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립 유치원의 케묵은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칼을 뽑았다. 박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 교육 문제 앞에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느냐”라며 투쟁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요즘 얼마나 바쁘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국회의원이 되고난 뒤 가장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루에 열 몇 개씩의 언론 인터뷰를 하는 것도 새로운 일이고, 수천 건의 후원금이 들어오는 것도 신기한 일이고, 몇 만 개의 댓글이 달리는 것도 재밌다.”
―사건이 이 정도로 커질 줄 예상했나.
“손해를 감수하고 시작했다. 이걸 터뜨리고 나면 유치원 원장 또는 한유총으로부터 공격도 많이 받고 손해가 있을 것을 예상했다. ‘국감스타’와 같은 대박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이 특종을 어떻게 찾게 됐나.
“최순영 전 의원이 대표로 있는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에서 제보해줬다. 그곳에서 먼저 추적하고 있던 일들이고, 이를 저에게 전해줬고, 그 덕분에 제가 일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저 혼자한 일이 아니다. 보좌진들이 열심히 해줬다. 정치하는 엄마들, MBC와 언론들, 경기도시민감사관들의 생생한 사례들 덕분이다. 어떻게 저 혼자 했겠나.”
―지역구 반응은 어떤가.
“다들 잘했다고 말씀하시더라. 언론에서 반응이 크니 지역구 반응도 좋다. 훌륭하다는 칭찬이 많이 나오고 있다.”
―자녀들을 보면 사명감이 생길 것 같은데.
“중학교 1학년인 큰아들은 학교에 가니 선생님과 친구들이 ‘너희 아빠 뉴스에서 봤다. 훌륭한 분이시다’라고 말했다더라. 초등학교 5학년 재학 중인 작은 아들은 가족들과 함께 뉴스를 봤다. 게다가 작은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의 원장은 제 의원실에 와서 (비리 폭로를 막기 위해) 울기까지 하더라. 사명감? 아이가 있든 없든 국회의원이라면 상식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한유총의 반발이 거셀 텐데.
“‘니가 뭘 안다고 나서냐’ ‘다음엔 (총선 당선) 될 것 같냐’ 이런 협박들이 많이 오는데, 물론 예상했다. 주판 다 튕겨보고 손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시작했다. 소송이 들어온다던데…. 이것도 시작부터 각오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감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후원금 계좌에는 후원금이 쉴 새 없이 입금됐다. 고성준 기자
“인해전술이 제일 무섭다. 5000원, 만 원 보내며 ‘소액이라 미안하다’ ‘힘내라’ ‘누구누구 엄마’라는 메시지를 같이 보낸다. 이런 게 힘이다. 이걸 보면서 ‘국회의원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국민과 소통이 되고 공감을 이루는 게 국회의원 아니겠느냐. 옳은 역할을 했다고 칭찬과 함께 앞으로 마무리를 잘 하라는 격려다. 그래서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봄날이다.”
―교문위 국감 회의 때 보니, 박 의원은 마치 야당 의원인 것처럼 교육부를 향해 거칠게 질문을 던지더라.
“이 문제를 마무리할 때까지는 저는 집권야당이다. 국회의원에게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이 있다. 감사도 해야 한다. 장관과 대통령이 우리 당? 그건 중요하지 않다. 국회의원의 역할을 해야 한다.”
―큰 담론으로 넘어가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저는 교육문제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다. 정무위 소속일 때도 금융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런데 삼성의 차명계좌는 금융실명제를 어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부터 저의 아들들까지 3대 모두 당연히 군대에 가는데 어느 집은 빽과 돈으로 안 간다? 이건 상식의 문제다. 전문가로서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전에, 상식적인 선에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화하지 마라’는 한유총의 주장에 공감하는가.
“공감하지 못한다. 전체에서 약 20%를 감사해봤는데, 그 중의 91%에 비리가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일부’가 ‘전체’로 매도됐다고 하는데, 그 일부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나. 감사도 들쭉날쭉한데 제대로 감사하면 더 많이 드러날 것이다. 더 이상 억울하다고 할 얘기도 아니다. 세금 받고 사는 관공서들은 다들 그렇게 감사받고 사는 거니까.”
―명단 공개는 공익적 목적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내용이 형평성에서 어긋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는데. 어떤 유치원은 명품백을 사도 명단에 없고, 어떤 유치원은 학부모의 생년월일을 기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단에 포함된다.
“저는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 감사 결과를 공개한 것뿐이다. 이에 대한 잘잘못은 국민들이 보면 당연히 알 수 있다. 어디가 회계상의 가벼운 오류를 범했는지, 어디가 비리를 저질렀는지 국민들은 안다.”
―유치원과 교육부‧교육청, 굳이 더 잘못한 쪽을 고르자면?
“관리 감독해야 하는 교육당국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저는 국감 때 단 한 번도 유치원 원장들을 질타한 적이 없다. 오히려 교육부에 ‘왜 명단을 공개 안 했냐, 왜 봐줬냐, 왜 이렇게 했느냐’라고 다그쳤을 뿐이다. 유치원 원장들에게 누리예산은 돈벌이 수단이고 유치원은 장사다. 하지만 공무원 관료들은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하지 않았다. 분노는 교육부로 가야 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립유치원 비리’의 책임을 교육당국으로 돌렸다. 고성준 기자
―혹시 시도교육청과 유치원 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보는지.
“충남도 쪽이 의심스럽다. 감사를 135곳을 했는데 7건만 적발했다더라. 반면, 세종특별자치시는 3곳의 유치원을 감사했는데 11건이 적발됐다. 광주도 2016년에는 30곳을 감사하다가 2017년과 2018년엔 아예 하지도 않더라. 감사라는 것은 일관되고 일정 속도와 폭을 유지해야 형평성이 맞는데 왜 안 하는지. (감사가 부족했던 곳은) ‘진보’가 붙은 교육감이 있는 곳이다. 아이들 교육 문제 앞에서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냐. 상식 앞에서 보수 진보가 어디 있고, 여야가 어디 있냐.”
―박 의원의 ‘유치원 비리’ 공론화에 교육부는 어떤 입장인가. 혹시 박 의원이 선두에 나서서 고마워하는 상황인지.
“교육부는 호떡집에 불난 상태다. 나한테 감사해하고 눈치 볼 상황이 아니다. 그들이 일을 안 했으니….”
―일각에선 공립유치원을 확대시키자고 주장하는데,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될 수 있을까.
“공립유치원을 40%까지 늘리자는 것은 대통령의 공약이다. 유치원 비리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차근차근 계획해서 밀고 나가야 할 문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끝까지 갈 거다. 언론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국민의 관심과 응원이 없으면 시들해질 것이다. 이번에 끝을 못 보면 안 된다. 이번이 기회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가 바라본 박 의원의 휴대전화 액정 화면은 현란하게 빛났다. 후원금 모금 계좌에 후원금 입금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연이어 도착한 것이다. 입금 메시지는 1초에 1개씩 도착했고, ‘힘내세요’ ‘지지합니다’ 등의 응원 메시지도 같이 띄워졌다. 박 의원은 기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며 “후원 들어오는 거 봐요. 더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