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는 1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18 KBO 준PO 1차전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8회말 무사 1루, 최재훈의 큼지막한 타구를 펜스 바로 앞에서 높이 뛰어올라 잡아냈다.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한화의 추격은 무산됐고 넥센은 3-2로 1차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한화 한용덕 감독도 경기 후 이정후의 수비를 두고 “가장 아쉬운 장면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프로 입단 후 생애 첫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있는 이정후.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공수에서 강단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야구 천재’ 이정후 스토리다.
19일 열린 한화 대 넥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이정후의 수비 모습. 이날 이정후는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연합뉴스
“원래는 골프를 시키려 했었다. 정후가 오른손잡이라 야구 선수로서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골프 스윙을 하고 나면 자꾸 앞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그때 깨달았다. 정후한테는 야구가 운명이라는 사실을.”
이종범 MBC스포츠해설위원은 사석에서 만난 기자에게 아들이 야구하는 걸 끝까지 반대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1학년서부터 골프, 축구, 수영, 쇼트트랙 등을 시켰지만 야구 방망이만은 못 잡게 했다. 그러다 이종범이 스프링캠프를 떠난 이후 어머니 정연희 씨의 손을 잡고 야구부 테스트를 보러 갔던 이정후. 나중에서야 아들의 간절함을 알게 된 이종범 위원은 오른손잡이인 아들에게 좌타자가 되라고 권유했다. 좌타자가 되지 못하면 야구를 안 시킬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그때부터 방망이를 왼손에 쥐고 타격연습을 시작했다. 이정후는 2개월 만에 왼손 타자로 탈바꿈했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이정후는 ‘이종범의 아들’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상황에서도 출신 성분으로 인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이정후는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는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러웠지만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가급적 부담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잘해도 욕먹었고, 못하면 더 욕먹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그냥 이정후’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내가 욕먹는 건 두렵지 않았다. 내가 못하면 아빠가 욕먹는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2017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1차 지명을 받은 이정후. 넥센과 인연을 맺은 건 오히려 행운으로 작용했다. 유망주를 성장시키는 데 관심을 쏟는 팀 분위기가 이정후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고교 시절까지 내야수로 뛰었던 이정후는 넥센 입단 후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이정후는 2017시즌 신인 선수로는 역대 최초로 전 경기(144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144경기에 나와 타율 3할2푼4리(552타수 179안타) 2홈런 47타점 12도루 111득점을 기록하며 최다 안타와 득점 부문에서 KBO리그 전체 3위를 차지했다. 당연히 신인왕은 이정후의 차지였다.
이정후는 올 시즌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긴 했어도 여전히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것은 물론 정규리그 109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5푼5리(3위), 출루율 4할1푼2리(6위)를 유지하며 최상의 경기력을 뽐냈다.
이정후는 생애 첫 ‘가을야구’를 앞두고 아버지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큰 무대에선 위축되지 않고 심장이 큰 사람이 이긴다. 무조건 자신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메시지 때문인지 이정후는 KIA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4타수 1안타 1타점 2득점을 기록했고 엄청난 호수비를 펼치며 넥센의 10-6 승리를 이끌었다. 아버지의 친정팀인 KIA의 반격을 저지한 완벽한 포스트시즌 데뷔전을 치른 셈이다.
이정후는 한화와의 준PO도 즐기는 중이다. 아버지의 메시지처럼 부담을 갖기보다는 큰 경기일수록 즐겨야 이긴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들의 성장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이종범 위원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전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정후는 ‘이종범 아들’이란 꼬리표를 뗀 것 같은데 대신 내가 ‘이정후 아버지’란 수식어를 달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수식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포스트시즌보다 더 긴박했던 단장 사퇴-감독 선임 롯데 신임 감독으로 선임된 양상문 전 LG 단장. 롯데가 발표도 안 된 양 단장의 사임 소식을 어떻게 알았을까. 사전 교감이 있지 않고선 이렇게 빠른 일처리가 가능한 걸까. 롯데 측은 기자들의 질문에 “공교롭게 일이 그렇게 됐을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양상문 감독은) 오래 전부터 복수의 야구인과 함께 감독 후보군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구계의 한 관계자는 “사전 교감 없이 감독 선임이 24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즉 롯데가 사전에 양 감독의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에 LG 단장을 그만두자마자 곧바로 감독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는 것. 그는 “양 감독이 LG에는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단장직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지만 롯데 감독직 제안이 왔기 때문에 LG를 떠나려 했을 수도 있다”라고 해석했다. 과정이 어떠하든 롯데는 2010년 이후 계약 기간을 채운 감독이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이후 사령탑에 오른 양승호 감독은 3년 계약 중 2년 계약만 채우고 물러났고 김시진 감독도 3년 계약 중 2년 만에 팀을 떠나야만 했다. 이종운 감독은 1년 만에 경질당했고 2017시즌을 마치고 롯데와 3년 재계약을 맺었던 조원우 감독도 1년 만에 옷을 벗어야 했다. 양 감독의 계약 기간은 2년(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 등 총 9억 원).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서 프로 감독 계약 기간은 별다른 의미도 약속도 아닌 숫자가 돼버렸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