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기독교 신앙의 메카였다.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막론하고 기독교는 평양을 통해서 한반도에 전파됐다. 해방 이후 북한의 실권을 장악한 뒤 종교를 말살한 김일성조차 기독교 가문의 자손이었다.
북한 헌법은 신앙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허울뿐이다. 북한의 공산체제에서 종교는 아편일 뿐이었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순교했거나 월남했고, 지하로 숨었다. 교황청과의 관계도 끊어졌다. 그 후로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 가톨릭은 북한의 평양, 함흥 두 곳에 교구(敎區), 덕원 자치수도원구를 두고 있다. 평양교구는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교구장서리를 겸직하는 등 형식상으로는 한국 가톨릭이 관장하는 체제이다. 1970년대 들어 각종 종교 단체도 등장했지만 정권에 봉사하는 단체일 뿐이다. 성당에서 행해지는 교리 해석이나 전례 또한 전통에서 벗어난 북한식이다.
신앙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김일성 주체사상이다. 북한에서 선교행위는 주체사상을 거역하는 대역죄에 해당한다. 현재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이나, 억류됐다 풀려난 미국인의 대부분이 목사인 것도 그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 길이 열려있던 시절, 산에 올라 ‘할렐루야 아멘’ 또는 ‘나무아미타불’을 외운 남한의 관광객을 북한당국은 잡아다 조사했다.
이런 북한이기에 김 위원장의 초청 발언의 진의는 좀 더 두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특히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뒤 폴란드 공산당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는 것을 보고 교황에게 공포감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발언에 대한 교황청은 첫 반응은 북한으로부터 공식 초청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교황의 초청에 앞서 교황청과의 수교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신앙에 대한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 비핵화가 물리적 변화라면 교황 초청은 주체사상의 변화를 수반하는 정신적인 변혁일 수 있다.
2014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반도의 평화와 형제애의 회복, 그리고 핵 없는 세상을 끊임없이 기도해 온 프란치스코 교황인 만큼 신앙의 불모지임에도 불구,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은 상당하다. 김정은도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개방의 의지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 교황이 체제에 가할 위험을 감수하고 초청할 여지도 있다. 두 접점이 만나야 교황의 평양방문은 성사된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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