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서 의병장의 실제 유족은 선친이 1909년 일제 경찰에 체포된 뒤, 탈출을 시도하다 총을 맞고 유명을 달리했다고 진술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의병장 김운서(공훈록 기준은 1879~1929)는 임실, 장수, 남원, 함평 등 호남을 중심으로 일제에 항거한 이석용 의병진영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중군장으로서 총포와 의병을 모집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훗날에는 진영의 부장(副長)으로서 직접 전투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공훈록에 따르면 의병장 김운서는 충남 논산 사람으로 적시돼 있으며, 1929년 병사한 인물로 기재돼 있다. 김운서는 앞서의 공을 인정받아 1986년 건국포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공식적으로 김운서의 유골은 현충원에 묻혀 있다.
그런데 국내 대표적인 의병사 연구가인 이태룡 박사는 지난 2009년 10월 24일, 의병장 김운서와 관련해 뜻밖의 사실과 마주한다. 당시 이 박사는 전주KBS에서 마련한 남한 대토벌(일제가 1909년 9~12월까지 석 달에 걸쳐 당시 호남을 중심으로 의병들을 뿌리뽑기 위해 실시한 군사작전) 100주년 기념 프로그램에 초청받았다. 이 박사는 유족 및 시민들과 함께 주요 의병 유적지를 돌며 안내했고, 그 내용은 하나의 ‘다큐’로 방영됐다.
이태룡 박사는 의병 유적지에서 주요 인물인 이석용 의병장을 소개하며, 그 수하의 김운서 이야기도 함께 꺼냈다. 그 설명을 듣던 한 80대 노인이 이 박사에게 다가왔다. 그 노인은 이 박사에게 “아무래도 김운서라는 분이 우리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할아버지 이야기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상한 노릇이었다. 의병장 김운서는 이미 그 후손이 1990년 서훈 신청을 통해 애국장을 받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후손은 현재까지 보훈급여를 수령해가고 있었다. 앞서의 80대 노인 A 씨는 이 박사에게 “나의 아버지는 의병활동을 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공훈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다만 A 씨는 자신의 조부 이름이 호적상 김은배, 그리고 집안에서 쓰던 이름은 김대명이라고 했다. 어찌된 일일까. 이태룡 박사는 혹시 몰라 A 씨에게 집안 족보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A 씨가 김대명, 김은배라고 칭하던 조부의 ‘자’가 바로 ‘운서’인 것을 확인했다. A 씨와 그의 아버지는 김대명, 김은배만 머릿속에 넣어 두고 외부에서 주로 쓰던 ‘자’ 운서는 예사로 넘겼던 것이다. 줄곧 ‘대명’과 ‘은배’만을 염두에 두고 공적을 인정받기 위한 자료 수집에 나섰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A 씨는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조부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09년 남한 대토벌 작전 당시 끝까지 항전했던 의병들의 모습.
“조부는 1909년 10월 27일(음력) 순창읍 장덕리의 한 초가집에 은거해 있었지만,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본과 대한제국의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그리고 조부는 그 자리에서 도주를 시도했지만, 곧바로 총탄 5~6발을 맞고 사립문을 나가기 직전 사망했다. 그때 15세였던 아버지는 그 곁에 있었다.”
이 박사는 A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A 씨는 “아버지는 어린 시절 조부와 함께 활동했던 이석룡, 전해산 의병장을 스스럼없이 아저씨로 대했다고 말씀하셨다”라며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그 분들의 제사에 참석해 그들 가문 사람들과 만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A 씨의 진술을 듣고 김운서 의병장에 대한 재판 자료를 비롯해 사료 조사에 나섰다. 무엇보다 공훈록에는 A 씨가 조부의 사망시점으로 지목한 1909년 이후에도 생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을 파고 들었다. 그 와중에 이 박사는 김운서 의병장과 관련한 일제의 재판기록에 몇몇 오류가 있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충남 논산 출신으로 훗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활약한 동명이인인 또 다른 김운서라는 인물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 박사는 사료 연구 및 조사 과정에서 김운서 의병장의 서훈을 신청한 유족이 다름 아닌,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한 동명이인 독립군 김운서의 조카며느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태룡 박사. 일요신문DB
이 박사는 이어 “그나마 독립군 김운서의 이름으로 서훈을 신청했다면 모르겠지만 분명 문제가 있었다. 현재 현충원에 묻힌 시신은 실제론 독립군 김운서의 동생이자 유족의 시아버지였다. 사실상 지금 유족은 김운서 의병장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와 관련해 2010년 3월 A 씨 이름으로 보훈처에 청원도 넣고 내가 직접 보훈처 관계자를 만나 바로잡을 것을 요청했지만,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박사는 A 씨가 김운서 의병장의 친손자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2010년 2월 전북도청에서 내 저서인 ‘호남 의병장 전해산’ 출판기념회를 겸한 행사가 있었다”라며 “그 자리에는 우연찮게 광복회 임실지회장을 맡고 있던 이석용 의병장의 손자와 앞서의 A 씨가 참석했는데, 두 분은 서로를 기억하며 굉장히 반가워했다. 어린 시절, 서로의 집안끼리 오가던 과정에서 만난 인연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운서 의병장의 친손자 A 씨는 이후 굉장히 괴로워했다고 한다. 어렵게 조부의 실체와 공적을 확인했지만, 아무 연관도 없는 엉뚱한 사람들이 조부의 서훈을 신청해 혜택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A 씨는 4년 전, 86세의 고령으로 ‘한’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고 한다. 현재 김운서 의병장의 친증손자는 생존 중이지만, 손자에게까지만 보훈 혜택이 있는 관계로 현실적으로 이를 바로잡을 의지는 별로 없다는 전언이다.
