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B금융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구은행장 자리는 벌써 7개월째 비어 있다. 박인규 전 DGB금융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채용 비리와 비자금 조성(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올해 봄 검찰에 구속되면서 공석이 됐고, 진통 끝에 후임자로 결정된 김경룡 은행장 내정자마저 7월 자진 사퇴했다. 박명흠 직무대행이 큰 잡음 없이 이끌고는 있지만, 그의 대행 임기도 두 달 뒤면 끝난다. 하지만 대구은행은 아직 후임자를 정하지 못한 상태다.
대구에 위치한 DGB금융그룹 본사 전경. 연합뉴스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회장과 은행장 등 후보에 대한 검증이 대폭 강화됐다. 회장은 임기만료 6개월 전부터 1년 전, 은행장 등 계열사 CEO의 경우 최소 3~6개월 전에 승계절차를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승계절차를 밟는 기간이 40여 일 정도로 충분히 검증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단 지적이 일었다.
일반적으로 CEO 선정 과정에서는 롱리스트(이사회 추천 및 공모 지원)를 추천받고 이들 중 ‘임원추천위원회’에서 1차로 걸러 숏리스트(최종후보군)를 확정한다. 이후 심층면접과 검증을 거쳐 최종 선임한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임원추천위원회의 원안이 이사회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
핵심 계열사인 대구은행장 선임에 대해서는 DGB금융지주의 ‘자회사 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가 선임권을 가지게 됐다. 물론 은행 이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DGB금융지주는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아 숏리스트를 확정하기로 했다. 평판조회 업체 외에도 여러 인사컨설팅 업체 등이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 등 지역사회의 참여도 예상된다. 이후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종합 검증을 도입해 최적화된 CEO를 선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CEO의 후보군이 자격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체계적인 경력개발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할 계획이다.
이에 DGB금융지주는 그룹 차원의 CEO 육성과 승계 프로그램 체계화를 위해 금융지주에서 직접 대구은행 등 계열사의 CEO 승계 과정을 통합 관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금까지는 대구은행과 DGB생명에 대해서만 지주사의 통제가 들어갔지만 앞으로는 모든 계열사에 적용된다.
사외이사 제도도 손을 본다. 모든 주주에게 사외이사 후보 추천의 기회를 제공하고 분야별로 사외이사 후보군을 별도 관리해 전문성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역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이 사외이사 후보를 검증한다. 사외이사가 연임할 경우에도 외부 평가를 다시 거치게 했다.
이처럼 다양한 개정안 내용들 중 쟁점으로 떠오른 대목은 ‘임원경력 5년 이상’이란 은행장 후보 자격 요건이다. 지주는 ‘금융회사 경력 20년 이상’인 기준을 ‘금융권 임원경력 5년 이상’으로 바꿨다. 국내 다른 은행장의 경우 전북은행(9년)과 신한은행(7년), KB국민은행(5년) 등 최소 5년에서 평균 8년의 임원경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주 측은 “대구은행 역대 은행장들의 평균 임원경력이 5년 이상”이라면서 “사업본부와 경영관리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보자가 은행을 잘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문제는 변경된 은행장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내부 인사는 김태오 회장 한 사람뿐이라는 점이다. 김 회장을 제외하면 현재 대구은행에서는 박명흠 은행장 직무대행의 임원경력이 가장 길다. 2014년 12월부터 임원을 시작해 올해 말이면 4년을 채운다. 이 외에 부행장보 2명과 상무 3명은 각각 2016년 12월과 2017년 12월에 임원이 됐고, 나머지 임원 7명은 올해 7월 상무로 승진했다. 임원 13명 중 만 2년이 되지 않은 사람이 12명이나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구은행 내부에서는 현실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할 은행장 후보자 자격 요건을 내세워 지주회장인 김 회장이 은행장을 겸직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대구은행의 경우 퇴직 임원까지 포함해도 자격 요건이 되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라면서 “그나마 경찰 수사 등으로 논란이 있는 상황이라 외부인사 깜짝 영입이 아닌 이상 지주회장의 은행장 겸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겸직 분리’는 올해 4월 지주·은행 이사회, 노조가 함께 결정한 사안이어서 갈등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대구은행 이사회는 “개선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은행 상황에 당장 적용하기에는 무리”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조도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기존 4급 이하 직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과 지주 이사회 사이에서 중재를 할 것으로 보였던 1~3급 간부들로 구성된 새 노조 ‘대구은행 민주노동조합’도 반대의견을 내면서 갈등이 깊어졌다. 대구은행 민주노동조합 측은 지난 19일 성명서를 통해 “회장 1인 독점의 지배구조를 만들어 은행장 자리를 차지하려는 꼼수”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하나금융그룹 출신인 김 회장이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의 전례를 참고삼아 장기집권의 길을 열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다. 김승유 전 회장은 1997년 하나은행장에 취임한 뒤 2005년 회장에 올라 14년간 CEO를 맡았다. 금융권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김태오 회장과 김승유 전 회장은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롤모델로 삼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