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매년 피감기관을 감사 및 감찰해야 한다는 의무는 망각한 채 설전과 공방에 여념이 없다. 올해 국정감사도 파행과 고성으로 얼룩진 채로 막을 올렸다. 사진은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감 회의장.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해명을 요구하며 회의장을 집단 퇴장했다. 최준필 기자.
국정감사 첫날인 10일 가장 후끈했던 곳은 문화체육관광위 국감 회의장이었다. ‘선동열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을 향해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선수 선발 과정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손 의원이 “선수 선발 과정에 청탁이 있지 않았냐”라고 묻자 선 감독은 “소신에 따른 현장의 결정이었다”고 답했다. 손 의원은 “특정 후배를 돕고 싶어서 공정하지는 않지만 이 후배들이 나름대로 우승하는 데 도움도 되겠다 싶어서 공정하지 못한 결정을 내린 거 아닌가”라고 물으며 사과를 요구했다. 별다른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공세만 이어갔을 뿐이다.
선 감독은 “운동만 해서 행정은 몰랐다. 앞으로 선수 선발 과정에서 국민에게 좀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손 의원은 “사과하든지 사퇴하든지 하라”며 “선 감독 때문에 프로야구 관객이 20%나 줄었다”고 쏘아 붙였다. 그러면서 “소신 있게 선수를 뽑은 덕분에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다고 하지 마라”며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과하든 사퇴하든 하라”고 말했다. 야구 금메달을 깎아내리는 듯한 손 의원의 이러한 발언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손 의원은 쟁점과는 무관한 선 감독 연봉을 물었다. 선 감독이 “2억 원을 받는다”고 답하자 손 의원은 근무시간과 출퇴근 시간 등을 집요하게 물었고, 선 감독은 “출근이 아니고 일이 있을 때마다 왔다 갔다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손 의원은 “2억 받으시고?”라고 되받아 치기도 했다. 손 의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출근도 안 하면서 2억 원을 받느냐, 판공비는 무제한으로 지급되지 않느냐”라고 다그쳤다. 선 감독은 “판공비는 무제한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음에도 손 의원은 몇 차례나 판공비를 되물었다. 결국 손 의원은 확인되지도 않은 판공비 의혹을 제기했고, ‘사과하든가 사퇴하든가’라는 의미 없는 외침으로 질의를 마무리했다.
법제사법위원회도 진통을 겪었다. 통상적으로 대법원 국정감사에는 관행적으로 법원행정처장이 출석한다. 삼권분립을 지키기 위해서다. 10일 열린 대법원 국감에도 김명수 대법원장 대신 법원행정처장이 출석했는데, 이를 두고 여야 간 설전이 터져 나왔다. 한국당 의원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장들에게 공보관실 운영비를 나눠줬는데, 김 대법원장도 이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증인으로서의 출석을 요구했다. 이은재 한국당 의원은 “예산을 쌈짓돈처럼 사용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자리에 앉아 해명하고 공개하라”고 요구했고, 송기현 민주당 의원은 “사법부마저도 야당이 우려하는 것처럼 정치판으로 끼어드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막아섰다.
여야 공방이 1시간 넘도록 이어지자 한국당 소속인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김 대법원장에게 인사말을 할 때 이에 대한 답변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작 김 대법원장의 인사말이 시작되자 야당 의원들은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10여 분이 지난 뒤 의원들이 다시 자리로 돌아오며 국감 파행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으나, 결국 이날 국감은 김 대법원장의 출석 문제로 다툼만 벌이다가 끝이 났다.
11일 열린 헌법재판소 국감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10일 문 대통령은 “국회의 책무 소홀이 다른 헌법기관의 공백사태를 초래하고 국민의 헌법적 권리까지 침해하고 있는 상황을 조속히 해소해주시길 바란다”고 국회를 향해 당부했다. 이은재 한국당 의원은 “‘코드가 맞으면 임명하는 것’에 대한 야당의 문제제기에 여당이 반응하지 않고 대통령이 나서지 않아 헌재의 기능마비가 온 것이다. 그 문제를 야당에 떠넘겨선 안 된다”고 항변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도 “야당 대표 시절 역지사지로 돌아보시고 청와대의 기본적 책무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공격했다.
이에 여당도 반박하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한국당 의원들은) 대통령 말씀을 언급하시는데, 대통령 말씀이 틀린 말이냐. 대통령을 바라보지 말고 국민을 보라”고 말했다. 조응천 의원도 “유독 헌재에 대해서만 국회가 가혹한 것 같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를 보다 못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중재에 나섰다. 박 의원은 “여야 모두 대치상황을 보면, 당분간 헌재는 식물 헌재로 유지될 것”이라며 “한국당에서 추천한 후보는 민주당에서 추천한 후보와 일을 못 하겠다고 하니, 바른미래당에서 추천한 후보에 대한 인준을 받아 취임하면 헌법재판관이 7명으로 헌재가 정상화되지 않겠느냐”라고 제안했다.
