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열기를 그대로 이은 축구대표팀의 선전에는 벤투 감독의 지도력도 한몫한다. 일명 벤투 사단이 보이는 축구의 색깔과 철학이 선수들에게 녹아들면서 시종 공격적인 플레이로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은 박문성 SBS 해설위원과 한준 SPOTV 축구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시안컵을 준비하는 벤투호와 그 과정을 짚어봤다.
파울루 벤투 감독. 고성준 기자
벤투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이끌면서 가장 크게 신경 쓴 부분은 후방 빌드업이다. 후방에서 확률이 떨어지는 롱킥을 지양하고 골키퍼에서 센터백,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를 거쳐 전방으로 전진하는 과정을 강조했고 중시했다. 물론 상대의 강한 압박으로 인해 잦은 실수가 나온 적도 있지만 벤투 감독은 칠레, 우루과이 같은 수준 높은 팀을 상대로 변함없이 자신의 축구 철학을 그라운드에서 펼쳐냈다.
박문성 해설위원도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벤투 감독의 축구는 공격하다가 수비로, 수비하다가 공격하는 전환이 굉장히 빠르게 이뤄진다. 후방 빌드업을 위해 골키퍼나 수비수들의 롱킥을 자제시키고 뒤에서부터 철저히 만들어서 올라가는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볼 소유를, 신태용 감독이 원터치를 중시했다면 벤투 감독은 전체적인 라인을 끌어올려 공격적인 축구를 하는 게 특징이다. 무엇보다 강팀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팀 색깔에 변화를 주지 않고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를 선보인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SPOTV 한준 축구 팀장은 “벤투 감독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추구하는 부분을 결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후방 빌드업을 추구했던 감독이 있었다. 한국 특유의 스피드를 살려 짧은 패스 축구를 지향했던 지도자도 많았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자신이 바라는 축구를 분석과 훈련을 통해 결과로 만들어낼 줄 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가 혼자가 아닌 팀으로 왔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출신인 4명의 코치들(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 필리페 코엘류 코치, 비토르 실베스트레 골키퍼 코치, 페드로 페레이라 피지컬 코치)이 감독과 절묘한 호흡을 보이고 있다. 벤투 감독은 세계적인 명장이 아니다. 그의 코치들도 세계적인 스페셜리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 이후 경쟁력 있는 ‘사단’이 대표팀을 이끌면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있다.”
한 팀장은 벤투 감독의 훈련 스타일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이전의 감독들은 후방 빌드업을 강조하면서도 한국 선수들의 실력 부족을 탓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훈련할 때 선을 그어놓고 간격을 좁히면서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공을 패스하고 바로 압박하게 하는 등 다양한 전술 훈련들이 대표팀의 짧은 소집 기간에 이뤄지고 결과로 나타난다. 쓸데없이 공을 걷어 내는 등의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벤투 감독은 어떤 특정 방식이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끄집어내는 능력이 있다.”
벤투호는 오는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출전을 앞두고 있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선수 명단. 그러나 벤투 감독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안컵 관련해 선수 구상을 이미 마무리했다는 뉘앙스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9월부터 소집된 선수들이 11월에도 계속 합류할 것이다. 그 선수들이 아시안컵까지 주를 이룬다”고 밝혔다. 축구대표팀은 오는 11월 17일 호주와, 11월 20일 우즈베키스탄과 호주 원정 A매치를 갖는다. 아시안컵을 앞둔 마지막 A매치인 셈이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아시안컵에서 뛰게 될 선수들은 벤투 감독이 뽑은 선수들 명단을 보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일부 포지션에는 변화를 두겠지만 손흥민,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주축 멤버들은 거의 변함이 없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주전 골키퍼가 궁금해지는데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후방 빌드업을 고려할 때 어느 골키퍼의 발끝이 더 좋은지를 살펴보면 답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즉 벤투 감독은 대표팀의 뼈대를 ‘손흥민(토트넘)-기성용(뉴캐슬)-김영권(광저우 헝다)-장현수(FC도쿄)로 구축했다. 이들은 아시안컵에 나설 벤투호의 핵심 멤버들이다. 단 골키퍼 3명이 계속 경쟁 중이다. 벤투 감독 체제에서 골키퍼는 김승규(고베), 김진현(오사카), 조현우(대구)가 인연을 맺었다. 김승규가 두 경기(코스타리카전 2-0승, 우루과이 2-1승), 김진현이 한 경기(칠레전 0-0), 조현우가 한 경기(파나마전 2-2)에 나섰다. 후방 빌드업을 위해선 안정적으로 발을 쓸 수 있는 골키퍼가 각광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누가 더 뛰어난 발로 공격을 풀어가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축구대표팀 막내인 ‘뽀시래기’ 이승우(베로나)는 아시안컵에 승선할 수 있을까. 이승우는 벤투호의 4경기 A매치에 소집됐지만 정작 경기를 뛴 건 9월 코스타리카전 교체 출전 7분이 전부였다. 이로 인해 이승우를 향해 ‘마케팅용’ 아니냐는 비난도 뒤따른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이승우가 뛰는 포지션에 좋은 선수가 많기 때문에 이승우를 출전시킬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을 비롯해 이재성, 문선민, 황희찬, 황인범 등이 활약하고 있고 부상으로 잠시 빠져 있는 권창훈, 지동원, 구자철까지 떠올린다면 이승우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준 팀장도 이승우의 아시안컵 발탁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이승우는 분명 축구의 타고난 감각이나 저돌적이고 창의적인 플레이가 뛰어난 선수다. 문제는 같은 포지션에 뛰어난 실력의 후보군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벤투 감독 말대로 이승우가 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선수가 더 좋아서 그를 출전시킬 수 없는 것이다. 장단점이 명확한 이승우로선 좀 더 시간을 갖고 준비하고 보완하면서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벤투 감독은 선수들과의 개별 면담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면담이 선수의 몸상태를 확인하는 차원이 아닌 담당 코치들이 분석한 영상과 자료를 갖고 경기 플레이에 대해 세밀한 코칭이 들어간다. 이미 A매치 4경기에서 흡족한 결과를 안아든 선수들로선 시간이 갈수록 벤투 감독과 그 사단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시안컵에서 벤투호는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