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료재단이 제일병원을 활용해 재산을 편취, 비자금을 형성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일병원은 이건희 삼성 회장과 사촌지간인 고(故) 이동희 박사가 1963년에 설립한 국내 최초 여성전문 병원이다. 1996년 삼성그룹으로 편입돼 2005년까지 ‘삼성제일병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일병원은 1981년 의료법인으로 변경하면서, 비영리의료법인 제일의료재단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제일병원 설립자인 고 이동희 박사의 첫째 아들인 재곤 씨가 2005년 제일의료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병원 돈을 지속적으로 편취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이사장이 병원 증개축을 무리하게 진행하면서 공사비 등을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의혹이 다수 제기됐다. 현행법상 비영리의료법인인 의료재단은 사적 영리를 취해선 안 된다.
초우량했던 제일병원 재무구조는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악화됐다. 2006년 10억 원을 기록했던 당기순이익은 2016년 161억 원의 당기순손실로 전환됐고 총부채는 1180억 원으로 늘었다. 2016년 기준 부채비율은 400%를 훌쩍 넘었다. 이로 인해 제일병원은 올해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체불하면서 지난 6월 직원 총파업에 맞닥뜨려야만 했다. 현재는 간호 인력이 대거 이탈해 병동을 축소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병원 내부 관계자는 “여타 언론이나 외부에서 제일병원의 경영난 원인으로 저출산을 거론하는데 말도 안 된다. 그럼 모든 산부인과, 병원도 힘들어야 맞다”며 “재단의 각종 불법 비리행위가 병원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재곤 이사장 취임 후 제일의료재단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병원 증개축을 명목으로 금융권으로부터 대출 받은 금액만 총 1000억 원이 넘었다. 그 과정에선 석연치 않은 부분도 다수 관측됐다. 이 이사장이 가장 먼저 추진한 공사는 본관 병동 리모델링과 암센터 건립이다. 재무현황에 따르면 공사가 진행됐던 2007년부터 2009년 제일병원의 금융대출금이 700억 원가량 대폭 늘었다. 당시 제일의료재단이 대출 과정에서 병원 토지‧건물을 공동담보로 설정했다. 이때 이재곤 이사장은 이사회 결의 없이 독단으로 대출과 담보설정을 진행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사회 회의록이 확인되지 않거니와 재단 구성원에겐 해당 사실이 전혀 고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담보 건물의 소유권자인 ‘동삼기업’ 이사의 도장이, 담보설정을 허락하는 기업 이사회 회의록에 허위로 날인됐다는 정황이 나왔다. 당시 동삼기업 이사였던 이재순 씨는 “건물에 대한 담보 설정 여부를 논의하는 기업 이사회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도장을 찍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병원 내부에선 리모델링, 센터건립 비용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병원 직원 A 씨는 “리모델링 규모 등을 봤을 때 그 정도 공사대금이 들어갈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제일의료재단이 대출을 받던 당시 공동담보로 설정한 일부 토지 등기부등본. 해당 토지에 총 1000억 원이 넘는 근저당권이 설정됐다.
당시 병원 내부에선 악화된 재무 상황을 우려해 더 이상의 공사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컸다. 병원 직원 B 씨는 “주차장을 정말 지어야 한다면 저렴한 자주식 주차장을 지어도 될 일이었는데 재단은 큰돈을 들여 굳이 기계식으로 지었다”며 “현재 가동률은 60%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지난 모든 공사를 ‘트로스 디엔씨’라는 건설사가 도맡아 진행한 것도 의심스러운 점이다. 재단은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형식으로 트로스 디엔씨에 모든 공사 일감을 넘겼다. 트로스 디엔씨를 운영하는 C 씨는 이재곤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 알려진다. 앞서의 이재순 씨는 “C 씨는 이재곤 이사장과 취임 초기부터 원래 같이 술 마시고 함께했던 사람으로 서로 가까운 사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트로스 디엔씨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건설업 등록이 말소된 상태다.
재단은 올 초 ‘카이로스시티’와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시행사가 병원 토지를 매입해 신관건축을 다시 추진하는 내용의 계약이다. 계약서는 신관 건물 완공 기한을 포함하지 않았고 토지 주소가 틀리게 기재되는 등 엉망으로 작성됐다. 계약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이사회도 비밀리에 개최되면서 재단의 속내를 의심케 했다. 계약을 이행할 경우 병원은 공사비용으로 80억 원가량의 채무를 새롭게 져야 한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병원 상황이 악화되면서 현재 신관 건축은 보류된 상태”라고 말했다.
제일병원 노조는 지난 4월 이재곤 이사장을 배임·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경찰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김기영 방배경찰서 수사관은 “참고인 등을 불러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측 소송대리인 허윤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는 “이재곤 이사장의 이러한 행위는 통상적으로 재벌들이 부동산이나 예술작품을 통해 비자금을 형성하는 과정과 같다”며 “제일의료재단의 경우 리모델링, 건축 등으로 돈을 빼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원칙적으로 비영리법인 재단은 승계가 불가하며 설립자가 죽으면 사회나 정부가 운영하는 게 맞다. 더군다나 재단의 재산은 이사장 소유가 아닌데, 재단 건물을 대출담보로 잡는 행위는 명백한 횡령·배임이며 이는 판례로도 이미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이재곤 이사장은 “답변드릴 심정이 아니다. 죄송하다”라고만 하며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
자녀들에게 재산 물려주기 위해 건물 소유권 이원화했나 제일병원 설립자인 이동희 박사가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제일병원 일부 건물의 소유권을 자녀들이 운영하는 ‘동삼기업’으로 넘겼다는 정황이 나왔다. 제일병원 본관 건물의 반은 제일의료재단이 소유하고 있지만, 나머지 반은 동삼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것. 동삼기업은 부동산 개발업체다. 현재 동삼기업 대표이사는 이동희 박사의 셋째 아들인 이재훈 씨와 배다른 아들인 이재호 씨다. 첫째 아들인 이재곤 제일의료재단 이사장이 2007년 6월부터 2016년 4월까지 동삼기업 대표이사직을 도맡았다. 제일병원은 동삼기업에 매년 임대료를 내야 한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동삼기업에 임대료를 내는 것은 맞으나 그 금액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모른다”고 말했다. 결국 영리를 취해선 안 되는 의료재단의 이사장과 그 형제가 이러한 임대 구조를 통해 병원 돈을 편취해 온 셈이다.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병원재단 임원이 운영하는 기업에 병원이 부동산 임대료를 지급하는 건, 재벌 기업들이 흔히 행하는 일감 몰아주기나 내부거래의 일종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임대료 금액이 크다면 재단이 병원 수익을 빼돌리는 것이고, 작다면 반대로 병원이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