이태룡 박사는 “의병사 연구를 30여 년 하고 있지만, 김운서 의병장 유족같이 기가 막힌 경우는 처음”이라며 “이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과장과 거짓으로 추서된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서훈 신청 브로커, 가짜 독립유공의 원흉인가?…“동명이인 활용하거나 없는 사실 만들기도” 김운서 의병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서훈 신청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집안 선친들의 애국 및 순국 활동과 관련해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지만, 그 서훈 신청의 행정적 과정 및 그 증빙자료 준비 과정에 대해선 문외한인 후손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금전적 대가를 조건으로 횡행한다. 이태룡 박사는 “예를 들어 한국독립운동사(일제의 비밀기록인 ‘폭도에 관한 편책’을 바탕으로 간행)는 국내에서 1968년부터 간헐적으로 발간됐지만, 1992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공개됐다”라며 “이 때문에 서훈 신청 브로커들은 특히 사료가 완전히 공개되기 이전인 1980~90년대 활개를 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이 시기에는 인우보증(특정 사실에 대하여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증명하는 보증)이 서훈 신청 증빙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 때문에 여러 오류가 생겼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한 경우 이들은 서훈 조건을 맞추기 위해 동명의 다른 인물을 활용하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는 당연히 ‘공문서 위조’에 해당한다. 이 박사는 “1년에 많게는 수십 건의 자료를 내게 요청하기도 한다. 이들 상당수는 ‘브로커’일 가능성이 높다”라며 “과거 보훈처 등 관련 기관에서 유사한 업무를 수행해 서훈 신청의 행정적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자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 |
가짜 독립유공자 도대체 얼마나?…전수조사 및 허위 보훈급여 환수 목소리 높아져 최근 가짜 독립유공자 논란이 불거지며 독립유공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가짜 독립유공자에게 이미 지급된 보훈급여에 대한 국고환수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보훈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가짜 독립운동가로 판명된 김정수 씨 일가(김정수·김낙용·김병식·김관보·김진성) 유족이 수령한 보훈급여금 총액이 4억 5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가장 많은 보훈급여를 받은 김정수의 유족들이 챙겨간 액수는 무려 3억 9357만 원에 달한다. 보훈급여를 수령한 1960년대에 비해 물가가 25배 이상 올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일가가 수령한 보훈 급여는 현재 물가로 수십억 원에 해당한다. 가짜 독립유공자란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직 김 씨 일가 유족에게 지급된 보훈급여금 중 환수된 금액은 없다. 10일 국가보훈처는 “기 지급된 보훈급여금 중 국가채권 소멸시효(5년)가 경과하지 않은 9160만 원에 대해 국세체납의 예에 따른 환수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10년간 가짜 독립유공자로 판명돼 서훈이 취소된 39명의 유족이 수령한 보훈급여액은 그 액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고용진 의원실 관계자는 “(서훈이 취소된 39명의 유족이 수령한 보훈급여액에 대한) 자료를 보훈처에 요청했지만 1990년대 이전에는 전산화가 안돼 있었기 때문에 추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고용진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과거 독립유공자 심사와 선정 과정에서 많은 부정과 비리가 있다는 제보를 많이 들었다”면서 “보훈처가 의지를 갖고 독립운동 공훈에 대해 재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 |
가짜 독립유공 서훈의 실체2-독립유공 서훈 심사 과정 돋보기로 들여다보니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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