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답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교통공사는 서울시 산하 공기업으로 지난해 5월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가 통합해 출범했다. 정규직이 되면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교통공사는 2017년 기준으로 평균연봉이 6800만 원이다. 올해 교통공사 정규직 공채 경쟁률은 66 대 1이었다.
교통공사는 지난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외주 업체 직원(당시 만 19세)이 사망한 구의역 사고 이후 자회사에 위탁했던 안전업무 등을 직영으로 전환해 무기계약직을 대거 채용했다. 구의역 사고는 단순 개인 과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열악한 작업 환경과 관리 소홀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교통공사에서는 ‘이번에 무기직으로 들어오면 곧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노조에서 가족의 입사를 독려하고 다녔다는 내부증언이 나왔다.
실제로 교통공사가 유민봉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정규직 전환자 친인척 재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1일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285명 중 108명(약 8.4%)이 교통공사 직원의 친인척으로 밝혀졌다.
교통공사가 제출한 자료를 살펴보면 직원 자녀(31명), 형제·남매(22명), 3촌(15명), 배우자(12명), 4촌(12명), 부모(6명), 형수·제수·매부 등 2촌(6명), 5촌(2명), 며느리(1명), 6촌(1명) 순이었다.
한편 교통공사는 지난 3월 1만 7084명 전 직원을 대상으로 친인척 재직 여부를 조사했는데 응답률은 11.2%(1680명)에 그쳤다. 교통공사 노조는 가족 재직 현황 조사 기간인 지난 3월 19일 “공사의 (조사) 지시는 개인의 신상 정보에 대한 마구잡이식 조사에 다를 바 없는 상식 밖의 행태”라며 “현장에서는 가족 재직 현황 제출을 전면 거부해주시기 바란다”는 통지문을 발송해 조사를 방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당은 “11.2%만 조사에 응했는데도 108명이 친인척으로 밝혀졌는데, 만약 100% 다 조사했다면 친인척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교통공사에서 정규직 전환 과정을 총괄한 인사처장의 아내도 식당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실이 밝혀졌다. 교통공사가 제출한 명단에는 최초 인사처장의 아내가 빠져있었다. 교통공사 측은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고의로 명단에서 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인사처장을 직위해제하고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논란이 커지자 교통공사 측은 “응답률이 11.2%가 아니라 전 직원 1만 7084명 중 사내에 친인척이 있다고 응답한 직원 비율이 11.2%였다. 응답률은 99.8%였다”면서 “이 사실을 의원실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한국당 측은 “노조가 조사에 응하지 말라는 통지문까지 내려보냈고, 강제 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직원 99.8%가 응답을 했겠느냐”며 교통공사 측의 해명을 믿을 수 없다고 맞섰다.
교통공사 직원들도 게시판에 글을 올려 사측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직원은 “응답률이 99.8%라는데 저는 조사를 했다는 사실도 몰랐다”면서 “저뿐만 아니라 조사를 실시했는지 모르는 직원들이 태반”이라고 주장했다.
교통공사 측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문제다. 사내에 친인척이 있다고 응답한 직원 비율은 11.2%로 1912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한 회사에 2000명 가까운 직원이 사내 친인척이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교통공사 측은 사내 친인척이 많다고 해서 채용 비리가 있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교통공사 노조도 입장문을 통해 정규직 전환 직원 중 정규직원 친인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채용비리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 측은 입장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옳은 정책으로 앞으로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면서 “정규직 전환 과정 중 비리가 있다면 수사를 통해 밝히면 된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국정감사에서 “비리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면서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해서 채용 비리 증거가 나오면 고발할 것은 고발하고 확실하게 시정하겠다”고 했다.
한국당 측은 안전업무와 관련 없는 인원이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용태 한국당 사무총장은 “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을 보면 안전하고 아무 관련 없는 업무들이 대거 포함됐고, 정작 중요한 안전업무에서는 관련 자격이 없는 무자격자들이 대거 합격했다”면서 “전체 1235명의 전환자 중 1012명이 안전하고 관련 없는 일반업무직이다. 안전업무직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관련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교통공사 측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아예 안전관련 자격증을 심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총장에 따르면 2016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분야 무기계약직으로 공사에 입사해 스크린도어 업무직협의체 결성을 주도한 임직원 2명은 옛 통합진보당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민봉 한국당 의원은 “식당 찬모나 미용사, 청원경찰, 운전기사 등 일반 업무직까지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됐다”며 “이들의 연봉이 6000여 만 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지난 7월 실시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시험에서는 응시한 233명 중 218명이 합격해 합격률이 93.6%였다. 노사 합의로 직무교육도 실시하지 않았다”면서 “정규직 채용보다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이 얼마나 특혜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교통공사 노조는 정규직 전환 시험에서 100% 합격을 요구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노조 입장에서는 탈락자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맞다”고 해명했다.
야당은 이번 사건은 관리 책임이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신종비리가 가능했던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무차별적인 정규직 전환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김용태 한국당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을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 민주노총이 관여한 권력형 채용비리 게이트’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부작용 ‘노노갈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노노갈등으로 번지면서 공공기관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작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달성하겠다며 “연중 9개월 이상,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정부의 전환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들은 우선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 짓고, 파견·용역의 경우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으로 흡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부 공공기관 노조가 자회사 설립 대신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측과 기존 직원들은 직접고용을 하면 재정적 부담이 커져 전체적인 근로조건이 나빠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또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정부산하기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관에선 ‘계약을 연장해주고 싶지만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를 외치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 |
서울교통공사 사태, 공공기관 전반으로 ‘불똥’ 강원랜드 친족비율 26% “사내 결혼이 많아서…”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이 공공기관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당은 10월 19일 ‘국가기관 채용비리 국민제보센터’를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 및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친인척 채용비리를 제보 받겠다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고용세습의 통로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입사가 상대적으로 쉬운 무기계약직으로 친인척을 입사시킨 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수법을 쓴 공공기관이 국정감사에서 여러 곳 확인됐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도 공공기관 전반의 채용비리를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 모임 대표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취업준비생, 대학생에게 굉장한 고통을 주고 사회를 불신하게 할 것”이라며 “유사한 형식의 취업비리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실제로 김석기 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는 지난해 말 228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이가운데 19명이 친인척으로 확인됐다. 이중 15명이 직원의 자녀이고 나머지는 형제, 배우자 등으로 나타났다. 박완수 한국당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약속 이후 협력업체 6곳에서 14건의 친인척 채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따르면 소공인 특화 지원센터 일부 지역 사업을 담당하는 소상공인 단체 회장 A 씨가 딸인 B 씨를 중간 관리자로 채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B 씨는 입사 4개월 만에 센터장으로 승진했지만 이후 정부 채용 비리 조사가 이뤄지자 자진 사퇴했다. 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실에 따르면 공기업인 강원랜드의 경우는 임직원 4명 중 1명이 친인척 관계로 드러났다. 강원랜드 측은 주민 우선 채용 방식이라서 친인척 비율이 높고, 강원도 근무라는 지리적 국한성 때문에 사내 결혼이 많아 친족 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조 의원은 “강원랜드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회사 내 친족 비율 26%는 너무 높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