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에 쏟아지던 기사들이다. 잠정 은퇴를 선언한 후 연예계를 떠났다가 돌아온 방송인 강호동의 행보에 대한 우려였다. ‘국민 MC’라 불리던 유재석, 강호동 체제에서 강호동이 뒤처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이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진행 스타일을 바꾼 강호동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 반면, 유재석의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올해 초 MBC ‘무한도전’ 종방이 결정적이었다. 과연 두 사람의 희비쌍곡선은 향후 어떤 방향성을 보일까?
다시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강호동. 사진=JTBC ‘아는형님’ 제공
#강호동의 저력, 다시금 ‘국민 MC’ 등극
강호동의 침체기는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잠정 은퇴 전 그가 진행하던 MBC ‘무릎팍도사’와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도 부활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결국 과거의 영광만 곱씹다가 다시금 막을 내렸다.
강호동은 새로운 도전도 쉬지 않았다. KBS 2TV ‘달빛 프린스’와 ‘투명인간’, SBS ‘맨발의 친구들’, MBC ‘별바라기’ 등 지상파 3사에서 골고루 신작을 내놨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모두 조기 폐지됐다. 강호동의 종방 소감 없이 자막으로만 폐지를 알린 프로그램도 있었다.
하지만 강호동은 다시금 시류를 읽었다. 케이블채널의 영향력이 커지고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하며 지상파 3사 체제가 흔들리는 사이 강호동 역시 주무대를 옮겼다. 강호동이 출연하는 지상파 예능이 없다는 것이 그를 비판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강호동은 지상파를 탈피하면서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JTBC의 간판으로 자리 잡은 ‘한끼줍쇼’. 사진=JTBC ‘한끼줍쇼’ 제공
KBS 2TV ‘1박2일’로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강호동과 나영석 PD의 재회 역시 성공적이었다. 두 사람은 tvN ‘신서유기’로 다시 만났다. 이 프로그램의 첫 무대는 TV가 아니라 웹(Web)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고 인기가 상승하자 tvN으로도 편성됐다. 웹 예능이 TV 예능으로 역(逆)편성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강호동의 재기가 의미있는 이유는 단순한 ‘부활’이 아니라 ‘변화’이기 때문이다. 강호동은 복귀 후 진행스타일을 싹 바꿨다. 기존 강호동은 상대방을 윽박질렀다. 씨름으로 한국을 제패한 천하장사 출신답게 마르지 않는 스태미나를 바탕으로 시종일관 출연자들을 쥐락펴락했다. 그래서 강호동이 MC를 맡는 프로그램은 녹화 시간이 길기로 유명했다. 출연진에게서 끊임없이 재미있는 요소를 끄집어내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콘텐츠를 선사하려는 전략이었다.
최근 방송된 ‘아는형님’에서 동료들이 “강호동은 ‘타노스’였다”고 뼈있는 농담을 건넨 것이 그 방증이다. 영화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강력한 악당인 타노스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는 것만으로 인류의 절반을 소멸시켰듯 촬영 현장에서 강호동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편집 포인트가 생기고 현장 분위기가 좌지우지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의 강호동은 다르다. ‘아는형님’에는 ‘스타킹 피해자’들이 줄지어 출연해 피해 사례(?)를 거론한다. 과거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여했다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강호동은 부인하기도 하고 자기 반성을 하기도 한다. 이제 강호동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다. 프로그램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진짜 큰형’ 느낌으로 동생으로 장난을 부드럽게 받아넘기고,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렇게 편해진 강호동을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 역시 푸근해졌다.
한 지상파 예능 PD는 “야외에서 진행되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득세하던 시절에는 강호동의 에너지가 무척 필요했다. 하지만 힐링과 휴식 등을 추구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강호동은 기존의 박력보다는 주변 이들과 어울리는 화합을 새로운 카드로 꺼내들었다”며 “스스로의 과거를 반성하는 캐릭터를 잡은 것 역시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유재석의 위기, ‘국민 MC’ 수성할까?
2010년 전후, 유재석과 강호동은 예능계를 양분했다. 지상파 3사의 연말 연예대상 역시 두 사람의 싸움이었다. 누구의 손을 들어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팽팽했다. 하지만 강호동이 잠정 은퇴를 선언한 후 유재석의 독주가 시작됐다.
‘무한도전’으로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유재석. 사진=MBC ‘무한도전’ 제공
하지만 1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던 ‘무한도전’은 올해 초 막을 내렸다. ‘런닝맨’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고, 한류 콘텐츠 수입을 금지하는 한한령이 중국으로 향하는 문을 봉쇄하며 영향력이 약화됐다. ‘해피투게더’ 역시 “트렌디하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물론 유재석 역시 변화를 시도했다. JTBC ‘슈가맨-투유 프로젝트’ 시리즈를 맡았고 tvN ‘유 퀴즈 온더 블럭’을 통해 첫 케이블, 종편 채널 나들이에 나섰다. ‘슈가맨-투유 프로젝트’는 잊힌 가수들을 발굴해내며 유재석다운 매력이 돋보였지만 섭외가 쉽지 않은 시즌제 예능으로서 지속성이 없다는 측면이 아쉬웠다. ‘유 퀴즈 온더 블럭’은 1회를 제외하면 1%대 시청률을 전전하고 있다.
넷플릭스 예능 ‘범인은 바로 너’라는 파격적인 도전도 했다. 넷플릭스 측이 그 성과를 공개하지 않아 성패를 정확히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대중이 ‘범인은 바로 너’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내용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것을 통해 대략의 성패는 짐작해볼 수 있다.
분명 유재석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각종 미담의 주인공이자 기부천사로서 대중의 지지도가 탄탄하다. 누군가가 걱정할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남들과 비슷한 정도의 성과로는 지금의 지명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재석이기에 ‘썸씽 뉴’가 필요하다.
유재석은 SBS 새 예능 ‘아름다운 가을마을, 미추리’로 또 다시 시도를 앞두고 있다. 이 예능은 ‘무한도전’을 떠나 보낸 유재석의 향후 행보를 가르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 여러 관계자들은 관측하고 있다. 또 다른 방송계 관계자는 “유재석의 10년 아성이 흔들리는 사이 신동엽, 전현무, 김구라 등이 대항마로 떠올랐다”며 “여전히 유재석은 1등이지만 1등을 지키기 위해서는 확실한 변화와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