이 미미했던 자유한국당으로선 전 변호사 등판만으로도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자유한국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 전 변호사 임명 후 당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보수진영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읽힌다.
전 변호사는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새롭게 뽑을 당협위원장에 정치 신인을 대거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전 변호사는 “병역·납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자가 명색이 보수주의 정당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또 “아무리 지역구 관리를 잘해도 품성과 열정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한다”며 심사 기준도 제시했다.
현역 의원들은 강한 불만을 털어놨다. 물갈이 타깃으로 거론되는 친박계에선 집단 움직임도 감지된다. 또 다른 친박 의원은 “현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외부인이 들어와 또 다시 당을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의 한 중진 의원도 “특정인 한 명에게 이렇게 전권을 주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직 원외 당협위원장은 “한시적 기간에 운영되는 조강특위가 공천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권한으로 국회의원 자격을 운운하느냐”면서 “전 변호사를 앞세워 친박 등을 축출하고 당을 장악하려는 모종의 음모가 작동되고 있는 것 같다. 물갈이 대상 대부분이 친박과 친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무성을 좌장으로 하는 복당파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러한 반발 기류는 자유한국당 내에서 은밀히 도는 소위 ‘살생부’로 인해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이 살생부를 입수해보니 현역 의원 중 당협위원장으로 뽑지 말아야 할 리스트를 정리한 것으로 친박 인사들은 거의 포함돼 있다. 또 홍준표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 역시 전원이 살생부에 올라 있었다. 반면, 복당파로 분류되는 인사들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를 두고 친박과 친홍 인사들은 김병준 비대위가 전원책 변호사를 내세운 의도가 드러났다며 분노한다. 김병준 비대위와 복당파가 미리 살생부를 만들어 쳐낼 인사를 정해놓고, 당을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얘기다. 복당파 출신의 한 의원은 “솔직히 납득이 가는 명단 아니냐. 그들(친박)을 청산하라는 게 많은 국민들의 요구”라고 말했다.
# 나갈 사람 나가라, 보수대연합 세운다
김병준 비대위 관계자는 “우리가 특정 계파와 손을 잡았다는 것은 허위”라고 일축했다. 전 변호사도 “조강특위는 계파 이해관계에서 자유롭다”는 취지로 말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친박 등이 살생부를 만들었다며 화를 내고 있는데 그런 것은 없다. 인적 청산은 꼼꼼한 감사와 조사 등을 거쳐 이뤄질 것이다. 살생부 운운하는 이들이 인적쇄신을 거부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작극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상당수 친박 의원들과 친홍계 인사들은 탈당도 불사할 것이라며 전의를 다졌다. 어차피 차기 총선 공천을 받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차라리 탈당해 3지대에서 신당을 만들어 추후를 도모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물밑에서 전 변호사 측과 접촉을 시도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이이 대해 김병준 비대위와 조강특위 관계자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바른미래당과의 합당을 포함한 보수대연합의 돛을 올리기 위해선 인적 쇄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친박 청산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엔 현역 의원들이 쉽게 당을 떠나지 못할 것이란 판단도 깔려 있다. 조강특위 구성에 깊숙이 관여한 자유한국당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쇄신의 완성은 계파 청산 후에 이어질 인재 영입이다. 그들이 지금의 당에 들어오고 싶겠느냐. 과연 탈당을 실행할지 미지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당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엔 계파 갈등을 종식시켜야 한다. 보수대연합을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닦는 게 최우선 목표다.”
실제로 김 위원장과 전 변호사는 물갈이와는 별개로 당 외부 인사들과의 만남을 늘리며 본격적 인재 영입에 나섰다. 둘은 황교안 전 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탈당한 원희룡 제주지사와 남경필 전 경기지사 등의 입당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도 유명 방송인, 시민단체 대표, 대기업 현직 임원 등을 상대로도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앞서의 비대위 관계자는 “조강특위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도 전에 회의론이 팽배하고 잡음도 무성하다는 것을 잘 안다. 전 변호사가 결국 계파 이해관계에 밀려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면서 “조강특위가 실패하면 김병준 비대위도 실패하는 것이다. 전원책과 김병준은 이제 한 몸이다. 조강특위에 쏟아지는 안팎의 공격을 비대위가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