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매도 심하긴 심하다
최근 공매도 강도가 상당하다. 실적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을 공매도하는 것은 ‘위험 회피’ 차원에서 당연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공매도는 이익변동성이 큰 바이오는 물론 전기전자나 금융에도 집중되고 있다.
이경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공매도(외인 60~80%) 증가폭이 외국인이 지수를 매도한 정도보다 더 컸다는 점은 지수를 좋지 않게 보는 정도보다 한국 특정 기업에 대해 주가 수준 및 수급의 취약 정도 등을 노리고 종목별로 공매도를 하는 세력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아시아 증시는 어떨까. 10월 들어 25일까지 코스피 하락폭은 11.9%다. 같은 기간 대만 가권지수는 11.33%, 홍콩H지수는 8.77% 하락했다. 일본 토픽스는 11.34% 떨어졌다. 한국과 대만은 IT 비중이 높다. 최근 공매도는 IT에 많이 몰렸다. 공매도 때문에 낙폭이 조금은 더 커진 셈이다.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 본사 전경. 연합뉴스
# 국민연금이 주식 안 빌려주면?
국민연금이 주식을 안 빌려주면 공매도가 잦아들까.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우본)가 2008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10년간 빌려준 주식의 총 규모는 42조 193억 원(국민연금 37조 9982억 원, 우본 4조 211억 원)이다. 주식 대여 수수료로 국민연금은 1425억 원, 우본은 87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주식 규모는 약 4조 1000억 원, 수수료는 151억 원에 불과하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보유 주식은 9월 말 현재 597조 원, 비중은 31.5%다. 국민연금의 주식대여가 시장에서 회수되더라도 외국인들의 공매도가 크게 줄어들 리 없다. 빌릴 주식은 여전히 충분하다.
게다가 요즘에는 국내 투자자들의 공매도도 상당히 늘었다. 최근 차입자 비율을 보면 최근 1년간은 외국인이 60%에 육박하지만, 최근 반 년은 55%로 떨어진다. 1~3개월은 47% 남짓으로 떨어져 국내 증권사와 투신권의 비중이 차입의 과반이다. 국내 투자자들의 전략도, 상품도 다양해진 결과다.
# 연기금, 증시서 ‘깜깜이’될 수도
국민연금의 주식대차 규모를 감안하면 ‘돈’을 벌기 위해 주식대여를 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주식대여로 증시 라이벌인 외국인들의 투자전략을 읽어낸 것일 수도 있다. 익명의 한 펀드매니저는 “일반적으로 공매도 기능은 ‘시장의 적정 가격 발견 기능’에 있다”면서 “누가 어떤 시기에 어떤 종목을 빌려 가는지를 통해 이후 투자패턴을 예상할 수 있고, 이렇게 쌓인 정보를 통해 시장 수급을 주도하는 외국인 전략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KB증권은 “일부 빌린 주식을 되갚으려는 거래(short covering)가 발생할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대차잔고 비중이 높은 삼성전기,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이 IT 3사를 유력 후보로 예상했다.
# 공매도, 제도적 규제 가능할까
국민연금의 주식 대여 중단은 상징적 조치다. 관건은 정부가 법으로 공매도를 규제하느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2014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매도 금지조치의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주식 가격의 변동성 확대를 축소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고, 공매도 거래자의 시장 유동성 공급자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특히 “주가 하락 억제 측면에서 정책적 효과는 일부 달성했지만, 공정가격 형성을 저해할 수 있음도 시사하는 결과가 도출됐다”고 결론 내렸다.
금융위원회는 공매도 포지션 보유 상태에서 주가 하락을 유도하는 행위를 ‘시장질서교란행위’로 처벌하는 내용과 일반투자자가 참여한 유상증자에 대한 공매도 거래자 참여 제한 등의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공매도를 하면서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다른 행위를 하지 말고, 주주배정 증자시 공매도를 제한하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현행 불법인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selling)에 대한 처벌과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전반적인 공매도 제도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는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
테마섹, 셀트리온 지분 매각 왜? ‘성장엔진 한계점 도달’ 우려도 바이오주가 공황(panic) 상태다. 가뜩이나 세계적 증시 폭락 상황에서 국내외 큰손 가운데 유일하게 셀트리온 주요주주에 올랐던 싱가포르 테마섹의 보유 비중 축소까지 겹쳤다. 국내 바이오주에 대한 투자전망을 어둡게 본 의사결정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민연금은 국내 대부분 대기업의 주요주주지만 바이오 업종은 예외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 대부분에서 적게는 5% 이상, 많게는 10% 넘는 지분을 갖고 있지만 3, 4위인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량보유신고는 아직 없다. 코스닥인 셀트리온헬스케어, 신라젠, 바이로메드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1월 16일 셀트리온은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을 앞두고 1주당 34만 7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다음날인 17일 일본계 노무라증권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주가가 너무 높다며 ‘매도(Reduce)’ 투자 의견을 제시했다. 목표주가를 각각 23만 원, 12만 원으로 제시했다. 당시 노무라증권은 “셀트리온 주가는 최근 6개월 동안 227%나 치솟아 같은 기간 코스닥 상승률(36%)을 훨씬 뛰어넘었고, 주가순수익비율(PER)은 2019년 이익 전망치 기준 64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경쟁사들보다 프리미엄을 누릴 자격은 있지만 이익증가 가능성을 고려할 때 최근 주가는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테마섹 지분 매각이 시장에 반영된 이후인 지난 25일 셀트리온 주가는 신약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23만 6500원선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이미 2월에 12만 원이 무너졌고, 지난 25일 종가는 7만 1000원이었다. 주가로만 보면 올 초 노무라의 예측이 거의 맞아 떨어진 셈이다. 셀트리온뿐 아니다. 올 2월 한때 주당 30만 원을 넘었던 바이로메드는 20만 원에 간신히 턱걸이한 상태다. 지난해 연말 15만 원을 넘겼던 신라젠도 반토막이 났다. 특히 이들 바이오주는 장기투자하는 굵직한 기관투자자들이 주요주주로 참여하고 있지 않아 수급에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는 테마섹을 제외하면 외국인 지분율이 한자릿수다. 신라젠은 10% 미만, 바이로메드는 13%가량이다. 반면 이들 종목에 대한 공매도는 70% 이상이 외국인이다. 수급 공백의 약점을 공매도가 파고든 셈이다. 한편 테마섹은 셀트리온과 사실상 공동경영 수준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주식보유도 공동이다. 그만큼 셀트리온 사정에 정통했다고 볼 수 있다. 테마섹의 차익실현은 셀트리온의 성장엔진이 이제 한계에 달한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을 키운다. [열] |