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조직강화특별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태 사무총장, 김 비대위원장, 전원책 변호사, 강성주 전 MBC 보도국 국장. 박은숙 기자
“유승민을 주목하라.” 정치권이 지목한 보수대통합 핵심 인사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다. 신보수의 최대 주주격인 유 의원의 선도탈당 여부는 보수대통합의 빗장을 열 분수령으로 꼽힌다. 그에게는 구보수에 없는 개혁적 이미지 등이 있다. 유 의원 합류 여부가 보수 재편의 신호탄으로 불리는 이유다.
판은 만들어졌다.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연일 바른미래당과의 통합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김병준 혁신비대위원장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와 외교·안보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인 전원책 변호사도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문제는 권한 밖의 일이지만, 보수통합이 대세”라고 가세했다. 한국당은 당명과 지도체제 등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연일 구애의 손길을 바른미래당에 뻗고 있다.
명분도 장착했다. 21대 총선 전 ‘보수 단일대오’ 형성이다.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에 사로잡혔던 10여 년의 구태를 끊어내고 혁신 보수로 재탄생하자는 것이다. 보수의 맹주 싸움이 아닌 ‘보수 vs 진보’의 진검승부라면, 해볼 만하다는 게 보수진영 인사들의 인식이다.
하지만 유 의원 등 개혁적 인사의 합류 없는 보수 정계개편은 ‘도로 한국당’, ‘도로 새누리’에 불과하다. 그만큼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인사의 합류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유승민 탈당’ 전망에 대해 “바른미래당은 보수대통합을 이룰 가장 좋은 동력”이라며 “유 의원도 결국 탈당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 의원이 물꼬를 튼다면,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까지 껴안는 보수대통합 구상도 빨라질 수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한국당 복당파 최대 주주인 김무성 의원과 안 전 대표의 전략적 제휴설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갈 길은 구만리다. 우선 ‘한국당의 인적 청산’이란 거대한 산과 맞닥뜨린다.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친박계 등 구태 정치인을 도려낼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인적 청산 없는 좌표 설정은 공허한 메아리다. 칼자루를 쥔 한국당 혁신비대위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에 그친다면, 유 의원 등을 비롯한 바른정당계 의원들의 선도탈당은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친박이니, 친홍(친홍준표)이니, 하는 기존 구조에선 유 의원이 당권 투쟁을 통해 실권을 잡을 실익도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소위 친박이란 폭탄을 제거하지 못한 한국당에 유 의원이 들어가더라도 권력투쟁을 통해 당권을 잡을 수 있겠느냐”라며 “한국당 혁신위가 보수대통합을 꾀하려면, 최소한 ‘공정한 룰’의 게임이 작동하는 당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보수대통합이 21대 총선 직전까지 ‘선 한국당 인적청산→후 통합작업’의 단추를 끼우는 단계적 정계개편 양상을 띨 것으로 보는 이유다.
범위도 문제다. 한국당 내 일각에선 보수대통합을 넘어 야권 단일대오를 노리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실질적인 여야 일대일 구도다. 한국당 중진 의원은 “보수대통합에 한정하면, 바른미래당과의 보수 적자 경쟁에서 상처만 받는다”며 “이참에 야권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외부 인사를 포함하는 야권 빅텐트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문제는 이 경우 친박 인적 청산이 반쪽짜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김병준 혁신비대위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합류를 원하고 있다.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 때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황 전 총리는 한국당 당권 도전 등 정계 입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등도 보수대통합의 핵심 인사로 꼽힌다. 최근엔 대한애국당 대표인 조원진 의원에게도 러브콜을 보냈다. 박시영 윈지코리아 부대표는 “황 전 총리가 한국당에 가장 먼저 들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경우 유 의원을 필두로 한 신보수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황교안과 유승민’의 간극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정권에서 주군(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갈등으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장수가 손을 맞잡을 가능성은 여전히 작다. 한국당 각 계파도 동상이몽이다. 한국당 내 친박계의 플랜 A는 ‘황교안 옹립’이다. 황 전 총리가 한국당 당권 도전을 고사할 경우 유기준·정우택 의원과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이 친박계의 플랜 B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박계는 전원책발 인적쇄신 대상 1순위다. 전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끝장 토론’을 요구한 상태다. 앞서 한국당은 홍준표 체제 당시에도 유기준 의원 등 친박계를 포함한 당협위원장 62명의 지위를 박탈한 바 있다. 박성중 한국당 의원은 “황 전 총리도 계파 대표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는 유승민과 안철수, 손학규 등을 포함하는 빅텐트에 더 많이 동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고민은 친박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친홍계 역시 인적쇄신에서 자유롭지 않다. 친박계와 친홍계가 전원책 단두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에 홍 전 대표는 10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홍준표 제명설’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 등을 받는 의원들도 초긴장 상태다. 물갈이를 단행할 명분이 존재해서다. 현재 권성동 의원을 비롯해 김재원 엄용수 염동열 원유철 이군현 이완영 이우현 이현재 최경환 홍문종 홍일표 황영철(가나다순) 의원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10월 1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바른미래당과 통합하자는 것은 막말로 웃기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에서 (한국당으로) 꼭 가야 할 사람 있으면 가라”고 직격했다. 손 대표는 다음 날에도 ‘조원진 러브콜’을 겨냥해 “한국당이 태극기 부대까지 통합하는 수구 세 불리기에 급급하다”고 힐난했다. 손 대표는 최근 측근들에게 “지금은 정계개편보다는 정치개혁, 양당제보다는 다당제 연합정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고위원인 하태경 의원도 한국당의 보수대통합 작업에 대해 “바른미래당 의원들을 만나겠다고 하는 것은 공작정치”라고 꼬집었다.