12일에도 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강정마을 사면‧복권’ 검토 발언을 꺼내 또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문 대통령이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오는 대로 사면‧복권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사법부를 무력화시킨 발언’이라고 반발한 것이다.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이 국정감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제원 의원은 “재판이 끝나지 않은 사건으로 사면‧복권을 논의하는 것은 재판 무력화고 재판에 대한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며 “사법부를 기만하는 행동이자 재판 농단”이라고 비판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그제(10일) 대법원 국정감사는 오전 내내 아무것도 못 했다. (11일) 헌법재판소 국정감사도 11시까지 이석태‧이은애 후보자 청문회를 다 마쳐놓고 자격시비 하느라 아무것도 못 했다”며 “오늘(12일)은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의사진행과 아무 상관없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여야 간의 고성이 오가자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정회를 선언했다. 3일 내내 법사위는 그렇다할 감사 없이 정쟁에만 몰두했다.
11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증인 선서를 거부하며 퇴장했다. 한국당 의원들의 좌석이 비어 있다. 박은숙 기자.
교육부 국감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인사청문회 2라운드였다. 앞서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 채택이 불발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여기에 불만을 가진 국회 교육위 소속 한국당 의원들은 교육부 국감을 통해 유 장관 공세에 집중했다. 곽상도 한국당 의원은 유 장관 증인선서부터 막았다. 곽 의원은 “범법행위가 해결되고 나서 교육부 장관으로서 증인선서를 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당 의원들은 유 장관을 인정할 수 없다며 유 장관 대신 박춘란 교육부 차관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김현아 한국당 의원은 “국민은 (유은혜) 의원님을 아직 부총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국당은 의혹이 해소되기 전까지 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며 “질의는 차관께 하겠다”고 말했다. 박 차관이나 실‧국장들이 의원들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야당 의원들은 밤이 될 때까지도 유 장관을 ‘패싱’했다. 회의 도중에 여야 고성이 오가자 이찬열 교육위원장은 정회를 선언했고 한국당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했다. 이후 회의는 곧 속개됐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항의의 의미로 10분 뒤에서야 입장했다. 그렇게 진행된 3일 동안의 국감은 ‘막장’ 그 자체였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꾸벅꾸벅 졸다가 바람처럼 사라져…‘평균 나이 55.5세’ 의원들 국감은 인고의 시간? 국정감사 회의장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른다. 증인들이 회의장 앞을 서성이며 안절부절 못하는 장면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간혹 지루한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의원들도 눈에 띈다. 국정감사 도중 회의장에서 사라지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대놓고 조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매년 이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올해 역시 이런 행태는 반복됐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저녁 늦게까지 진행되는 국감 일정에 피로했던 탓일까. A 의원은 자신의 발언 기회가 올 때를 기다리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더니 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졸다가 자신의 발언 차례가 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장관에게 질의를 시작했다. A 의원은 보좌진이 작성해준 것으로 보이는 ‘대본’을 줄줄 읽다가 “장관, 뭐 느끼는 거 없습니까”라며 질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발언 시간이 끝나자마자 A 의원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그의 보좌진은 부랴부랴 의원의 짐을 챙겨 뒤를 따랐다. 그리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포토제닉 대회를 방불케 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보좌진들은 의원의 홍보 사진 촬영을 위해 어정쩡한 기마자세로 카메라를 잡고, 의원들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포즈를 취했다. 고개를 떨어뜨려 졸다가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좀 더 과감한 손동작을 보이거나 한껏 심취한 표정으로 증인을 몰아세웠다. B 의원은 국정감사 도중 딴 짓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노트북을 이용해 종합지 메인을 훑기 시작했고 이마저도 지루했는지 옆자리에 앉은 다른 의원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보였다. C 의원은 오전에 회의장을 나간 뒤 저녁시간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C 의원 측에 행방을 물었더니 “11시에 당내 일정이 있었다. 오후에도 쭉 일정이 있었는데 대부분 비공식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상임위에는 C 의원처럼 개인적인 또는 공식적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의원들이 많았다. 약 20명 정도의 정원인 상임위 국감 회의장에는 10명 남짓의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루한 회의를 견디지 못해 ‘땡땡이’를 치는 의원도 있지만, 대부분 의원들 모두 개인 일정을 소화했다. 소관 상임위를 두 개씩 맡는 의원들은 마치 ‘투잡’ 뛰듯 자신의 발언 시간에 맞춰 회의장을 옮겨 다니며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어떤 의원들은 취재 기자들과의 전화통화를 위해 잠깐 모습을 감추기도 했다. 한 보좌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근처에 급한 미팅이 있으면 잠깐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전화를 받으러 나가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좌진도 “의원들 나이를 생각해보라. 50대 60대의 나이로 의정활동에 지역구활동 모두를 다 소화하는데, 우리 나이에도 힘든 일정 아닌가”라며 “자는 것도 아니고 잠깐 조는 건데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했다.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