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지나 롤로브리지다라는 배우에 대해 알아보자. ‘라 롤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1927년에 태어난 이탈리아 배우였다. 모델 일을 하면서 영화 현장의 단역 생활을 하던 그녀는 1947년 미스 이탈리아 콘테스트에서 3위 자리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고, 1950년엔 할리우드의 초청을 받기에 이른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영미권을 누비며 험프리 보가트, 버트 랭커스터, 토니 커티스, 이브 몽탕,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프랭크 시내트라, 숀 코너리, 율 브리너, 록 허드슨 등 대서양 양편의 굵직한 남성 스타들과 작업하던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1956년에 출연했던 영화 제목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리곤 했다. 결정타였던 작품은 앤서니 퀸과 공연한 ‘노트르담의 꼽추’(1956). 빅토르 위고의 이 소설은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지만, 지나 롤로브리지다만큼 에스메랄다를 관능적으로 보여준 배우는 없었다.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 출연 당시의 지나 롤로브리지다
그녀는 소피아 로렌,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브리지트 바르도 등과 함께 당대 유럽을 대표하는 섹시 스타였으며 할리우드에서도 통했던 글로벌 배우였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1959) 같은 대작 영화의 주인공을 맡기도 했고, 로맨틱 코미디의 헤로인이 되기도 했다. 1960년에도 이어지던 전성기는 1970년대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후 그녀는 TV로 옮겨갔고, 1990년대엔 은퇴해 자선 단체 일을 하며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특기할 만한 건 1970년대 말에 한때 포토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는 사실. 폴 뉴먼, 살바도르 달리, 헨리 키신저, 오드리 헵번, 엘라 피츠제럴드 등의 사진을 찍었으며,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며 화제를 모았다.
사생활을 살펴보면 그녀는 1949년 22세 때 슬로베니아의 의사인 밀코 스코피치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들 부부는 1960년에 캐나다의 토론토로 이주했는데, 1971년에 22년의 결혼 생활을 이혼으로 마무리한다. 이 시기 몇몇 만남이 있었지만 이혼 후 그녀는 독신주의를 고집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2006년, 롤로브리지다는 스페인 잡지 ‘올라’를 통해 놀라운 뉴스를 전한다. 두 번째 결혼 소식이었는데, 상대는 무려 34살 연하였던 스페인의 사업가 하비에르 리가우였다. 79세의 왕년의 스타와 45세의 중년 남자는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84년 몬테 카를로의 어느 파티였다. 당시 지나는 55세였고 하비에르는 23세. 모자지간이나 다름없는 나이 차이였지만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좋은 친구가 되었고 이후 연인으로 발전했으며 급기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난 항상 연하남들에게 약했다. 그들은 연상녀에게 관대하고 그 어떤 콤플렉스도 없기 때문”이라며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연말에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릴 거라고 했다. 하지만 12월 6일, 그녀는 결혼 계획이 취소되었음을 밝혔다.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건 결혼 발표 이후 두 사람 사이가 오히려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하비에르 리가우
그리고 7년 뒤, 86세의 롤로브리지다는 하비에르 리가우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리가우가 바르셀로나에서 혼인 신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은 3년 전인 2010년에 이뤄졌고, 테레사라는 이름의 알 수 없는 여인이 롤로브리지다 대신 결혼식장에 있었다. 리가우는 대리 신부와 함께 결혼하고 정작 신고는 롤로브리지다와 한 것이다. 사기 결혼이었고 사문서 위조였으며 명예 훼손이었다.
사실 이상한 낌새는 연인 시절부터 있었다. 리가우는 사업상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며, 롤로브리지다에게 재정 관련 위임장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롤로브리지다는 불안했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그녀로선, 스페인의 사업가인 리가우가 자신의 위임장을 가지고 어떤 계약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리가우의 결혼 사기극이 자신의 유산을 노린 행동이라고 여겼고 법정 싸움을 불사했다.
하지만 로마 법정은 남자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리가우에겐 위임된 권리가 있었고, 서류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롤로브리지다는 그들 사이에 그 어떤 부부의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며 항변했다. 함께 여행했을 때도 단 한 번도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으며, 바르셀로나에 있는 리가우의 집에 방문한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냉정했고, 롤로브리지다는 항소했다. 한편 피고 쪽 변호사는 리가우가 이미 사업가로서 상당한 부를 쌓았으며,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 신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두 사람의 법정 싸움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으로 결혼 신고를 한 리가우는 절대로 결혼 관계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 한편 롤로브리지다의 변호사는 “법원의 선고를 존중하지만 왜 판사가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며 “롤로브리지다는 절대로 그와 결혼한 적이 없다는 걸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도 그들의 주장은 접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 올해 롤로브리지다는 89세, 리가우는 57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