연말 정계개편은 보수대통합에 국한하지 않는다. 민주평화당 김경진·이용주 의원의 탈당 여부도 정계개편의 변수다. 이들의 탈당설을 놓고 ‘몸값 높이기’, 당 대표인 ‘정동영에 대한 반기’ 등 갖은 해석이 난무하지만, 실상은 21대 총선을 앞둔 초선 의원의 ‘생존 투쟁’에 가깝다. 현 민주평화당 간판으로는 차기 총선에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이 의원은 “12월 전에 탈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도 탈당에는 선을 그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도 “지금 국면에서 탈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다만 공직선거법 개정과 정계개편의 방향 등에 따라 후속 탈당 가능성은 열어 놨다.
하지만 민주당 한 관계자는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관계자들도 “외교나 민생 등 갈 길이 바쁘다”라고 선을 그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평화당 초선 의원의 입당 여부를 논의하는 순간, 당은 내홍에 휩싸일 것”이라며 “정계개편 등이 난무하지만 결국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흐름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권은 당분간 외부 정계개편보다는 내부 역학구도를 둘러싼 눈치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수비가 최선의 공격’이라는 기조 아래 친노(친노무현)계와 친문(친문재인)계가 ‘전략적 휴전’을 통해 대야 공세를 막아내겠지만, 물밑에선 치열한 힘겨루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 평론가는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라는 큰 산과 기둥이 여권 지지대를 형성한 상황”이라며 “당분간 전략적 관계가 이어지겠지만, 차기 공천권 싸움이 본격화하면, 양측의 경쟁 내지 분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지상 언론인
‘채이배·하태경 개인기로 난국 돌파’ 손학규호 고군분투 의원들 누구 바른미래당의 존재감에 경고등이 켜졌다. ‘골드보이’를 외쳤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거대 양당을 깨트릴 승부수도 위상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담론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손학규호의 현주소는 올드보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 지지율은 답보 상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10월 8∼12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2004명을 대상으로 한 10월 2주차 정례조사에서 바른미래당의 정당 지지율은 6.1%로, 정의당(9.5%)보다도 낮았다. 더불어민주당(44.8%)·자유한국당(19.3%)과 비교하면, 각각 7분의 1과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은 손학규호가 출범한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5.4∼7.5% 수준에 머물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구심력 부재는 손학규호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바른미래당은 한동안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을 놓고 계파 간 갈등으로 극심한 소모전을 벌였다. 손 대표는 “당이 하나가 될 방법을 고민하자”고 했지만, 당 내부에선 “당론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당 수혜를 입지 못하는 소속 의원들은 자신의 개인기를 앞세워 정국을 돌파하고 있다. 대표 비서실장과 당 최고위원인 채이배·하태경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책통인 채 의원은 2018년 국정감사에서 국정농단 주연 최순실 씨의 ‘황제 수감생활’을 폭로하는 등 뛰어난 활약으로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은 다르지만, 채 의원의 정책에 대한 열의는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 당 주변으로부터 9·2 전당대회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정책개발에 매진하고 싶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의원(해운대갑)은 바른미래당 내 유일한 부산·경남(PK) 재선 의원이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보수로 전향한 하 의원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쓴소리하기로 유명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땐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활약하면서 누리꾼으로부터 ‘하태핫태’ 별칭을 얻었다. 또한 예술·체육 분야의 무분별한 병역특례를 파헤치는가 하면, 청와대 업무추진비 국면에서도 대여공세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러면서도 남북정상회담 성과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여의도 한 관계자는 “바른미래당 지지율을 회복하지 않는 한 개별 의원들의 각개약진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