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로드숍 브랜드 스킨푸드가 심각한 경영난에 처했다. 사진은 명동 거리. 사진=박혜리 기자
10월 8일 스킨푸드는 ‘현금 유동성 대비 과도한 채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업계에 따르면 스킨푸드는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 20억 원과 은행에서 빌린 29억 원의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11일 만인 10월 19일, 스킨푸드는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 받았다. 스킨푸드는 “법원이 회생절차 내에서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사업계속을 위한 포괄허가’ 제도를 통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할 예정”이라며 “공정한 절차를 위해서 다음 주초 채권자협의회의 추천을 받아 CRO를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본사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직영점이다. 10월 9일 스킨푸드 직영점 40여 곳에 소속된 직원 181명은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스킨푸드 직영점은 현재까지 임시휴업 중이다. 다만 점주가 직접 직원을 채용하는 가맹점의 경우 대부분 정상 운영되고 있으며 직원들이 받은 직접적인 불이익은 없다.
스킨푸드 관계자는 “협력업체를 통해 고용된 직영점 직원 181명이 권고사직 된 것은 맞다”며 “인력파견 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현재 기업회생 절차를 진행 중이고 보전처분이 내려져 있으니 법원에서 지침이 정해지면 최대한 신속히 대응하겠다. 그 이상으로는 확답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맹점 역시 영업에 심각한 차질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스킨푸드는 제품 대부분을 자회사인 ‘아이피어리스’에서 생산하는데 본사의 자금난으로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아 제품 수급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16일 기자가 명동에 있는 스킨푸드 가맹점 2곳을 방문해보니 상당수의 매대가 비어 있었다. 손님이 북적거리는 인근 로드샵 브랜드와 달리 한눈에 봐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한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스킨푸드 점포는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직원이 보이지 않았고 ‘구매를 원하면 마트 계산대에서 계산해 달라’는 내용의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스킨푸드 가맹점주들은 제품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한다. 사진은 한 대형마트 내 스킨푸드 매대. 사진=박혜리 기자
명동에 있는 한 스킨푸드 지점 가맹점주는 “한 달 전부터 제품 수급이 잘 안 되고 있다. 본사로부터 곧 물건 수급이 정상화 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명동지점 관계자는 “물건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지 반년 정도 됐으니 당연히 타격이 크다”며 “명동 특성상 외국인들이 많고 그들이 찾는 히트상품이 정해져 있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수급이 안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스킨푸드는 주요 상품에 대해 선입금을 받고 공급하는 방식으로 제품 수급을 정상화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전 제품의 수급이 정상화되는 시점에 대해 본사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 어떠한 확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아이피어리스 공장용지는 현재 가압류가 들어온 상태다. 공장 관계자는 “지금은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지 못하다”고 상황을 전했다.
대형마트 관계자에 따르면 대형마트에 입점한 일부 스킨푸드의 가맹점주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자체적으로 영업을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형마트에 입점한 전 직영점은 다른 직영점과 마찬가지로 영업 중단 상태다. 스킨푸드 본사는 기업회생절차 신청 직전 대형마트에 미팅을 신청해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스킨푸드 본사에서 기업회생 신청 직전 미팅을 요청하며 해외 점포를 정리하면 그 비용으로 회생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해왔다. 아직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가맹점주 대부분은 영업을 중단하면 본인 손해고 재고도 있다 보니 영업을 하고 있지만 공황 상태에 빠져 임시로 문을 닫은 경우도 있다. 아직 폐업을 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원한다 하더라도 본사와의 계약, 홈플러스와의 임대차 계약이 남아 있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스킨푸드 경영난의 주된 원인으로 중국 사드 보복으로 인한 K-뷰티 시장의 침체를 꼽는다. 또 스킨푸드가 고집해 온 노세일 정책, 중국·미국 법인의 자본잠식, 온라인 마케팅의 부진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한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한 브랜드 제품만을 판매하는 로드숍 브랜드가 전반적으로 침체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여러 브랜드의 히트 상품만 모아 판매하는 H&B 스토어는 매년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며 “또 최근 일본 ‘시세이도’처럼 상당히 발전한 기술력을 앞세운 기업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점도 K-뷰티의 위기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중국 정부의 따이공(보따리상) 규제 방침, 사드 여파 등으로 화장품 대기업들이 온라인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있지만, 스킨푸드는 이런 변화 추세를 빠르게 따라가지 못했다”며 “2000년대 초 로드숍 진출을 결정하지 않은 유명 화장품 브랜드 대부분이 현재 문을 닫았듯 시장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따이공이 규제되었을 때의 상황을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앞으로 로드숍 브랜드의 생존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