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허위조작정보는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진보진영 내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의 시민단체가 부작용을 우려하는 입장문을 연이어 발표한 것이다.
이강혁 민변 언론위원회 위원장은 “가짜뉴스인지 아닌지를 누가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법원이 그나마 가장 전문적인 기관인데 법원마저도 오판을 하지 않느냐”면서 “최근 가짜뉴스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크지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제도 도입을 해결책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여권은 허위조작 정보의 기준으로 네 가지(언론사 오보 인정, 법원 판결, 언론중재위원회 결정, 선거관리위원회 판단)를 제시했다. 가장 전문적인 법원의 판단도 틀릴 수가 있는데 언론중재위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으로 가짜뉴스를 판별한다면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가짜뉴스 처벌을 위한 별도 입법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 교수는 “현재 법으로도 가짜뉴스를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가짜뉴스 처벌은 시대착오적”이라며 “1986년 성고문 사건 당시 5공 정권은 ‘운동권 학생이 성을 도구로 해 공안기관을 무력화하는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성고문 사건을 보도했다면 가짜뉴스가 된다. 가짜뉴스를 방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위는 구글코리아를 직접 방문해 유튜브에 게시된 가짜뉴스 104건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구글 측은 “현재 진행되는 사건에 대한 진실은 파악되기가 종종 어렵다. 또한 언제나 옳거나 그르거나 이분법적이지 않다. 팩트 또한 증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면서 콘텐츠 삭제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뉴스특위가 구글에 제시한 가짜뉴스 목록에는 문재인 대통령 건강이상설, 문 대통령 아들 문준용 씨의 취업특혜 의혹, 5·18 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 대북 쌀 지원 때문에 쌀값이 폭등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이중 문준용 취업특혜 의혹의 경우 특혜라고 단정 지을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귀걸이를 한 이력서 사진 등 의혹을 제기할 만한 정황이나 주변 증언 등은 충분했다. 법무부는 근거 있는 의혹 제기는 가짜뉴스가 아니라고 했는데 법무부 측 입장과도 엇갈린다는 지적이다.
가짜뉴스특위는 삭제를 요청한 104건 전체 목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때문에 일각에선 전체 목록에 가짜뉴스로 볼 수 없는 콘텐츠가 대거 포함된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광온 의원실에 전체 목록 공개를 요청해봤지만 ‘전체 목록을 공개할 경우 해당 콘텐츠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목록 공개를 거부할 경우 오해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문준용 취업특혜 의혹을 가짜뉴스로 선정한 것에 대해 가짜뉴스특위 김빈 대변인은 “해당 의혹은 가짜뉴스가 맞다”고 못을 박았다. 과거 국민의당에서도 의혹제기를 강하게 했지만 오히려 증거조작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근거 있는 의혹 제기는 가짜뉴스가 아니라는) 법무부 입장과 엇갈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법무부에서 (취업특혜 의혹이)가짜뉴스라고 명확하게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여권 전체가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역시 가짜뉴스 37건을 삭제 및 차단 요청하거나 수사하고 있지만 전체 목록은 밝히지 않았다. 경찰이 일부 공개한 가짜뉴스 목록은 주로 여권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가짜뉴스 처벌 정책이 결국 여권 비판에 재갈 물리기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경찰은 북한 관련 가짜뉴스는 통일부 장관을 피해자로 상정하고 수사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라 피해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꼼수를 쓴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일례로 ‘김정은이 식량을 추가 지급한 육군 장교를 처형하라고 지시했다’는 가짜뉴스가 퍼졌는데 통일부 장관은 당사자도 아니고 이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자유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민주당은 툭하면 한국당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하는데 가짜뉴스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남용될 우려가 있다”며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크게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짜뉴스특위 위원장인 박광온 의원은 가짜정보 유통 방지법을 발의했는데 “법이 통과된다면 (콘텐츠 삭제를 거부한)구글도 당연히 처벌 대상이 된다”고 으름장을 놔 논란이 됐다. 기업에 대한 협박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박광온 의원은 가짜뉴스에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 전쟁 행위를 찬양·고무·선전한 경우’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왜곡·모욕’을 추가하기로 해 사학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처벌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사학과 명예교수는 “(역사에 대해)아무것도 모르는 정치인이 그런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면서 “역사는 객관적으로 봐야 하고 학문은 학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역사학자도 “국민정서에는 맞지 않겠지만 일제시대에 조선인구가 늘어나고 각종 경제지표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광온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에 해당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법안이 통과되어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학자들이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그런 콘텐츠를 게시하는 플랫폼 사업자를 처벌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가짜뉴스 처벌 정책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가짜뉴스특위를 허위조작정보대책특위로 바꾸고 학계, 시민사회, 언론 등이 참여하는 공론화 모델을 통해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