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국민권익위원회, 국가보훈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8.10.16 연합뉴스
가짜 독립유공자와 보훈처의 업무태만 문제는 국감 테이블에도 올랐다. 16일 있었던 국가보훈처 국정감사에서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심사과정 또한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과거 보훈처의 부실했던 서훈 심사 과정에 대해 전반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보훈처는 1895년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있어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은 자에 한해 독립유공자를 지정했다. 그런데 포상신청 후 사실 확인부터 유공자 지정까지 일련의 과정이 매우 폐쇄적이고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때문에 허위 공적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해도 개선이 쉽지 않고, 진짜 독립유공자들은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제윤경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은 ‘보훈심사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해 ‘입증자료 무’를 사유로 국가유공자 신청을 거부당한 신청인은 850명(25.2%)에 달했다. 그런데도 보훈처에서는 정확한 탈락 사유에 대한 안내나 추가 자료 수집 노력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보훈처 내 유공자 심의 과정에서의 기준이 추상적이고 까다롭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절차는 두 가지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사료수집 등을 통해 발굴하거나 또는 유족들이 직접 포상 및 등록 신청을 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유공자 지정은 대부분 유족들의 직접 신청으로 이뤄지고 있을 것이로 추측한다.
일단, 등록 신청이 완료되면 국가보훈처는 유족이 제출한 증거 자료와 사료를 바탕으로 공적심사위원회에 유공자 심사를 의뢰한다. 공적심사위원들은 독립운동 참여 정도, 독립운동의 공헌과 희생 정도, 지위, 독립운동사에 미친 영향 등을 고려해 유공자 포상 여부를 심의한다. 만약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하는 훈·포장이나 대통령 표창이 없는 상황이라면 유족들은 이를 입증할 증거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입증인 두 명과 주민들의 증언, 공적인 사료 제출 등 일반인으로서는 해내기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다.
심의 과정도 문제로 거론된다. 국가보훈처가 밝힌 평가 기준이 매우 추상적이고 까다로워 심사에 관여하는 위원들의 주관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훈처는 심사위원단의 정보를 공개할 경우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5호)하여 명단은 물론 심사회의록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깜깜이 심사’로 생기는 논란은 적지 않다. 유족들은 ‘입증자료 무’,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 등 구체적인 사유 없이 탈락 사실 자체만 안내받고 이에 대한 추가 입증 자료를 구하는 과정 역시 유족들의 몫이다.
최근 화제를 모은 김진성 선생의 아들 김세걸(71) 씨도 20년에 걸쳐 직접 관련 증거를 찾은 인물이다. 그는 1998년부터 국가보훈처에 유공자 서훈 신청을 했으나 보훈처는 “검토해보겠다”는 말로 사실상 김 씨를 무시했다. 결국 김 씨가 직접 증거를 찾아 제출하자 보훈처 직원은 “저희는 머리가 나빠서 못 찾았다”며 “어떻게 다 찾으셨냐”라는 황당한 답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범호 선생의 손자 이기동 씨가 제공한 과거(1994년 5월) 보훈처 자료요청 공문의 일부. 자료제공=이기동 본인
더 큰 문제는 ‘입증자료 무’라는 반려 사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보훈처는 정부의 기록관리 부실, 유실, 파기로 인해서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에도 같은 사유로 신청을 반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상대상 자격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반려되는 사례도 있다. 보훈처에서 정한 자격요건에 의하면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도 그 기간이 6개월 이상이거나 수형기간이 3개월 이상 되는 자만 포상 대상이 된다.
대표적 사례가 안창호 선생의 조카 안맥결(1901~1976) 여사다. 안 여사는 서울 여자경찰서장을 지내고 3·1 운동에 참여하여 임시정부 선전원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 활동을 하다 수양동호회 사건으로 체포됐다. 그는 1937년 6월부터 종로경찰서에서 만삭의 몸으로 고문을 받다 11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그 뒤 1개월 만에 가석방됐다. 그런데 보훈처는 안 여사의 수형기간이 3개월 미만이라는 이유로 포상 신청을 반려했다. 이 사건이 보도되고 시민들이 반발하고 나서야 보훈처는 올 4월 서둘러 포상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늑장 대응을 펼쳤다.
정운현(상지대학교 초빙교수)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가짜 독립유공자가 어림잡아 100명은 된다. 보훈처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독립유공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보훈처의 투명한 심사 및 관리감독을 촉구했다.
한편, 보훈처 관계자는 “보훈처 자체적으로 독립운동가 발굴 조사를 하고 있으며 ’친일인명사전‘을 바탕으로 가짜 독립유공자를 색출하는데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최희주 인턴기자 perrier08@ilyo.co.kr
가짜 독립유공 서훈? 동명인 활용하거나 소설쓰거나 독립유공자 포상제도는 1962년 박정희 정부부터 제도화됐다. 이후 1990년대부터 서훈을 받은 유공자 중에 가짜가 많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광복 20년, 6·25 전쟁 10년 후에서야 비로소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 제도가 이루어지면서, 독립운동 입증 자료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서훈을 받은 자 중에 가짜 유공자가 많을 것이라는 의혹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 10년 간 서훈이 취소된 자만 39명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제도 시작 당시부터 계산하면 가짜 유공자 수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는 사례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로 동명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중복 포상을 받거나 진짜의 행세를 하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아예 있지도 않은 허위공적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김정수 일가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이용해 3대에 걸쳐 총 5명이 진짜 행세를 해왔다. 동명인이 진짜를 사칭해 대신 보훈을 받은 사례는 김정수 일가의 김진성과 ‘대전’ 김태원이 ‘평북’ 김태원으로 둔갑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진짜 김진성의 후손이 중국에서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가짜 김진성의 유족이 대신 연금과 혜택을 받아갔던 사례다. 대전의 김태원은 진짜 독립운동가인 평북 출신의 김태원의 공적을 가로채 진짜 행세를 하다가 탄로나 2015년 서훈이 취소됐다. 한편, 허위공적은 광복회 본회나 지부 간부들이 무연고 독립운동가 정보를 빼내어 가짜 독립유공자를 만드는 브로커에 의해 만들어진다. 2015년 자신의 증조부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며 양심고백을 한 김정필의 후손은 “당숙어르신이 허위 서류를 만들어 1968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이후 서훈을 받아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되었다”고 양심고백 한 바 있다. 김정수의 후손은 김정수가 독립운동 당시 김정범이라는 가명을 썼다며 진짜 김정범의 공훈을 가로챈 경우다.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은 마땅히 정부의 역할임에도 정작 일반 시민들을 주축으로 가짜 유공자가 밝혀지고 있어 보훈처의 ‘손 놓은 행정’에 비판 여론이 잇따르고 있다. [주] |
가짜 독립유공의 실체3-‘인터뷰’ 양심고백으로 귀감...70대 김 아무개 씨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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